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그런 표현 말고.. 대체할 거 없을까. 너무 낯간지러운 말 같고 흔히들 쓰는 유행언어 같아서 안 쓰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다른 표현이 없다. 그냥 시절인연이 맞으려나.
여태 숱하게 친했다가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봤었고,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최선의 배려와 예의를 다 하는 성격이다 보니 그러려니 하려고 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저릿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3-4년은 족히 가깝게 지내면서 내가 많이 챙겨줬던 친구가 있었다. 사회에 나와서 만나게 된 인연이라 어디까지 친해질 수 있을지, 또 개인적으로 힘든 면이 많은 친구라 어디까지 마음을 터놓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대화가 잘 통하고 나보다 여린 모습에 많이 챙겨주고 싶었었다. 서로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외롭거나 힘든 부분들을 나누기에도 좋았고, 책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들에 관심이 많은 점도 비슷했다. 가치의 가치에 대한 서로 다른 또는 서로 일치하는 그런 대화들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만나서 힘들었던 과거사를 공유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친구가 개인적으로 마음이 많이 힘든 시기를 보낼 땐 일부러 시간을 내서 바람 쐬러도 함께 다니고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것도 먹고 기분을 환기시켜 주려고 노력도 많이 했었다. 이런 내 노력에 대해서 생색을 내거나,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만큼 해야 해라고 등가를 요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렇게 온 마음을 다 했음에도 결국엔 아무렇지 않게 남과 같은 사이로 돌아가버린 것이 애석한데 달리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이렇게라도 남겨야 스스로 하소연하듯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렇다.
얼마 전 그 친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서 갑작스럽게 회사도 관두고 지역도 옮겨서 떠나버렸다. 친한 사이라고 속속들이 모든 걸 공유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미처 다 말할 순 없어도, 그 친구가 당시 처해있던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걸 알았기에 누군가를 만나고 가정을 꾸리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를, 주변의 믿을 만한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 보기를 개인적으로 바랬었다. 어쩌면 이것도 나의 오지랖이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친구는 단기간의 꽤 짧은 연애와 함께 훌쩍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어찌나 갑작스럽고 일방적이었던지 나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고 급기야 화를 내는 친구도 있었다. 다들 서운해하고 화까지 내면서도, 무엇으로라도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그 친구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마 걱정하는 마음들이 더 컸던 것 같다.
우리가 진심이 아니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심이었으니, 또는 너에게 베풀었으니 갚아줬으면 좋겠다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맹세코 아니다. 그 친구가 우리에게 진심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좋아하고 아끼던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고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슬픔? 사실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씁쓸함인가. 아니면 정말 그냥 우리의 오지랖이었을까.
우리가 아끼던 사람에게 정말 진심을 다해 마음을 쏟았는데, 그런 진심도 가끔은 닿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구나라는 데서 오는 상처일까.
너무 아무렇지 않게 통보식의 인사만 남긴 채 떠난 뒤 이제 연락도 잘 닿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린 우리. 먼저 연락을 해볼 수도, 계속해서 닿으려고 노력을 더 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힘으로 안녕하기를 바랄 뿐.
모든 관계가 진심이라고 해서, 좋은 마음이라고 해서 다 잘되는 것만은 아닌 거 같다. 아마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다들 이런 시절인연.. 을 가지고 있겠지? 지금의 자리에서 남아있는 인연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또 마음을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