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네 집 굿후렌드라며?"
"굿후렌드? 후렌드? 프렌드 아니야?"
"몰라 굿후렌드라고 저기 학교 앞에 쟤네집 이래"
초등학교 3학년쯤 때인가
그맘때 나이면 할 수 있는 아무 생각 없는 짓궂은 장난일 뿐이지만 그때 느꼈던 당황스러움, 속에서 울컥 치밀던 뜨거운 무언가는 아직도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이다. 상처까지는 아니고 그냥 강렬한 기억 중 하나 정도?
굿후렌드가 뭔가 하면, 영어로 "good friend"라는 단어를 한글로 적어둔 우리 가게의 상호명이었다.
"굿후렌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던 우리 가게. 엄마랑 아빠가 운영하던 치킨집 겸 호프집이었다.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한 번씩 "굿후렌드"라는 이름은 내 머릿속에 종종 떠오르곤 한다. 놀림거리가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기억도 좋은 기억도 없는 곳 같은데. 왜인지 여러 가지 기억들이 엉겨서 주기적으로 생각이 난다. 아직까지도 그 가게의 위치, 모양, 옆에 있던 다른 가게들, 테이블 개수와 의자 디자인, 특유의 기름냄새까지 모든 게 생생하다.
학교 운동장 담장 맨 끄트머리 쪽으로 가면 볼 수 있었던 가게. 나는 등하굣길에 그 맨 끄트머리 담장을 (물론 선생님 몰래) 넘어 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 담을 넘어서 길을 건너면 바로 있던 가게. 4인이서 앉을 수 있는 테이블 4-5개로 구성되어 있던 작은 우리 가게 옆에는 애견샵이 있었다. 가게 맨 안쪽엔 주방이 있었고 그 주방뒷문으로 나가면 바로 옆 가게인 애견샵과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그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진하게 풍기던 애견샵 가게의 샴푸냄새와 시끄럽던 개 짖던 소리. 그중에서도 특히 냄새가 생생하다. 싸구려 꽃향기 같기도 하면서 엄청 진하고 미끌미끌한 기분을 주는 향기. 그 안에는 살짝 비릿한 개냄새가 같이 섞여있었다.
친구들은 그 가게 명으로 종종 날 놀리곤 했지만, 아마도 부모님에게는 당분간 생계 걱정을 하며 새로운 직업을 구해도 되지 않는, 지역 내에서 몇 평이라도 뿌리를 내리고 돈을 벌 수 있는 든든한 곳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엄마 아빠는 저녁이면 치킨을 튀겨서 매장에서 판매하고, 시내 곳곳에 오토바이를 이용해 배달도 다니곤 했었다. 치킨뿐만 아니라 아마 간단한 마른안주나 무침종류의 안주들도 팔았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생이 경제관념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었겠는가.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임대료나 운영비 등에 대한 부담이며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느라 부모님이 쉽지는 않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지, 당시에는 그냥 우리 가게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던 것 같다. 엄마랑 아빠가 치킨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오징어나 땅콩 등 남은 안주거리들을 챙겨 와서 간식으로 주는 걸 받아먹는 것도 재밌기만 했었다.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3학년쯤 되는 어린아이들이, 밤새 부모님 없이 집에 있다는 건 그야말로 처음 겪어보는 흥분되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저녁시간대부터 장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엄마가 우리의 저녁밥을 챙겨주고 가게로 출근하고 나면 나와 동생은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서 자유로워져 보고 싶은 TV 방송도 보고 온갖 놀이들도 하면서 우리만의 밤의 세상을 즐겼다. 그중 우리가 제일 즐겨하던 놀이는 엄마 아빠가 일 마치고 올 때까지 잠들지 않고 버텨보기였다. 이불속에서 동생과 파리채, 효자손 등을 세워 인디언 텐트 같은 모양을 만들어 허리며 고개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앉아서, 손전등 불을 켜두고 마치 캠핑 온듯한 역할 놀이를 하기도 하고 엄마 몰래 도시락 통을 꺼내서 그 안에 간식거리며 빵 등을 구겨 넣고 이불속에서 야금야금 먹으면서 잠을 이겨보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항상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아침이었고 엄마아빠는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엄마 아빠가 일 마치고 올 때까지 잠들지 않고 버텨보기는 웬만해선 성공하기 쉽지 않은 도전이었기에 우리는 한동안 끈질기게 그 놀이에 몰두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차츰 부모님 없는 우리만의 밤의 세상이 익숙해지자 내 안의 정체 모를 병이 슬그머니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른이 없는 집에서 나보다 어린 동생을 챙기며 밤새 있어야 한다는 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과 공포 등이 되어 안 좋은 방향으로 발현됐던 것 같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집안의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가스밸브 잘 잠그고"라는 엄마의 당부는 "가스 냄새나는 것 같아, 가스가 새는 것 같아"라는 공포가 되어 나를 옭아매었다. 나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엄마 가스 냄새나는 것 같아. 가스가 새는 것 같아." 라며 두려움을 토로했었다. 굳게 잠겨 있는 가스 밸브 옆에 가서 가만히 귀를 대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코를 킁킁대며 가스 냄새가 나는지 맡아댔었다. 엄마 아빠도 어린 우리만 집에 있는 게 불안했었을 테니 전화가 울리면 바로바로 받는 편이었지만 바쁠 때는 통화가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배달 주문을 전화로 받던 시절이다 보니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는 나의 전화가 짜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가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에서 집까지 밤 길을 달려와 몇 번이고 안심시켜 줬었던 기억도 나고, 엄마 아빠의 부탁을 받고 친하게 지내는 옆집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와서 아무 이상 없다고 확인을 해주시던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나는 그 불안과 공포를 떨칠 수가 없었고 (과학책 어디선가 본 내용대로) 비눗물을 만들어서 가스밸브에 칠해보면 새는지 알 수 있다며 그 단계까지 확인을 하곤 했었다. 그러고 나서도 계속 마음속으로는 혹시.. 혹시..라는 생각을 하며 이불속에 누워서도 내 코에 남아 있는 듯한 가스냄새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엄마 아빠가 왔을 때 나랑 동생이 죽어있으면? 하는 걱정을 했었다.
가스냄새로 시작된 불안은 모든 곳으로 퍼져나갔다. 아파트 복도에 누군가의 인기척이라도 느껴지면(신문배달, 우유배달이 흔했고 현관문 앞에 전단지를 부착하는 사람들도 많던 시절이었다) 도둑이 드는 건 아닐까 누가 문을 열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고. 바람이 세게 불어 베란다 창문이 흔들리는 날이면 누가 옥상에서부터 줄을 타고 내려오는 게 아닐까, 베란다를 통해 침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에 시달렸다. 나보다 조금 어리고 무던하기도 한 동생은 아무 걱정도 없이 "언니 괜찮아 괜찮아" 라며 곧잘 잠이 들었지만 나는 그토록 동생이랑 같이 성공하고 싶었던 부모님 오기 전까지 깨어있기를 어느새 혼자 (원하지도 않는데) 하게 되는 밤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혼자서 자꾸 성공하던 부모님 올 때까지 깨어있기, 그때 현관문을 들고 들어오던 엄마 아빠의 목소리는 서로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무겁고 가라앉은 기운을 풍기기도 했던 것 같다. 마음속으로는 너무 반가워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하고 싶었지만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그래서 난 내가 깨어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잠든 척을 하곤 했었다.
몇 년이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중에 부모님이 그 가게를 정리하게 되면서 우리끼리 저녁에 있는 시간이 사라지자 나의 병적인 불안과 공포도 씻은 듯이 사라지긴 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많은 게 바뀌고 사회의 인식도 달라져서 어린아이들끼리만 어른 없이 집에 있는다거나, 밤새 부모님이 자녀만 두고 일을 한다거나 이런 일이 잘 없는 편일 테지만 그 당시에는 그리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육아 관련 프로그램을 자주 즐겨보는 요즘, 그때 내 상태는 이런 거였겠구나 많이 버거웠었겠구나 라며 혼자 짐작하고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곤 한다.
별 탈 없이 성인이 되어 잘 지내고 있고, 어렵고 힘들던 시절이니 그렇게도 살았었구나 할 뿐인데도 이상하게 꼭 주기적으로 내 머릿속에선 굿후렌드로부터 시작해 개샴푸냄새 그리고 마지막엔 주방의 (나지도 않던) 가스 냄새로 이어지는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것들은 내 마음속 혹은 머릿속 어딘가에 단단히 박혀서 아직 거기 생생하게 남아있음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튀겨주던 치킨의 맛은 정작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어쩜 저런 것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순서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그리고 요즘은 그 생각의 말미에 여태 생각해보지 않던 다른 생각들이 하나씩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 가게는 엄마 아빠의 몇 번째 직업이었을까
그때 엄마 나이는 몇이었을까
어린 두 딸만 집에 두고 밤새 취객들을 상대로 장사한다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계를 위해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가 하교하는 시간에는 일부러 깨어있었던 걸까
우리 가게는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을까 그랬으면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도 조금이라도 활력이 넘쳤을 텐데
새벽에 귀가하던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던 건 삶의 힘듦 때문이었겠지 등등..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은 굿후렌드를 기억할까
기억한다면 각자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다음에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 한 번쯤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냥 그때는 그렇게도 살았었지. 우리 참 서로 애쓰며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정도의 추억으로 이야기하며
치킨에 맥주 한잔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