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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첫 출근, 첫 월급.

by 곽준원
게임 회사. 정말로 내가 발을 들였다.

드디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 회사는 거대한 대기업도 아니었고, 화려한 간판을 가진 곳도 아니었습니다. 한 번에 다 알 만한 유명 IP를 갖고 있는 회사도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이 회사가 제 인생의 '현장 1호'였으니까요.


회사의 주력 프로젝트는 캐주얼 레이싱 게임이었습니다. 레이싱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분위기는 비교적 가볍고 즉각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복잡한 시뮬레이션보다는 조작감, 속도감, 화면 효과, 아이템 사용 타이밍 같은 것들이 중요한 장르였지요. 쉽게 말하면, '누구나 금방 붙을 수 있지만, 오래 하다 보면 기량 차이가 드러나는' 타입의 게임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게임의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로 합류하게 됩니다. 팀 구성은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2명, 서버 프로그래머 1명, 기획자 1명, 그래픽 디자이너 5명으로 10명 정도 규모의 팀이었습니다.


게임은 거의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즉, '우리 이제 게임 하나 새로 만들어봅시다.'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걸 정리해서 세상에 내보래 준비를 하자.'에 가까운 타이밍이었습니다. 서비스 직전의 긴장감이 조금씩 흐르던 시기입니다. 당시 목표는 클로즈 베타 테스트(CBT)였습니다. 유저를 소규모로 받아서 실제 플레이가 가능한지 검증해 보는 단계까지 와 있었던 거죠.


저는 그 단계에서 합류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돌아가는 코드 위에 얹혀 들어간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같이 만들진 않았지만, 이제부터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된 사람.


회사에 막 들어온 신입 개발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합니다. 기본 시스템의 코어 로직 같은 건 절대 안 줍니다. 카메라, 렌더링 최적화, 메모리 관리, 패킷 구조 변경과 같은 건 이미 만들어놓은 사람들의 영역이었고, 쉽게 넘겨주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신입에게 가장 많이 할당받는 업무는 바로 UI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죠.


신입의 운명: UI 맡아봐

UI는 게임에서 '겉모습'입니다. 한눈에 보이는 것. 버튼, 메뉴 화면, 방 만들기/방입장 창, 결과 화면, 상점, 옵션 설정, 스코어보드, 매칭 대기창, 채팅창 등등 이런 것들이 전부 UI입니다.


이 영역은 그냥 예쁘게 띄우는 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 까다롭습니다. 왜냐하면 UI는 결국 게임의 다른 모든 시스템과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로비 UI에서 방 만들기 버튼을 누르면 서버에 방 생성 요청 패킷을 보냅니다.

서버에서 방 ID를 전달해 주면 클라이언트는 그 정보를 받아서 화면을 업데이트합니다.

동시에 참가자 리스트를 실시간으로 그려줘야 합니다.

누군가 방에서 나간다면 즉시 다른 사용자도 변경된 내역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UI는 사실상 맨 앞에 붙어 있는 통신 허브 같은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는 층이지만, 뒤로는 로직이 복잡하게 엮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입은 UI부터 해봐'라는 말은 겉으로는 '쉬운 거부터 해'처럼 들리지만 속을 까보면 '지금 돌아가는 모든 시스템 구조를 이해해라'라는 말과 거의 같습니다.


저에게 내려온 첫 임무도 그랬습니다. 로비 화면의 일부를 손보고, 옵션 메뉴를 정리하고, 버튼 동작 하나하나를 실제 게임 로직과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제 막 학원을 졸업한 신입이었고, 팀의 코드 스타일도, 구조도, 툴도, 네이밍 규칙도, 네트워크 패킷 구조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요.


입사하고 1주 동안은 '코드 읽기'만 하다가 퇴근했습니다. 제가 쓴 줄은 없는데 하루가 끝나 있었습니다. 그런 날이 꽤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이게 벌써 회사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내가 지금 돈 받아도 되는 건가?'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이게 바로 현장이구나. 실제 게임 코드라는 건 이렇게 되어있구나.'


"석사? 아.. 근데 우리 회사에 석사가 처음이라서요.."

제가 입사한 회사는 전체 인원으로 치면 대략 150명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150명 분업형 개발팀'이라는 뜻은 아니고요. 운영, 사업, CS, HR, 개발 등 모든 부서를 다 합쳐서 그 정도였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웃긴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게임 업계는 지금처럼 전공자-석사-박사- 인력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좋아하니까 들어온다', '밤새는 거 버티는 열정 있는 사람.', '기술 한 덩어리를 혼자 책임질 수 있다' 같은 인물들이 핵심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조금 더 현장형이었고 덜 제도화되어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석사 학위가 있습니다."라고 제출하니까 인사 담당자가 정말로 당황하셨습니다.


"석사요? 아.. 그러면 어떤 서류를 더 받아야 하지. 혹시 학위 증명서가 일반 졸업증명서랑 다른가요?"


그 질문이 그냥 행정적인 의미만 있는 건 아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뒤에 깔려 있던 분위기는 이런 거였습니다. '게임 회사에 석사가 있다고?', '연구직 채용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신입 개발인데?', '이게 필요한 건가? 우리랑 맞나?'


당시만 해도 '게임 = 연구'라는 공식은 한국에서 별로 강하지 않았습니다. '수학적으로 시스템을 모델링하는 사람', '데이터 분석 기반으로 밸런스를 산정하는 사람', '엔진 최적화를 연구하는 사람' 같은 역학들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기 직전의 시기였거든요.


그러니까 '석사 출신의 신입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는 회사 입장에서도 조금은 낯선 조합이었습니다. 저는 그 느낌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 순간, 저는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학부에서 대학원으로, 대학원에서 다시 DirectX 3D 학원으로, 학원에서 마지막 게임회사로 온 이 경로는 전형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정해진 길이 아니라, 계속 옆길로 빠졌다가 어찌어찌 비집고 들어온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사팀의 혼란은 오히려 저에게 현실감을 주었습니다.

'그래.. 내가 여기까지 온 게 진짜 특별한 건 아니지만, 결코 자동으로 온 길도 아니었지.'


첫 출근의 공기

첫 출근 날 회사에 들어선 저의 기분은 긴장감 40%, 들뜸 40%, 그리고 나머지 20%는 이상하게도 조용한 책임감이었습니다.


'여기가 내가 와야 할 장소구나.'

'이 사람들이 이제 내 동료구나.'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동료로 불리는 거구나.'


그 마음은 생각보다 묵직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저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학원 다닐 때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학원에서는 '배우는 중'이었다면 이제는 '기여해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건 아주 큽니다. 사람은 '내가 필요하다'라는 감각이 생기면 버팁니다. '나 없이도 굴러가는데 난 그냥 구경 중인 것 같다'라고 느끼면 무너집니다.


저는 처음 며칠 동안은 여전히 코드 구조만 읽고 있었지만, 그래도 느꼈습니다. 이 팀은 지금 실제로 서비스를 준비 중이고, 내가 보는 이 화면은 유저가 실제로 보게 될 것이며 그 UI 버튼 몇 개는 내가 손댈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 코드가 유저 손에 닿는다.' 이 사실은 저를 긴장시키기도 했고, 동시에 말도 안 되게 설레기도 했습니다.


첫 월급, 봉투를 받던 날처럼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그 순간이 왔습니다.

첫 월급.


사람이 인생에서 '처음'을 맞이하는 순간들은 다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첫사랑, 첫 키스, 첫 면접, 첫 계약, 첫 싸움. 첫 사직서, 첫 월급도 그 부류에 속합니다. 통장에 급여가 찍히는 그 순간은 단순한 금융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건 선언입니다.


'너의 시간이 누군가에게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인정되었다.'


저는 그걸 굉장히 크게 느꼈습니다. 물론 금액 자체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소박했습니다. 업계 초봉이라는 게 화려하지도 않았고, 수입이 갑자기 인생을 뒤흔들 만큼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감각이었습니다.


'아. 나는 이제 돈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벌어오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제 부모님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존재가 아니구나.'

'나는 사회에 관찰자로 참여하는 게 아니라, 기여자로 참여하고 있구나.'


이건 상징적으로 엄청났습니다. 저를 가장 세게 때린 단어는 '생산적'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이제 생산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죠.


여기서 말하는 '생산성'은 업무 효율 같은 게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는 게 누군가에게 실제로 쓸모가 있다는 감각입니다. 그건 부모가 아이에게 느끼는 느낌과는 다른 종류의 자존감이었습니다. 이건 제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였습니다.


'너. 이제 쓸모 있다.'

저는 그 말을 제 마음속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이 돈으로 부모님께 뭘 해드리지?' 아마도 많은 분들이 비슷하게 느끼셨을 겁니다. 첫 월급은 대부분 금액보다 '의미'를 어디에 쓸지 더 마음이 갑니다.


어떤 사람은 케이크를 사 갑니다.

어떤 사람은 한우를 사 갑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현금을 작은 봉투에 넣어서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 지갑을 바꿔드립니다.

어떤 사람은 밥을 사겠다고 부모님을 밖으로 모십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용돈 계좌로 송금합니다.

말도 못 붙이고, 그 대신 이체로 마음을 보냅니다.


저에게도 그 시간이 왔습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무엇을 사드리는 게 좋을까?', '어떤 방식이 진심으로 보일까?' 그 고민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그건 단순한 '효도 체크리스트'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정이었습니다.


그전까지의 저는 늘 받는 입장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밀어주셨고, 제가 머뭇거리면 시간을 벌어주셨고, 심지어 '1년만 더' 같은 요구도 받아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계속 빌려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는 처음으로 빌려만 쓰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나마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건 조용하지만 큰 변화였습니다. 첫 월급은 제게 그냥 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존재가 사회적으로 유효하다는 증명서였습니다.





#첫월급 #첫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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