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과정 3학기. 인생이 옆에서 끼어든 순간
석사 학위는 보통 4학기를 이수해야 주어집니다. 수업 듣고, 연구 주제 정하고, 논문 쓰고, 심사 통과하는 과정이 정해져 있습니다. 저도 똑같이 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1학기, 2학기, 3학기.. 어느 정도는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끝까지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이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선회하는 계기가 3학기 때 찾아왔습니다. 그 이름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흔히 말하는 '와우(WOW)'였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때는 정식 서비스도 아니었습니다. 오픈 베타 테스트 기간이었습니다. 다른 연구실 선배가 굉장히 잘 만든 게임이니까 잠깐 해보자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어차피 테스트니까 오래 안 가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주 순진한 착각이었습니다. 와우는 단순히 '조금 잘 만든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제 표현으로는 이렇습니다.
그건 진짜로 '다른 세계'였습니다.
저는 매일 밤 모두가 퇴근한 연구실에서 와우의 세계로 접속했습니다. 금요일에는 밤을 꼴딱 새웠습니다. 학교 근처에 기숙사에서 다음날은 오후까지 잠을 잤습니다. 하루만 이렇게 보낸 게 아니라, 주말은 거의 그렇게 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시기가 단순한 방학 기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석사 과정 3학기 후반부는 원래라면 논문 방향을 정하고, 연구실 발표도 해야 하고, 졸업시험 준비도 해야 하는 구간입니다. 말 그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 외에도 박사 과정으로 연구를 이어갈지 아니면 취업 전선에 뛰어들 것인지도 진로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시기에 정신 상태가 '논문'이 아니라 '40레벨에 공짜 탈것을 얻으려면 얼마나 걸리지'에 더 관심이 쏠렸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웃기기도 하지만, 그때는 전혀 웃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게임에 몰입했습니다. 완전히 와우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졸업을 못할 뻔했습니다.
중요한 공지사항도 주의 깊게 읽지 않고 넘겨버리곤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졸업시험 관련 서류 제출 시기를 놓쳤습니다. 연구실에서 내야 할 산출물 대신, 국내 학회 제출용으로 냈던 논문 자료를 제대로 증빙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넘겨버렸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였냐면요. '이대로면 4학기 다녀도 졸업 못한다'였습니다. 석사는 4학기 채우고 논문 방어(심사)까지 통과하면 석사 학위를 받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맞지 않으면 한 학기를 더 등록해야 합니다. 등록은 시간만 더 쓰는 게 아니라, 등록금도 다시 냅니다. 인생에서 6개월이 추가로 날아갈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지금 진짜 게임하다가 석사 못 받게 생겼구나.' 이 말은 웃기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제 삶을 흔들 만큼 현실적인 위기였습니다.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곧바로 학교 행정실로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정말로 빌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저희 서류받아주면 안 될까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살려주세요'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학회에 제출했던 논문이 있습니다. 이걸 근거로 졸업시험을 치른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 장면은 제 인생에서 몇 안 되는 '공식적으로 도움을 구걸한 순간'입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없습니다. 한 학기를 더 다닌다는 이야기는 취업에도 문제가 생기고 인생 자체의 플랜이 모조리 어긋나 버리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행정실에서는 여러 절차를 확인하고 교수님들과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슬아슬하게 통과했습니다. 학회 제출 논문을 졸업시험 증빙으로 인정받는 형태로 간신히 위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방금 게임 때문에 석사 졸업을 날릴 뻔했다.' 이 사실은 제 인생에서 꽤 강력한 충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요.
그날 이후 생긴 첫 질문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위기 이후에 제 안에 생긴 질문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하고도, 그전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던져본 적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런 게임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지?"
저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정말 많이 플레이했습니다. 공부하기 싫을 때 도망친 곳이기도 했고, 세상과 연결되는 창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 동안 저는 한 번도 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누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사용해서 만들었을까?"
그런데 와우를 하면서는 그 질문이 스스로 떠올랐습니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와우라는 게임은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업하고 장비를 맞추는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살아 있는 세계였습니다.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해서 함께 움직이고,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이 생기고, 심지어 게임 안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규칙을 세우는 공간이었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처음으로 '세계 설계'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이 정도 스케일의 세계라면 이건 단순히 '누가 잘 만들었나'의 문제가 아니겠구나. 이건 하나의 시스템이구나. 이건 구조구나. 이건 살아 있는 데이터의 흐름이구나.
한마디로 말하면 저는 처음으로 게임을 '제품'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안의 어떤 것과 연결되었습니다. 데이터베이스를 좋아하던 그 감각. 현실을 구조화하고, 관계를 설계하고, 흐름을 정의하고, 충돌을 방지하고, 필요한 값을 정확하게 꺼내오는 그 작업.
그 순간, 저는 생전 처음 게임을 '플레이어'가 아닌 '제작자'의 시선으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볼까라고 말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현실은 또다시 발목을 잡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저는 생각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관리자로 취업할까?"
"DBA로 가면 코딩 안 해도 되는 길이 있을 거야"
"나는 코드 짜는 재능은 없지만, 구조 설계는 맞으니까 그쪽으로 빠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데이터베이스 연구실이지만 졸업한 선배들의 진로 방향을 보니까 조금 이상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분야로 가는지 보면 거의 대부분이 '개발자'였습니다. 웹 개발, 서버 개발,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직종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코드를 짜는 직업'이었습니다.
DBA요? 데이터베이스 전담 관리자요? 연구실 졸업생 중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말은 곧 이런 뜻이었습니다.
'너도 결국 코딩할 줄 알아야 한다.'
저는 그 지점에서 솔직하게 낙담했습니다. '아니... 나는 그 코딩이 무서워서 여기까지 도망쳤는데.. 결국 다시 그 문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건가?'
새로운 문이 하나 열립니다.
그렇게 계획 없이 일단 졸업부터 하자는 마음으로 마지막 학기를 보냈습니다. 열심히 와우도 하면서요. 졸업과 동시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보고 면접도 보러 다녔습니다. 예상했다시피 모든 면접에서 대학원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며 탈락의 사유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낙담 상태에서 저는 다시 인터넷을 뒤적거렸습니다. 정말로 말 그대로 검색창에 쳤습니다.
"프로그래밍 배우는 방법"
그러다가 제 눈에 들어온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다른 아닌 '게임 프로그래밍'이었습니다. 저는 해당 단어로 다시 검색을 해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뭐야 이건? 이런 게 있어?"
"학부에서는 이런 거 배운 적이 없는데..."
당시의 저에게 DirectX SDK는 상당히 낯선 단어였습니다. 게임 그래픽 관련 API, 3D 렌더링, 오브젝트 충돌, 카메라, 좌표계, 버텍스 등등. 이런 것들과 연관된 기술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된 것입니다.
'잠깐만. 이걸 가르쳐준다고? 1년이면 충분하다고? 그러면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때 저는 처음으로 '정규 교육 과정 밖의 교육'을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대학, 대학원 같은 '제도 속 공부'가 아니라, '업계로 가기 위한 실습형 공부'였습니다. 지식이 아니라 기술, 이론이 아니라 능력.
이 선택은 제게 엄청나게 큰 모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굉장히 현실적인 길처럼 보였습니다. 그전까지의 공부가 '이해'였다면, 이건 '직업'이었습니다.
부모님 설득
문제는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하냐였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습니다.
"나.. 게임 개발하는 거 배워보고 싶어요. DirectX 3D라고 게임 프로그래밍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는데, 1년 과정이라고 해요. 취업은 잠시 미루고 1년만 더 공부해도 될까요?"
이 질문은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위험한 요청이었습니다. 아들이 이제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보통은 이제 취업해서 돈 벌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게임이 만들고 싶다'라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아버지의 반응은 반대였습니다.
"그거 만들어서 밥 벌어먹을 수 있어?"
아버지의 걱정은 현실이었습니다. 게임은 아버지 세대에게는 취미이자, 낭비였고, 때로는 방탕의 상징이었습니다. '게임을 한다'라는 말은 '공부 안 하고 논다'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제 안에 정말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엄마, 아빠.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수 화투 치잖아요. 설날에는 윷놀이하잖아요. 그거 다 게임 아닌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인간이 존재하는 한 게임은 사라지지 않아요."
사람이 있는 곳에는 규칙이 생깁니다. 규칙이 생기면 역할이 나뉩니다. 역할이 나뉘면 경쟁과 협력이 나옵니다. 그게 게임입니다. 저는 그걸 만드는 사림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저의 생각을 말했을 때의 공기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건 감정적으로만 밀어붙인 부탁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인생을 제 언어로 설명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말은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한 말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제 자신을 설득하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로 가려고 한다.'
'나는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일을 해보고 싶다.'
저는 그걸 자신에게 약속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결국 허락하셨습니다. 완전히 납득하셨는지, 아니면 그냥 더 이상 제 고집을 꺾기 어려워서 받아주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두 개가 섞였을 겁니다.
다시 학생이 된다.
그렇게 해서 저는 DirectX 3D 프로그래밍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직후,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한 번 숨을 돌리기도 전에 또다시 새로운 세상에 뛰어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낯선 건물, 낯선 강사, 낯선 학원생들. 그중에는 이미 '나는 게임 회사 갈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약간의 열등감과 동시에 묘한 설렘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진짜 되돌릴 수 없다.'
그때의 감각은 이랬습니다. 제가 제 인생의 첫 번째 '직업적 선언'을 한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게임 개발자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게임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단순히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만들어낸 문장이 아닙니다. 그건 제가 제 인생을 향해 선언한 신념이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이 길로 반드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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