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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아이가 즐겨하는 게임

by 곽준원

우리 집에 처음 게임기가 들어온 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이었습니다. 거창한 최신 콘솔도 아니고, 닌텐도 wii였지요. 당시에 제가 떠올린 건 화려한 그래픽이나 난이도 높은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연필을 잡는 손도 조금은 서툰 아이에게,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과 작은 근육의 감각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한 게임은 자연스럽게 wii 스포츠, wii 피트니스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볼링을 던지고, 테니스를 치고, 스쿼시 비슷한 동작을 하면서 몸을 자꾸 움직여야 하는 게임들.


“조금 더 세게 던져봐.”
“이번에는 손목을 이렇게 꺾어보자.”


텐트를 친 거실 한가운데에서, 아이의 작은 팔과 제 팔이 동시에 허공을 휘젓곤 했습니다. 스트라이크를 치면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숨이 차오르는 저를 보며 아이는 깔깔 웃었습니다. 아내는 게임과는 영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컨트롤러를 건네주면 어색하게 웃으며 “나는 구경만 할게요”라고 말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wii는 자연스럽게 아빠와 아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퇴근 후 신발을 벗자마자 아이가 들고 오는 wii 리모컨, “아빠, 오늘은 볼링부터 하자!”라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새로운 캐릭터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핑크색 동그란 몸에 작은 손발이 달린, 어디서 봐도 안아주고 싶은 생김새의 캐릭터.


“아빠, 이거 알아? 커비!”


그때부터 아이의 머릿속은 커비 생각으로 가득해 보였습니다. 저도 게임 개발자다 보니, 캐릭터와 세계관에 관한 이야기라면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 그럼 우리 커비 게임을 한번 찾아볼까?”


그렇게 우리는 국제전자센터로 향했습니다. 전선 냄새와 오래된 기기들의 공기가 섞여 있는, 특유의 분위기 속을 아이와 나란히 걸었습니다. 게임 타이틀을 진열한 매대 앞에서 아이의 눈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커비, 마리오 브라더스, 낯선 제목들 사이에서 아이에게는 오직 두 개의 타이틀만 또렷하게 보였을 겁니다.


“이거랑.. 이거!”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아이의 손에는 작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봉지 안에는 커비와 마리오 브라더스 두 개의 타이틀이 들어 있었지요.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을 텐데도, 아이의 표정에는 지루함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봉지를 꼭 쥔 손과, 창밖을 보다가 저를 보며 씨익 웃는 얼굴이 기대와 설렘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커비 게임이 집에 들어온 뒤로, 집 안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이의 손은 점점 능숙하게 캐릭터를 움직였고, 점프를 하고, 구르고, 적을 삼켜 능력을 복사하는 패턴도 익숙해졌습니다.


“아빠, 나 여기까지 깼어!”
“마지막 보스만 남았어!”


하지만 마지막 보스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나 봅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아이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습니다.


“왜 그래?”
“엄마는 게임을 못 해서 자꾸 죽어..”


아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아이의 기준으로는 답답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지막 한 끗이 늘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웃음을 참으며 아이 옆에 앉았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아빠랑 같이 해볼까?”


그날 우리는 거실 바닥에 나란히 앉아 여러 번 도전 끝에 마지막 보스를 물리쳤습니다. 보스가 쓰러지고 화면이 반짝이는 순간, 아이와 저는 거의 동시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와아!”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바닥을 마주쳤습니다. 하이파이브. 그 소리를 들은 아내도 부엌에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깼어?”
“응! 엄마, 우리 깼어!”


아이의 눈에는 승리의 기쁨과 함께 해준 부모에 대한 기쁨이 묘하게 섞여 있었습니다. 그때의 공기, 모두가 웃고 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제게는 작은 액자처럼 마음속에 걸려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컴퓨터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아빠가 게임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데, 아이에게 컴퓨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코드를 짜고, 테스트를 하면서 화면 속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는 자주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아빠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야?”


그 질문 안에는 부러움과 호기심과 동경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새삼 환경이 교육에 주는 영향을 느꼈습니다. 아이에게 컴퓨터는 그저 유튜브를 틀어주는 기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만드는 도구, 상상을 구현하는 도화지 같은 존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생겼습니다.


'아이에게 어떤 게임을 허용해야 할까.'
'과몰입이 되면 어떻게 하지.'


요즘은 게임에 대한 정보도 넘쳐나고, 문제 사례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은 무조건 나쁘다”라고 선을 그어버리면 제가 살아온 길과도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게임 속에서 상상력을 키웠고, 문제를 해결하는 근육을 기를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게임이 가진 몰입의 힘과 학습 구조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충분히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어떤 게임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떤 게임이라면 교육적인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게임이 바로 마인크래프트였습니다. 마인크래프트를 처음 보여줬을 때, 아이의 반응은 단순했습니다.


“와. 나 이거 진짜 해보고 싶어!”


블록으로 이루어진 세상, 끝도 없이 펼쳐진 땅과 하늘, 직접 모으고 쌓고 부수면서 무언가를 만드는 구조. 아이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자유와 가능성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저는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블록 쌓기, 채굴, 몬스터, 건축, 그리고 창의력 교육과 연계한 수업 사례들까지.


‘이 정도 구조와 제한이라면 아이에게 크게 해가 되지는 않겠다.’


그렇게 판단하고, 함께 아이디를 만들고, 제품을 구매했습니다. 게임을 설치하고 첫 화면이 켜졌을 때, 아이의 표정은 이미 절반쯤 그 세계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마인크래프트에 빠져든 아이는 정말 말 그대로 건축의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집 하나 짓는 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벽을 세우다가도 자꾸 허공에 블록을 놓고, 문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엉뚱한 곳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양이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를 틀면, 더 멋진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나왔습니다. 성 같은 집, 공중 도시, 자동 농장, 레드스톤 회로로 만든 엘리베이터까지.


아이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언젠가 나도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로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아이는 유튜브를 보고, 일시정지를 눌렀다가 다시 재생했다가를 반복하며 하나씩 따라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이것 봐봐!”
“이거 내가 만든 집이야.”


화면 속에는 아직은 어딘가 투박하지만 분명히 아이의 취향이 묻어나는 집이 서 있었습니다. 방의 구조를 설명하고, 어디에 침대를 둘지, 어디에 창문을 뚫었는지, 어디에서 바라보는 뷰가 가장 좋은지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실험과 실패, 그리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들이 아이에게는 분명 값진 자산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게임이 교육에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믿습니다.


단순히 재미를 주는 도구가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 창의력, 협업, 그리고 스스로 학습하는 법을 익히게 해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말도 많이 쓰입니다. 학습이나 업무, 자발적인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게임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방식.


사실 아이와 함께 했던 wii 스포츠, 커비, 마인크래프트의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이미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활 속 게이미피케이션을 실험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너무 과몰입하는 게임을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 하지만 과몰입이 두렵다고 해서 처음부터 단단한 방어벽만 쌓아버리면, 그 안에 숨겨진 배움의 기회까지 함께 막히게 됩니다.


저는 아이가 게임을 하다가 눈을 반짝이며 새로운 발견을 말해줄 때마다 느꼈습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저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고, 소중한 학습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아이가 즐겨 하던 게임들을 떠올리면, 제 마음에는 단순한 '게임의 기록'이 아니라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장하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볼링 스트라이크를 치고 하이파이브하던 wii의 저녁, 커비의 마지막 보스를 함께 쓰러뜨리고 거실에서 크게 소리치던 순간, 마인크래프트 속 집을 한 칸 한 칸 쌓아올리며 “여기에 창문 하나만 더 내볼까?”라고 묻던 아이의 눈빛. 이 모든 장면은 결국 아이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동시에 담긴 기억입니다.


게임은 그저 배경이었을 뿐, 진짜 본질은 그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 아이의 관심과 세계를 존중하고, 거기서부터 배우고 가르치는 방법을 함께 찾아봤다는 것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부모들이 '게임을 허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할 것입니다. 저는 다만 제 경험을 토대로 조용히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게임을 무조건 막기 전에, 그 안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아이와 함께 한 번쯤 들여다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서 의외의 배움과 성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즐겨 하던 게임 속에서, 저는 분명 아이의 미래와 나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그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지금도 조용히 믿고 있습니다.



#교육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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