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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학벌세탁

by 곽준원

대학교 4학년이 되면 주변 공기가 달라집니다.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번 방학에는 어디로 놀러 갈지, 아르바이트는 어떤 것을 할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4학년이 되면 문장이 달라집니다.


"공기업 넣어볼 거야?"

"네임드 SI라도 써봐야지"

"야. 이력서 써봤어?"


그때 저는 솔직히 말하면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도 조금 온화한 표현입니다. 그냥 빈 손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 선배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밤새 코딩에 매진하고, 어떤 공모전에 나가기도 합니다. 동아리에서 팀프로젝트로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지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저는 남들 앞에서 내세울 게 딱히 없었습니다. 제가 가진 건 전산학 전공이라는 간판 하나,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과목은 내가 좀 절었지"라는 개인적인 자신감 하나였습니다. 조금 냉정하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프로그래밍 잘합니까?"

"아뇨. 잘한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C/C++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어요?"

"글쎄요.. 이론은 수업으로 들었는데. 실제로 뭘 만들었다고 하긴 좀.."


"팀 프로젝트 경험 있어요?"

"대학 과제 정도요.."


네. 어렵다는 말을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상태로 취업 시장에 발을 들이밀기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들었던 생각은 굉장히 현실적이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내가 쓸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구나. 그러면 나는 앞으로 뭘 해야 하지?'


'다른 길은 없나?' 하고 바라본 곳


그 무렵 학교 전산실 옆자리에 대학원에 진학했던 선배가 기억이 났습니다.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고 느꼈습니다. 대학원을 생각한 이유는 단 하나의 감정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러 층이 겹쳐 있었습니다.


단순한 회피라는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취직이 안 되면? 대학원에 진학하면 되지 않나?" 말 그대로 시간 벌기입니다. 사회로 바로 나갈 자신이 없으니까 '나 아직 학생입니다'라는 신분을 조금 더 유지하고 싶은 마음. 이건 분명히 있었습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진짜 관심도 한몫을 합니다. 저는 데이터베이스라는 분야를 흥미로워했고, 진짜로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ER 다이어그램을 그리면서 '현실을 구조화하는 일'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걸 느꼈고, 데이터의 흐름과 제약 조건을 설계하는 그 작업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이 감정은 도망이 아니라 순수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더 깊데 파면 내 자리가 생길지도 몰라"라는 희망의 등불이었죠. 마지막으로 아주 솔직한 동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학벌"


저는 경기도에 위치한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여기서 말을 조금 조심스럽게 꺼내 보면 대한민국에서 특정 학교 이름은 그냥 학교 이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회 진입 시점에서의 1차 필터링으로 작동합니다.


이건 이상적이지도 않고, 교육적으로 건강하지도 않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입사 서류에서, 소개 자리에서, 심지어 본인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작동합니다. '내가 어느 학교 출신인가?'라는 꼬리표는 꽤 오랫동안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쓰입니다.


당시 제 머릿속에는 이런 계산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학부는 지방권 학교지만, 만약 상위권 대학원에 간다면? 그러면 적어도 최종 학력란에는 그 이름이 적히겠지. 그러면 나를 보는 사람들의 인상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이 계산을 조금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학벌 세탁'입니다. 아름다운 표현은 아니죠. 하지만 제가 실제로 했던 생각이라서 솔직하게 적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 이름 옆에 붙는 '학교 이름'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100% 저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시선


저희 아버지는 자랑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아들이 어떤 학교를 다닌다고, 누구 앞에서라도 말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아버지 세대에게 "우리 아들이 이번에 서울대에 합격했어."라는 말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의 일종이었습니다. 문제는 저는 그 기대에 딱 맞혀진 아들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전교 1등은커녕 '학교에서 알아주는 우등생'도 아니었고, 선생님들에게 칭찬받는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실하긴 한데 왜 이렇게 들쑥날쑥하지?'라는 평가를 받는 타입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저는 늘 애매한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머리는 똑똑한데 그렇다고 확실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 아버지는 저를 많이 답답해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상위권 대학교의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라는 문장을 한 줄로 말할 수 있다는 건, 그 당시의 저에게는 복잡한 의미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드릴 수 있는 첫 '괜찮은 문장'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조금은 덜 초라한 증명.

'나도 여기까지는 왔습니다'라는 신호


그러니까 대학원은 제 자신의 선택인 동시에 가족 서사 속의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한 마지막 1년


대학원이라는 방향이 눈앞에 설정되고 부터 4학년 마지막 학교 생활의 계획이 달라졌습니다. 그전의 저는 솔직히 학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학사 경고만 아니면 상관없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 입학은 숫자로 결정됩니다. 그 숫자는 학점이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저는 굉장히 계산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점이 낮은 과목은 재수강해서 끌어올리고, C 학점보다 낮은 바닥을 친 과목은 가능하면 성적을 삭제하고, 다른 과목으로 학점 이수를 대체했습니다. 당시에는 학교마다 다르긴 했지만 재수강이나 성적폐기 제도를 이용해 낮은 학점을 없애고 다시 채우는 게 어느 정도 가능했습니다. 저는 그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대학원은 말로 가는 게 아니라 수치로 가는 곳이니까요. 거기에는 사정 봐주는 "열심히 했어요." 같은 설명은 없습니다. 성적표가 증거입니다.


4학년의 저는 정말로.. 정말로.. 치밀하게 학점을 관리했습니다. 열정적인 공부라기보다는 냉정한 정리 작업에 가까웠습니다. 자기 인생의 성적표를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한 형태'로 다듬는 느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제 숫자를 다듬고 있었고, 제 이력서를 미리 편집하고 있었고, 제 평판을 선제적으로 조율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멋지게 포장하면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준비한 시간'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 자신을 팔아도 될 만한 버전으로 다듬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결국 저는 나름 이름이 있는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원하던 상위권 대학. 데이터베이스 연구실. 제가 느낀 첫 감정은 자부심도 해방감도 아니었습니다. 약간의 안도감이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는 왔다.'


이건 마치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도중 잠깐 숨이 차서 난간에 손을 얹고 기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직 정상은 아니지만, 한 번은 발판을 밟은 상태.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감.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습니다.


'하아.. 이제부터 또 적응해야 하는구나.'


대학원에 입학하면 호칭부터 바뀝니다. 저는 더 이상 그냥 '학생'이 아니라 '석사 과정생'이 됩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이 계셨고, 선배 연구원들이 있었고, 연구 주제가 있었고, 프로젝트가 있었고, 논문이라는 단어가 생활용어처럼 오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고백을 하나 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식을 전혀 몰랐습니다. 대학교 4학년까지 저는 '정답을 맞히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건 시험지에 답을 적는 방식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최대한 빠르게, 정확하게 가져와서, 요구되는 형식에 맞게 적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대학원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연구실에서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문제는 기존 논문들에서 실험을 이렇게 한 거 같은데, 저건 성능이 별로야."

"그럼 우리는 다른 방식을 써볼까?"

"그 방법이 정말 더 좋은지 증명할 근거는 무엇일까?"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지?"

"수집한 데이터를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려면?"


여기서 전제가 되는 기본기가 있습니다. 기본 이론을 이해하고, 문제를 구조화하고, 스스로 찾아보고 조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무엇보다 스스로 공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마지막 줄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스스로 공부할 줄 몰랐습니다. 저는 여전히 누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자세히 알려주길 바라는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그걸 직접 깨닫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 말은 곧, 석사 과정 초반의 저는 사실상 '형식적인 석사생'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나는 석사 과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석사 과정을 소화할 사람이 아니었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학벌세탁'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

'학벌세탁' 저는 제 학력을 상위권 브랜드로 갈아 끼우고 싶었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어떤 분들은 실제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결국 너는 허영 때문에 대학원 간 거 아니야?"

"취업이 어려우니까 그냥 도피한 거 아니야?"

"애초에 공부하려고 간 거 맞아?"


저는 이런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고 싶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 모든 게 다 섞여 있습니다." 저에게 대학원 진학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였고, 가족에게 드릴 수 있는 체면이었고, 시장에서의 간판 경쟁이었고, 동시에 정말로 배워보고 싶은 분야로 들어가는 통로였습니다.


이 넷을 완전히 분리해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제가 그 시기에 했던 선택은 깨끗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어느 한 가지 이유로만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복합성이 바로 '진짜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순수한 동기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체면도 챙기고, 생존도 계산하고, 인정 욕구도 있고, 동시에 진심도 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걸 안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게 제 방식이었고, 부끄럽지만 솔직한 방식이었습니다.


그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가끔 생각합니다. 그때 대학원을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지 말이죠.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취업 문 앞에서 오래도록 미끄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전산학 전공인데 코딩은 못합니다.'라는 자기소개서를 들고 면접장에 앉아서, 면접관의 어이없는 표정을 보며 스스로 작아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마 제 자신을 더 싫어하게 됐을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역시 사회에서 전혀 쓸모없는 쓰레기구나.'라는 자기혐오에 빠져서 나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선택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깨끗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 덕분에 저는 한 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성장 중인 사람이다.'라는 감각. 이 감각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난 여기서 끝났어'라고 확정해 버리는 순간 사람은 무너집니다. 그런데 '아직 진행 중이야.'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남아 있으면 버틸 수 있습니다. 그때의 대학원 생활은 저에게 이런 신호였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학점 관리 했잖아. 그리고 합격했잖아.'

'너 아직 끝난 거 아니야. 너 아직 진행 중이다.'





#학벌세탁 #명예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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