<바른마음> 조너선 하이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 인간은 분류와 구분을 선호하는 뇌가 다름을 방증한다. 인종을 나누고, 동양, 서양으로 지리학적인 구분을 만들고 판단한다. 이러한 지리적 분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까지가 동양이고 서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애매모호한 상황에 봉착한다. 인종도 다르지 않다. 백인, 흑인, 아시아인으로 분류하는 방법도 혼혈에게는 적용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백인과 아시아인의 혼혈은 어떤 인종으로 분류해야 할까. 피부색이 하얗다고 백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굴의 윤곽으로 식별해야 할까. 아마도 사람마다 구분하는 기준점은 각자 다를 것이다.
인종뿐만이 아니다. 성별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눌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는 어떤 성으로 보아야 마땅한지 나라마다 그 규칙은 나라, 문화마다 제각기 다르다. 새로운 성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변경된 최종적인 모습으로 성별을 판단해야 올바른지 사람마다 그 기준점은 무척 다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어려운 다양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근거로 판단할까. 법의 테두리에서 일생생활의 모든 정황을 정밀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문화가 존재하고, 그 이면에는 도덕이라는 종교와 같은 신념이 자리한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도덕 심리학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발전하는지 의문이 발생한다. 이러한 의문점을 하나씩 파헤치는 책이 바로 <바른 마음>이다.
내가 판단하는 근거가 명확하여 상황에 적용하면 타인의 판단이 되는 근거는 무시하기 마련이다. "남의 잘못을 알기는 쉬우나, 나의 잘못을 알기란 어려운 법이다"라고 부처가 말한 뜻을 이해할만하다. 이처럼 우리의 위선은 끝없는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며 사이좋게 지내기가 어려울까? 그 원인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려고 쓴 책이 바로 <바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골치 아프며 가장 편이 갈리는 문제인 정치와 종교를 말한다. 사회생활 에티켓 책에서는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할 때는 정치와 종교에 관한 화제는 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둘을 가지고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라는 입장이다. 정치와 종교로 인해 일어나는 그 모든 과열, 분노, 편 가르기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그 자리를 경외심, 놀라움, 호기심으로 채우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이다.
저자가 말하는 바른 마음, 즉 도덕성은 철저히 이기적이며 전략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을 이성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직관이 판단의 기본 토대가 되고 그 위에 전략적 추론이 따라온다. 직관은 그 사람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물론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직관은 매우 높은 확률로 믿을만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류가 아예 없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으로 추론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마트에 가서 생닭을 산다. 그런데 닭을 요리하기에 앞서 그는 닭에 대고 성행위를 한다. 그러고 난 후 그것을 요리해서 먹는다. <바른 마음> 中
책에 나온 예시 상황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랜 생각 끝에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못된 행동으로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았을 때 모두 같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같은 지구라도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심지어 같은 사회 내에서도) 도덕성은 차이가 발생한다. 진보주의나 자유주의 성향의 서양인이 아니라면, 죽은 닭으로 성행위를 한 후 요리해 먹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어떤 결론을 내놓느냐에 학력은 크게 영향을 끼친다. 고학력자에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가진 서양인이라면, 명확하게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정쩡한 대답을 내놓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은 도덕성은 언제부터 생겨날까.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어떻게 해서 알게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도덕 심리학은 1987년만 해도 발달심리학의 하위 분야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발달심리학자의 연구를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발달심리학자인 피아제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들이 도덕성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이 유리컵에 담긴 물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비슷했다. 즉, 도덕성에 대한 이해는 선천적이라고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어른에게 직접 배운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놀며 도덕성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세워나간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아이들이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잘못이다"라는 절대적인 도덕적 진리를 주춧돌로 삼고 그 위에 도덕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하나하나 건설해나간다는 것이다. <바른 마음> 中
아이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모든 규칙을 다 똑같이 다루지는 않는다. 도덕철학자처럼 유창한 말솜씨는 없을지언정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정보를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분류하느라 그들 역시 나름대로 바쁜 것이다. 남에게 해가 가지 않게 하는 규칙이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또 어디에나 적용되는 불변의 규칙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일찌감치 깨닫는 것으로 보인다. 남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고통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 아이들의 도덕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가 진행한 인터뷰에 참가한 피험자 대부분은 무해한 금기 위반 이야기에 피해를 입는 사람이 전혀 없더라도 그것은 보편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야기 속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보통 아주 순식간이었는데,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결정하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잘못인지 그 이유를 물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직관적으로 잘못이라고 판단하지만 말로 설명이 안 되어 당혹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 인간은 날 때부터 바른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정확히 무엇을 바르다고 여기는지는 반드시 배움을 통해야만 알 수 있다.
사람의 직관은 경험을 토대로 정립된다. 낚시꾼은 찌의 움직임만 보더라도 대어가 물었는지 단박에 알아챈다. 그러나 대어가 아닌 신발이 걸릴 수도 있고, 굴러가는 돌에 걸리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도덕적 추론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을 토대로 도덕적 판단을 내려놓고 그것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으려고 사후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책에서 언급한 예시 상황을 보자마자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면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내면에 생기고, 그 뒤에 설명을 이어갔을 것이다. 감정은 일종의 정보처리 과정이다. 따라서 감정과 인지를 반대개념으로 놓는 일은 비와 날씨를 반대개념으로 놓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일이다.
감정의 영역이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면 정치 문제와 관련해 갈등이 발생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조금은 방법이 보인다.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정말로 누구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다면, 나 자신의 눈으로는 물론 그 사람의 눈으로도 사물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그 반응으로 어느새 나 자신의 마음이 열리는 걸 느낄 것이다.
공감이야말로 서로가 바르다는 확신을 녹이는 해독제이다. 물론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관을 허물고 서로 공감한다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동물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인식하는 모든 것에 끊임없이 직관적으로 반응하며, 또 그 반응을 기반으로 응답을 내보낸다. <바른 마음> 中
우리는 자신이 믿고 옳다고 판단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증거를 찾아 나서는 행위에 서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믿음과 옮음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칼같이 찾아내듯이, 우리의 믿음과 판단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도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찾아준다.
이러한 서로가 생각하는 옳음과 그름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상대방과의 논의가 적대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적인 논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비치고 이는 격앙된 감정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감에서 도덕적 추론은 틈이 발생하고 그 틈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참고 도서 : <바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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