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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돈이 더 필요하다.

by 곽준원
선택의 기한이 다가왔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한 가지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곧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아내가 복직을 한다.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직접 돌본다. 말만 들으면 단순한 선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매우 무거운 질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결정은 단순히 '어떻게 살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아내가 복직하려면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 했습니다. 맞벌이를 유지하려면 돌봄 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우리 둘은 그 구조가 없었습니다. 양가 부모님이 돌봄을 맡아주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아이를 봐줄 수 없다'라는 답변은 명확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셋만의 싸움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나, 아내, 그리고 아직 너무 어린아이.


아내는 긴 고민 끝에 말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직접 키우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 마음이 컸고, 그 믿음대로 움직이겠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내는 복직을 포기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완전히 외벌이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번 돈으로 세 사람이 산다'라는 구조가 확정된 순간이었습니다. 이 구조는 감정적으로 따뜻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 곁에 있는 게 좋잖아'라는 말은 듣기에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아주 단단한 현실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버텨야 합니다.”

그 ‘당신’은 저였습니다.


복직 포기의 의미는 숫자로 다가왔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내는 급여의 일부라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적은 금액이라도 가계에는 분명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업으로 전환된다는 건 그마저도 사라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 집 가계 구조는 아주 단순해졌습니다.


수입: 제 월급 하나

지출: 생활비 + 각종 보험료 + 아이 관련 비용 + 최소한의 저축


문제는, 그 수입과 지출이 거의 딱 맞거나 이미 오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조금만 예기치 못한 비용이 생겨도 바로 마이너스가 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감기 한 번, 갑작스러운 병원 진료 한 번이 바로 치명적인 부담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불안은 숫자로 표현되었습니다. 월급날 통장에 찍히는 금액은 잠깐 반짝이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생활비, 고정비, 보험료, 적금이라고 부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까지 빠져나가고 남는 금액은 거의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저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아이는 성장하고 있었고, 생활은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속은 달랐습니다.


“이 상태로는 안 된다.”


이 문장이 점점 커졌습니다. 이건 단순한 위기감이 아니라 거의 몸에서 올라오는 경고 같았습니다. ‘곧 터진다’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회사에 기대기는 더 이상 어려웠다

그 시기 회사 안의 상황을 떠올려보겠습니다. 저는 이미 팀장의 관리 부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팀 안에는 갈등 요인이 있었지만 조율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시스템 개선은 사람 몇 명의 힘으로만 이루어졌고, 피로는 몇 명에게만 몰렸습니다. 저는 이미 그 피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연봉 인상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인상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상은, 제 입장에서는 사실상 ‘없음’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이는 점점 자랍니다.


생활비는 내려가지 않습니다. 아내는 집에서 아이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저에게 말합니다.


“이 정도 인상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

즉, “크게 올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은 이렇게 들렸습니다. '지금의 너와 너의 가정은 앞으로도 이 정도에서 버텨야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돈이 부족했습니다.


한 달 버틴다, 두 달 버틴다. 그런데 이 구조로 1년을 버틴다? 그건 아니었습니다. 불만이 쌓여서 떠나고 싶다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우리가 못 산다”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건 더 나은 환경을 찾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생존 행동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돈을 더 벌어야 한다.” 명확했습니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었습니다.


불이 붙다

이직을 고민하던 때, 제게 결정적인 자극이 생겼습니다. 대학원 시절의 선배들. 그 선배들이 일하고 있는 회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연봉 수준.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연말 보상 구조.

출장은 잦고 집이랑 거리는 좀 멀 수도 있다는 조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확실히 지금보다 여유가 생긴다는 점.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제 마음은 아주 간단했어야 했습니다.


“조건이 어떻지? 문화는 어때? 나랑 맞을까?”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제 머릿속은 이 한 줄만 반복됐습니다.

“저기로 가야 한다.”


출퇴근 거리는 상관없었습니다. 출장이 잦아도 상관없었습니다. 개발 분야가 완전히 달라도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그 회사를 등불처럼 봤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켜진 작은 불빛.


제가 할 일은 그냥 그 불빛으로 가는 것뿐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회사의 업무 분야는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머신비전이었습니다. 머신비전은 공장 자동화나 품질 검사 시스템 등에서 카메라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사물을 인식하거나 판별하는 쪽의 영역입니다.


한마디로, 제가 하던 실시간 게임 클라이언트 개발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이건 내 분야가 아니잖아.”

“재미는 어디로 갔지?”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게임이잖아.”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프로그래밍은 프로그래밍이지. 코드는 다 코드지.”


이건 합리화였습니다. 하지만 그 합리화는 매우 실용적인 합리화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직업의 로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 우선순위는 단 하나였습니다.


돈.


차갑지만, 사실이었습니다. 그 우선순위는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우선순위였습니다.


서로 다른 목적, 하나의 합의

이직 문제는 저 혼자만의 결정으로 끝나는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와도 긴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옮기려는 회사는 다른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동 거리가 길어집니다.


통근이 버거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출장이 많으면 집을 비우는 날도 늘어납니다. 그건 육아 부담을 아내에게 더 넘긴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원래라면 아내는 반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신이 더 멀어지면 나는 더 혼자 해야 되잖아.”

“나는 이미 지쳐 있는데, 당신은 더 집에 없게 되는 거야?”


이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뜻밖이었습니다. 아내도 이사를 너무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살던 동네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공간 자체를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의 생활환경은 아내에게도 이미 한계를 주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하루 종일 집 안에만 묶여 있는 구조. 도움받을 사람 없이 혼자 있는 구조. 지지망 없이 반복되는 하루.


아내에게 제안한 이직은 단순히 '내 연봉을 올리겠다'가 아니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우리가 이 동네를 떠날 수 있다'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의 목적이 달랐지만, 필요는 겹쳤습니다.


저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아내는 지금의 생활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방향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습니다.


“이직하자.”

“이사하자.”


우리는 그 지점에서 합의했습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설득해서 억지로 끌고 가는 합의가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절박함이 서로에게 맞물려 같은 결론을 만들어낸 합의였습니다.


게임에서 머신비전으로

그렇게 저는 결국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이직의 방향은 ‘게임 업계 내에서 더 나은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아예 업계를 바꾸는 결정이었습니다. 그건 스스로에게도 큰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정체성의 일부를 내려놓는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나는 게임 개발자다.”

“나는 재미를 만드는 사람이다.”

“나는 플레이어의 체험을 코드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저는 이렇게 말해야 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나는 머신비전 쪽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정과 판정, 자동화 프로세스를 다룹니다.”


이건 어떤 면에서는 후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꿈에서 멀어졌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달랐습니다. 이건 도망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전방 이동이었습니다.


가장 큰 위협을 향해 정면으로 대응하려는 선택이었습니다. 당시에 저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적은 급여’였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이 눈앞에 주어졌습니다. 그럼 거기로 가야 했습니다.


저는 그걸 단순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우선순위는 내가 아니라 가정이다.”

“가정을 안정시키는 선택이 곧 나의 길이다.”


이 시기의 제 마음은..

그 시기의 감정선을 단계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내의 복직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고 했고, 그 결정은 즉시 외벌이 구조를 확정 지었습니다. 외벌이가 되는 순간부터, 가계의 숫자는 즉시 긴장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생활비, 보험료, 적금, 병원비 등 필수 지출만으로도 숨이 차는 상태였습니다.


월급은 들어왔다가 거의 그대로 나갔습니다. 저는 '이 구조는 오래 못 간다'라고 판단했습니다. 회사 내부 상황은 저에게 더 이상 기대할 희망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팀장의 관리 부재, 쌓여가는 피로, 보이지 않는 책임, 그리고 낮은 연봉 인상률. 이대로 버텨보라는 말은 '당신 사정은 회사의 우선순위가 아니다'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저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건 불편한 감정이 아니라 명확한 결론이었습니다.


“돈이 더 필요하다.”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부끄럽지 않은 결론이었습니다.


마침 대학원 선배들을 통해 높은 연봉과 인센티브 구조를 가진 회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출장은 잦고, 거리도 멀고, 업종은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었습니다. 제 우선순위는 명확했으니까요.


아내는 그 회사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유는 다릅니다. 저는 돈이 필요했고, 아내는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합의는 같았습니다.


“지금은 이쪽으로 가자.”


저는 결국 게임 밖으로 나갔습니다. 머신비전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제 직업적 정체성이 일부 꺾이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후퇴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 책임은 저 혼자의 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기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또 한 번 삶의 방향을 꺾었습니다. 이직이라 부르기에는 감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이건 거의 이주에 가까웠습니다. 업계 이주, 생활권 이주, 삶의 기준 이주.




#돈 #이주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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