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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Nov 15. 2019

자유와 평등의 합의점은 어디일까

학창시절에 딱 한 번 전학이라는 경험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시기의 일이었다. 전학이라는 뜻은 사는 지역을 옮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했고, 주변 환경도 달라졌으니 당연하게도 적응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살기 좋은 동네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냥저냥 불편함 없이 살았다. 나이가 먹고 마음에 쏙 드는 이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 사는데 환경과 이웃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 개월이 지나서 직장을 옮기며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아이가 돌이 지나갈 무렵부터 부모의 양육 이외에 주변 환경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 일이 발생했다. 이사한 곳은 빌라와 단독주택이 서로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환기를 하는 도중에 바로 옆집에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을 혼내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입에 담기 험악한 말투가 우리 아이에게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을 닫아도 간간이 들리는 욕설에 아이가 배우면 어떡하나 내심 불안했다. 밤이면 술에 취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도 하나의 스트레스였다. 조금 낙후된 지역이라서 그런지 낮 시간대의 놀이터는 아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아내와 단둘이 지내곤 했다.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또 한 번 직장을 옮기며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사 이후 아내의 얼굴 표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동네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많아서다. 나이대로 비슷하여 서로 대화도 나누며 정보를 교환하고 공감했다. 아이를 키우며 가족과 부모의 양육 상태만 괜찮다면 지역은 문제 될 것 없다고 착각했었다. <우리 아이들>에서 가족, 양육, 학교교육, 공동체라를 심층 분석한 내용을 살펴보며 나의 무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생활하는 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

책에서는 미국의 예를 들어 195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족 구조의 관점에서 불평등을 조명한다. 상위 1/3 계층에서 발생한 이혼율은 1970년대 점정에서 후퇴한 반면 하위 1/3에 해당하는 인구에서는 변화무쌍한 유형이 등장한다. 사회학자 사라 맥라나한은 이를 '깨지기 쉬운 가족'이라고 이름 붙였다.


양육을 늦추는 것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나이가 더 많은 부모들은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아이들을 지원함에 있어서 더 잘 구비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 100p


이혼, 혼외 출산, 동거, 여성의 고용이라는 주제로 가족구조의 변화를 책에서 설명한다. 고소득층의 부모들 혹은 고학력의 교육을 받은 부모들은 이혼과 혼외 출산, 동거의 비율이 상당히 낮았다. 그와 반대되는 계층에서는 동거 중에 아이를 임신해도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교적 적었고, 파트너 관계도 지속되지 않았다. 여성의 고용이 상승하는 현대 사회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1970년대 부모와 비슷한 시간을 아이들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의 발달로 기계가 사람 대신 상당히 많은 일을 해주기 때문이다. 인터넷, 자동화 기술이 여성의 고용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준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받지 못한 저학력의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양육]

유년기의 경험은 가장 강력한 형태로 우리의 존재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는 것이다. 유아의 건강한 발달은 어른들과의 안정적인 관계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우리 아이들> 164p


유년기의 부모와 애착형성의 부재로 인해 현재 힘든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지금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아정체성을 찾고, 소프트 스킬을 뒤늦게 익히는 중이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그냥 열심히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키우면 될까. 그것만으로 부족해 보였다. 애착 형성을 위해 끊임없이 아이와 함께 행동하려 했지만, 항상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나이가 되어 양육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는 육아 방침은 방임 육아로 아이에게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관계를 맺고 세상의 규칙을 적절히 알려주어야만 제대로 된 육아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아이는 자제력을 키우고 사회성을 습득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육체적, 정서적 안정감이 관계 속에서 싹튼다.




[학교 교육]

부유하고 교육을 잘 받은 가정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각 가정의 배경과 관계없이 학생들이 공부를 더 잘한다. 이러한 유형은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우리 아이들> 240p


학교 등록금도 빠듯한 가정 형편에서 교과 과정 이외의 활동인 과외 활동은 생각하기 쉽지 않다. 너도나도 사교육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가운데 같이 동참하지 않는다면 지역 공동체에서도 속하기 쉽지 않고, 소외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부모의 수준에 의해 지역학교 교육 수준이 형성된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1.5km 떨어진 다른 단지의 아파트 시세는 같은 평수, 같은 건설 업체이지만 차이가 엄청나다. 학군이라는 명목아래 벌어진 가격 차이다. 학군이 좋다는 건 결국 학생들의 성적이 우수하다는 말로 이어진다. 그들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당연하게도 소프트 스킬을 두루 익힐 수 있는 과외활동을 아이들에게 충분히 교육할 수 있다. 이처럼 과외활동에 착실하게 참여하며 쌓는 경험은 학창 시절은 물론 그 이후에 나타나는 긍정적 성과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동체]

미국의 교육 받고 부유한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사회학자들의 '약한 유대관계'라고 부르는 것. 즉 다른 사회 분야의 지인들과 광범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아이들> 287p


결국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에 비해 대학 교육 이상을 받은 부모들은 많은 수의 가까운 친구와 지인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부모의 양육에 한계를 알게 된다면 도움을 요청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직접 멘토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질문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느슨한 유대관계가 적은 부모들은 이러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므로 아이들의 교육에 점점 어려움을 겪는다. 앞에서 이야기한 아이의 유아 시절의 지역 공동체에서 무언가 조언을 얻거나 도움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이는 질 높은 교육의 부재, 도서관 이용, 공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 스포츠 리그, 청소년 단체와 같은 복지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역 공동체의 연결이 끊어지고 낙후되어 간다면 점점 서로에 대한 신뢰도 잃어갈 것이다. 과거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마을, 지역 단위에서 공유되었고, 어른들의 공통적인 책임이었지만, 이러한 윤리는 지역사회의 불균형 앞에 희미해져 버렸다.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는 앞에서 이야기한 4가지 주제에 관한 해결책을 제안한다. 기회의 평등을 촉진하려면 부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의 전쟁>의 저자 앤드류 양은 이와 비슷한 측면에서 부의 균형을 맞추려고 기본 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자는 제안한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 정부의 정책은 투자한 만큼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부의 정책에 관심을 갖고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은 결국 교육 받고, 부유한 상위 계층이기 때문이다. 저소득 계층은 참여의 불평등을 겪으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불안을 느낀다. 이런 불안은 주어진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강력한 독재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규범은 자세하게 보면 복잡한데, 특히 정확히 어떤 것을 평등하게 할 것인가라는 논점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 347p


가족 구조의 사회문제, 부모의 양육 시간 확보, 학교에서 시행하는 과외활동의 유로화 폐지, 공동체 결속 강화와 같은 해결책으로 기회 격차를 줄이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의무감을 갖고 있지 않으니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아닌가. 다함께 헤처나가야 할 문제다. 자유와 평등의 조화로운 합의점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참고 도서 : <우리 아이들> by > by 로버트 D. 퍼트넘

#씽큐베이션 #체인지그라운드 #디지털시대와아날로그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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