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통사고가 났다. 100% 내 잘못으로 주차장에서 주차된 차를 박고 말았다.
그날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고 마음이 어지러웠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어서 조급했고 빨리 처리하고 싶음과 월요일 아침의 피곤함 등이 섞여서 주의가 산만했던 것 같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후진해서 나가려는데, 잠시 딴생각을 하는 순간 그대로 주차되어 있던 차의 귀퉁이를 박고 말았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손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보험회사를 부르고, 상대 차주에게 연락을 하고, 보험처리 및 사고 후처리를 하고,,
사고자체가 큰 사고가 아니라서 차들의 파손도 경미했고 아무런 부상도 없었다. 내 차는 수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사고에 괜찮은 정도가 어디 있겠냐만은, 주변 지인들은 이 정도 접촉사고는 큰 사고도 아니고 경미한 정도라 다행이라고 말해줬다. 놀라긴 했겠지만 사람이 다치거나 차가 많이 부서진 것도 아니니 보험사 통해서 잘 처리하고 해결하면 되는 거라며. 앞으로 더 조심하면 된다고. 이참에 배웠다고 생각하자 라며 나를 위로해 줬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사고 후 나 자신에 대한 실망+원망+좌절감 등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에 잠식당해서 한동안 아무 일도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었다.
내 잘못으로 사고가 난 건 맞지만 일단 일어난 일을 어찌하겠는가. 지인들 말대로 잘 수습하고 추스르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머리로는 다 알겠는데 사고를 낸 잘못에 덧붙여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실수와 원망들까지 끊질기게 나에게 붙어서 스스로를 자꾸 괴롭혔다. 사고 자체에 대한 자책보다도 그냥 나 자신과 인생 전반적인 것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재수가 없을까.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을까. 한심하다. 바보 같다. 내가 다 망쳐버렸다. 하는 생각들. 머릿속을 계속 잠식시키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친한 친구 C에게 이런 상태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이야기를 들은 C는,
"한순간 방심으로 사고가 났다 - 처리를 했다 - 다신 이러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 다친 사람이 없고 피해가 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로 마무리하면 되는 문제라고 명료하게 정리를 해줬다. 하루이틀 정도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털어버리라고 했다. 운이 없다느니 재수가 없다느니 그런 말이 어딨냐며 아무 연관성 없는 생각이니 사건 그대로만을 바라보라고 했다.
C의 말이 맞는데 무엇이 이렇게 나를 힘들까 할까 생각하며 곰곰이 돌아보니. 실수하지 않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모든 걸 통제하려는 오만함으로 인한 문제 같았다. 사실 이 교통사고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자의든 타의든) 변수나 실수 등이 생길 때마다 이 감정적 패턴을 반복해오곤 했었다.
나는 이번에도 교통사고를 냈다는 사건 자체보다도, "난 운전을 잘해야 해, 조심해야 해, 항상 집중해야 해"라는 데에 몰두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 "너는 꼼꼼하잖아 차분하잖아 완벽하게 해내잖아"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는데, 그 말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교통사고를 내는 순간 내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과오라도 생긴처럼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고 모든 걸 망쳐버린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이게 그럴 일이냐 싶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을 뿐이고, 실수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면 되는 건데. 난 나 자신에게 실수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모든 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싶어 하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다. 이 세상에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다 되는 일이 어디 있는가. 모든 걸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때로는 나 때문에 혹은 타인이나 환경 때문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생길 때마다 모든 걸 망한듯한. 다 내려놓고 싶어지는 이상한 무력감에 시달렸다.
이런 내용들을 힘들게 C에게 털어놓으니 평소에도 늘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완벽주의와 통제력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열심히 살고 실수하지 않으려는 것은 좋은 자세지만, 실수나 잘못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때로는 "그러려니, 그럴 수 있지"라고 넘어갈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한두 가지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걸 망치는 것은 아니라고.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위로를 받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닥칠 때마다 연관 없는 과거의 잘못이나 부정적인 감정들까지 줄줄이 불러와 나 자신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스스로를 괴롭히곤 했다.
그날 내가 안일했다, 조급했다, 조심성이 없었다. 앞으로는 안 그래야지. 조심해야지. 놀랐지만 크게 하나 배웠다.라고 생각하고 빨리 회복하는 힘을 기르는 게 정답인데. 이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C는 마지막으로 "야 너 그렇게 완벽하지도 않아 ~ 적당히 살자! 그렇게 잘났으면 서울대 갔겠지 안 그래?" 라며 나를 놀렸다. 그 말을 들으니 긴장이 탁 풀리며 웃음이 났다. 그래. 나 그렇게 완벽하지도 잘나지도 않았는데 실수 좀 하면 어때.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고지만, 어쨌든 일어나 버린 일.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으니. "뭐라도 하나는 또 배우고 지나갈 수 있었다."라고 포장을 해본다. 모두들 항상 안전운전!! 차조심 사람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