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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묵은 강박장애, 해결책은 무엇일까

by 곽준원

뼈아대 유튜브 영상 중에 '부정적 마인드가 초래하는 파괴적 결과'라는 섬네일에 관심이 생겨 시청했다. 어려서부터 원 가족에게 늘 부정적 피드백을 받아온 나에게 맞춤형 영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에는 EBS 다큐멘터리 스토리를 소개해준다. 중학생 아이가 식탁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밥맛 떨어지니까 앉지 말라고!'라며 호통을 치는 장면을 묘사한다. 어떤 이유로 자신의 부모에게 그런 분노의 모습을 보일까. 그 청소년은 부모의 부정적 피드백으로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부모의 기대도 자신의 미래도 모두 파괴하려고 삶을 어긋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며 깊이 몰입했다. 어느 순간 몸의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시청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영상의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어린 시절부터 생겼던 버릇이라고 치부했다. 그런데 예민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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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벨라 마키는 강박장애,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었고 달리기라는 운동으로 극복했다. 저자의 글을 읽어보니 최근 들어 심각히 증폭된 우울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침투적 사고로 몇 시간이고 같은 생각을 하는 현상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강박장애였다. 나의 강박장애는 언제부터 시작한 것일까.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은 초등학교 6학년 친구와 다툰 소풍날이다.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와 트러블이 발생하거나 부정적 피드백을 받으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했다. 그럴 때마다 듣는 소리는 "너 진짜 예민하다.", "네가 성격이 더러워서 그래", "별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신경 쓰냐"라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내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인지하고 지금껏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 유달리 심해진 침투적 사고로 급격히 우울해졌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법한 일도 이제는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여 정신과를 예약하고 방문했다.




[30년 묵은 강박장애]

샤프, 가위, 칼과 같은 뾰족한 물건을 보면 곁에 있는 사람을 해코지하는 상상을 한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고 해도 이건 미친 생각이다.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계속 생각나서 괴롭다. 이것이 바로 침투적 사고의 특징이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있었던 생각의 습관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잘 기억하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머리가 뛰어난 것과 강박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침투적 사고로 인해 생각을 여러 번 무한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냅스에 각인이 되는 것뿐이다. 며칠 지나 다시 생각나고 몇 시간 동안 반복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뇌의 시냅스에 저장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몸이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강박장애가 그토록 괴로운 질환인지도 모르겠다.


정신과 진료 상담을 받으며 30년 된 강박장애를 발견했다. 어린 시절에 성추행을 당한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 옛 기억을 떠올리며 감정이 더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가히 충격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슬픔이 밀려왔다. 꿋꿋이 흐르는 눈물을 참고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샘이 폭발했다. 30분이 넘도록 서럽게 울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노력한 모든 과정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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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머릿속에 침투하는 생각이 수치스러워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도 못하고, 그게 강박장애 증상이란 것을 모르고 살기도 한다. 그러면 멋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끔찍한 생각이 한낱 생각일 뿐 실제로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 자꾸만 그런 생각을 무효화하고 침묵하게 하려 애쓴다.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10p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를 읽기 전까지 그저 단순 감기와 비슷한 우울증이라고 생각했었다. 우울증은 나름 심리학 책과 치유의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공황장애도 여러 책을 통해 증상을 파악했다. 지하철을 타고 사람이 많은 지옥철에서는 목이 조이는 느낌이 공황장애 증상임을 알고 이제는 여유로운 시간에 지하철을 탄다. 독서 모임을 통해서 대인관계도 상당히 개선했다. 이런 나에게 30년 묵은 강박장애가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강박장애인지도 모르고 지낼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에는 격렬한 운동으로 몸이 지칠 때까지 움직였다. 그리고 게임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했다고 생각한다. 운동과 게임에 몰입하는 순간에는 다른 생각을 절대 할 수 없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나름 강박장애를 잘 이겨낸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물론 일중독과 같은 자기 파괴적인 삶도 살았지만 30년 넘도록 잘 이겨내 왔다.




[해결책은 항우울제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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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처방받은 항우울제는 부작용이 존재한다. 속이 울렁거리고 불면증이 뒤따를 수 있다. 침투적 사고로 새벽까지 잠을 못 자는 경우에 신경안정제를 복용해봤지만, 항우울제는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의 상태를 면밀히 체크하고 있다. 처음 일주일은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움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강박 증상으로 여겼던 침투적 사고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 메스꺼움은 조금 사라졌지만 귓속에서 이명이 끊임없이 들리고 있다. 우선 침투적 사고가 줄어들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사람들은 왜 달리기를 결심할까? (중략)
그런데도 운동을 하는 이유는 분하게도 운동이 내게 큰 도움이 돼서다.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199p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하기 전까지 항상 내 삶에 운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게임과 운동은 내 삶에서 없어서는 절대 안 될 요소였다. 격렬한 운동과 게임은 침투적 사고를 막아주고,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그렇게 내 삶의 한 부분이었던 운동은 결혼 생활로 서서히 줄어들었다. 직장 생활 가운데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게실염이라는 질병으로 심하게 아파 10일간 입원 치료도 했다. 면역 체계가 무너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였고, 운동하지 않았던 나의 몸은 어느덧 허약해지고 있었다. 오랜 마음의 질병이 이제야 무엇인지 알아낸 현재로서 다시 운동을 내 삶에 추가할 시기인 듯 보인다.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달려야만 했다.


나는 한 번 계획한 일은 절대 변경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극도로 두려워한다. 하지만 독서를 꾸준히 하며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사내 독서 모임도 추진했고, 씽큐베이션에도 지원하여 3개월을 열심히 읽고 쓰고 토론했고, 그룹장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모임을 리딩하고 있다. 대중 앞에 서면 옛 트라우마로 옴짝달싹 못하던 발표도 이겨냈다. 이제 남은 건 오래된 강박장애를 다스리는 일이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오래된 강박장애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약물 치료로 침투적 사고를 제어해야 한다. 약으로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절대로 약물 치료만으로 강박장애를 이겨내긴 어렵다. 심리 상담과 운동을 병행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로 결심했다. 밖에서 달리든 헬스장에서 달리든 간에 그 순간만큼은 고통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아에 몰입하고 싶다. 물론 매일 운동은 불가능하지만 매일 하려고 의식적 노력을 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30분 동안 5km를 달렸다. 항우울제의 부작용도 침투적 사고도 달리는 동안에는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운동이 끝나고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이명이 심해지긴 했지만 운동하는 동안에는 오로지 나의 몸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항우울제 복용과 달리기와 상담으로 강박장애, 공황장애, 우울증을 이겨내고 가족과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우울증, 강박장애는 숨길 필요가 없다. 그리고 회복하는 과정을 부끄럽다고 여길 이유도 없다. 이렇게 내면의 정신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낼수록 이겨낼 의지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자신의 상태를 어디까지 내비쳐야 할지 모르시는 분들에게 원하는 만큼 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함께 치료받고 달리며 이겨냈으면 좋겠다.




참고 도서 :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by 벨라 마키

#씽큐베이션 #씽큐온 #빡독 #체인지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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