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미워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저 자신을 조금씩 이해해 가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나를 알아갈수록, 아버지와의 거리는 더 멀어졌습니다. 심리학 책을 읽고, 상담을 받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에는 엉켜 있던 실타래가 하나둘 풀리는 대신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왜 그때 나에게 그렇게 대했을까.’
‘왜 한 번도 괜찮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을까.’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기준은 아버지의 기분과 판단에 달려 있었고, 그 안에 감정이나 공감이라는 단어는 거의 없었습니다.
“부족함 없이 키워줬으면 된 거지. 뭘 더 바라냐.”
아버지는 그렇게 믿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만 문제없으면 자식은 당연히 잘 자라야 하는 존재. 불만이 있다면 그건 다 버릇이 없어서, 정신력이 약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의 대화에는 항상 어떤 긴장이 깔려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끝에는 "그래서 결과는?”이 따라붙었고, 칭찬은 늘 부족했고, 지적은 쉽게 나왔습니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 더 잘해.”
“네가 아직 많이 부족한 거야.”
그 말들이 쌓여 제 안에는 ‘나는 아직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문장이 깊게 박혔습니다. 명절이 되면 그 문장에 불이 붙었습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면 아버지는 식탁 끝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묻고, 평가하고, 지적했습니다. 회사 일은 어떤지,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 요즘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처음에는 그래도 예의를 지키며 대답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대화는 곧 설교로 바뀌고, 설교는 다시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저는 어느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아.. 또 시작이구나.'
체념과 분노와 피로가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명절 저녁, 모두가 잠든 시간. 저만 홀로 눈을 감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보던 밤이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나눴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대응했어야 했나, 아니면 그냥 웃고 넘겼어야 했나. 생각은 점점 과열되고, 몸은 지쳐 가는데도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해가 바뀔수록 이런 날은 오히려 더 잦아졌습니다. 한두 밤 뜬눈으로 지새우는 일이 낯설지 않아 졌고, 몸도 마음도 조금씩 닳아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 먼저 이상 신호를 감지한 것은 아내였습니다.
“자기.. 요즘 명절만 지나고 나면 너무 힘들어 보여.”
“정신건강의학과 한 번 가보는 건 어때?”
아내의 제안은 처음에는 낯설고, 조금은 자존심이 건드려지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정말 병원까지 가야 할 정도로 이상한 걸까?'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상태를 더 이상 혼자서만 버티기에는 한계에 와 있었습니다. 아내가 소개해 준 병원에 예약 전화를 걸었을 때, 초진은 보통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쭉 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역시 쉽게는 안 되는구나.’
그런데 며칠 후 다시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예약 환자가 한 명 취소되어, 빈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스로 들어간 그 한 자리.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통화가 제 삶의 방향을 조금 틀어놓은 순간이었습니다.
진료실 문을 열었을 때, 의사는 생각보다 평범한 인상이었습니다. 약간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그러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드세요?”
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뾰족한 물건을 보면 이걸로 누군가를 찌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흉측한 상상을 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 상상이 떠오를 때마다 스스로를 ‘미친 인간’이라고 욕하며 끝없이 괴로워했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끔찍하고 두려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는 것.
말을 하는 동안 제 목소리는 몇 번이나 흔들렸습니다.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이 말을 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번 뚜껑이 열린 마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제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그냥 조용히 들었습니다. 가끔은 짧게 되묻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진료가 거의 끝나갈 즈음,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명해 주신 걸 들으니, 강박증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강박증. 그 단어가 제 귀에 처음 또렷하게 박힌 순간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셨나요?”
그 질문에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려보니, 놀랍게도 그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교실에서 연필을 들고 멍하니 있던 어느 날, 가위의 날을 바라보다가 순간 스친 상상,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대략 30년이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며 좀처럼 쉽게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지었습니다.
“거의.. 30년 된 것 같네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수면 안정제를 처방해 주었습니다. 약의 이름과 효과, 부작용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었고, 앞으로 한동안은 매주 한 번씩 만나 보자고 했습니다. 진료실 문을 나와 복도로 걸어 나오는 동안, 몸은 분명 가벼워졌는데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조용한 방 안에 앉았을 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울음에는 여러 결이 섞여 있었습니다. 30년 동안 이유도 모른 채 스스로를 비난해 온 시간에 대한 안쓰러움. 최근에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마음 근력을 상당히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새로운 증상을 맞이하며 느낀 허탈함.
'나에게 이런 이름이 붙는구나' 하는 묘한 낙인감과 동시에, 그래도 드디어 이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는 조금은 안도에 가까운 감정. 앞으로 약을 먹고, 병원에 다니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과연 내가 이걸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어릴 적부터 항상 ‘괜찮은 척’ 하는 법만 배워 온 것 같았습니다.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연습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저. 요즘 많이 힘듭니다”라고 인정하고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스스로 열었다는 사실이 뜨겁게 가슴을 치고 올라왔습니다. 펑펑 울고 나서야 조금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쩌면 제 강박과 불안의 긴 역사를 설명하는 한 축인지도 모릅니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들던 말들, 실수에 유난히 예민했던 분위기, 언제나 “더 잘해야 한다”는 기준. 그 아래에서 자라난 아이는 점점 자기 마음을 감추고 스스로를 끝없이 채찍질하는 사람으로 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압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아버지 탓이다'라고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다 내 탓'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강박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제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제 마음속에서 30년 넘게 돌아가던 톱니바퀴의 정체를 조금은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나는 이런 어려움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어쩌면 진짜 출발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도 불안은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그 모든 고통을 이름도 없이 떠안고 혼자만의 죄처럼 품고 살지는 않으려 합니다.
정신과 진료실에서 처음 제 이야기를 꺼냈던 그날처럼, 때로는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마음을 보여 주고, 또 때로는 책과 글쓰기를 통해 저 자신을 조금씩 이해해 가려합니다.
30년 동안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건, 한편으로는 슬프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합니다. 늦게 안만큼 앞으로의 30년은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나를 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