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소명을 찾다.

by 곽준원

‘소명’이라는 말을 예전에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역할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 같아서, 평범한 직장인인 저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저는, 제 삶을 설명하면서 이 단어를 조심스레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소명. 누군가를 돕는 일, 다음 세대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건네는 일, 그 안에서 묘한 기쁨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그 감각. 돌아보면, 이 감각의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행동에서 출발했습니다.


온라인 멘토링이 그 첫걸음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불특정 다수에게 질문을 받으면 글로 답하는 온라인 멘토링 플랫폼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력자들이 조금씩이라도 경험을 나눠준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취지의 곳이었는데, 설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나도 게임 개발을 꽤 오랫동안 했는데, 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저는 멘토로 가입했습니다. 문제는, 막상 첫 질문을 마주했을 때였습니다. '게임 클라이언트 개발자가 되고 싶은데,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질문이면서도, 막상 글로 답하려 하니 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까. 너무 추상적으로 쓰면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너무 구체적으로 쓰자니 질문자의 상황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첫 답변을 쓰는 데 사흘이 걸렸습니다.


한 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우고. 눈앞에 있는 것은 텍스트뿐인데, 그 텍스트 너머의 낯선 사람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이 답변을 읽는 사람이 정말 도움이 될까?'

'이 말을 들으면 괜히 더 위축되지 않을까?'


그때의 저는 아직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았고, 특히 누군가에게 ‘조언’이라는 것을 글로 건넨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정리하는 일을 습관처럼 이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의 호흡이 길어지고, 문장의 구조를 다듬는 감각도 조금씩 생겼습니다.


어떤 개념을 이해한 뒤 그걸 제 언어로 풀어쓰는 연습이 반복되면서 온라인 멘토링에 남기는 답변도 점점 더 길어지고 구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경험상 이렇습니다' 정도로 짧게 말하고 끝냈다면, 이후에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당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선택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질문도 자연스럽게 깊어졌습니다.

“저는 지금 20대 중반이고, 비전공자인데요…”

“경력이 단절된 30대입니다. 다시 도전해도 될까요?”

“이미 다른 직군으로 입사했는데, 사내에서 전직을 노려볼 수 있을까요?”


텍스트에 묻어나는 조심스러운 기색들, '실수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이미 늦은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한 줄 한 줄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글을 읽으며 저절로 떠오르는 공감의 무게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불안이, 어느 순간 제 과거와 겹쳐 보였습니다. 처음 게임 개발을 시작할 때, 첫 회사에 들어갈 때, 팀이 해체되고 진로를 다시 고민하던 시절, 그때의 저와 비슷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한 번 더 해볼 수 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온라인 멘토링을 하던 중, 어느 날 한 통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학교에서 직무 상담 부스를 운영하는데, 게임/IT 분야에서 현업 경험이 있는 멘토로 참여해 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현장에서 1:1로 찾아와 질문을 하고, 그 자리에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상담을 해주는 형태였습니다. 온라인에서는 텍스트로만 마주하던 이들이 이번에는 눈앞에 앉은 학생들로 바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솔직히 조금 망설였습니다. 글은 고쳐 쓸 수 있지만,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 담기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바로 대답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온라인 멘토링을 2~3년 정도 이어오면서, 어느 정도는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묘한 확신이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학교 직무 상담 부스 참여는 어느새 4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멘토링은 8년, 그 사이에서 저는 '다음 세대와 마주 앉는 중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활동들을 이어가면서, 저는 한 권의 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행복의 조건>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말하는 행복의 조건 중 하나가 ‘의미의 수호자’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 내가 가진 지식, 경험, 태도,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잘 설명하고 전달하는 사람.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멘토링을 하면서 저는 그 문장을 여러 번 떠올렸습니다. 질문을 보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면, 단순히 '정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묻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길을 가도 될까요?”

“지금의 저는 너무 늦은 건 아닐까요?”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질문들에 대답하면서, 저는 최대한 타인의 삶을 가볍게 다루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누군가의 20대, 30대가 담긴 고민 앞에서 '열심히 하세요'라는 말만 던지고 돌아서는 것은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질문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에 깊이 집중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의 상황이 어떤지,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준비해 왔는지, 어디까지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야 하고, 어디부터는 위로가 필요할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제가 더 많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심리학 책을 읽으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고, 진로와 커리어 관련 도서를 찾아보면서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부를 다시 제 언어로 정리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에게 풀어냈습니다. 포트폴리오 컨설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저 역시 안일한 조언을 곧잘 했습니다.


“C++ 열심히 하세요.”

“언리얼 엔진 깊게 파보세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검색창에 '게임 개발자 되는 법'을 쳐도 수없이 쏟아지는 문장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컨설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굳이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만 듣고 간 건 아닐까?'


그 생각 이후론, 저는 상담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현재 상태를 세심하게 보려고 했습니다. 지금 이 학생이 가진 강점은 무엇인지, 어떤 프로젝트를 해봤는지,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쓸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목표로 삼을 수 있는 회사와 역할은 무엇인지.


이렇게 현재를 정확히 보는 눈을 기르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에게 맞는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포트폴리오 컨설팅을 받은 학생들로부터 “정말 도움이 되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는 말을 들을 때가 늘어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가 가진 경험이 누군가에게 실제로 쓰이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그 감각은 분명 자주 느낄 수 있는 종류의 행복이었습니다. 이런 흐름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저는 조심스럽게 이런 문장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소명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타인을 돕는 사람이 되는 것이구나.'


소명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부담스럽게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제게 “당신의 소명이 뭔가요?”라고 물어도 이제는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걸어온 길을 정리해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제 의견이 옳다고 믿으면 조금은 강하게 말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게 정답이에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제 확신을 관철시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각자의 사정을 듣고, 여러 길을 돌아온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이제는 쉽게 '정답'을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이쪽으로 가면 이런 장점과 이런 위험이 있어요.”

“저쪽 길은 조금 돌아가지만, 이런 점에서 더 안정적일 수 있어요.”

“당신이 지금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선택지는 달라질 겁니다.”


방향성의 윤곽만 잡아주고, 그 길을 실제로 선택하고 걸어가는 일은 온전히 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길은 하나만 있지 않습니다. 돌아서 가는 길, 잠시 멈춰 서는 길, 옆으로 비켜서는 길. 어떤 길을 택하든, 그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 길이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직장을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온라인 멘토링을 하고, 때로는 대학에 가서 직무 상담 부스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강의실에서, 어쩌면 조용한 카페 구석에서, 어쩌면 또 다른 플랫폼에서 누군가의 질문을 읽고, 듣고, 함께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행위가 제 삶에서 맡게 된 역할, 조심스럽게 말해 보자면 제 소명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가리켜주는 일이 아니라, 함께 지도를 펼쳐 놓고, “여기쯤에 당신이 서 있는 것 같네요.”, “이 근처에는 이런 길들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말하기 위해 오늘도 조금 더 읽고, 조금 더 쓰고, 조금 더 깊이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저는 앞으로도 그런 삶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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