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이유도 가지가지

by 서나림

사람을 만나서 친해지는 이유가 여러 가지이듯 멀어지는 이유들도 가지가지



- 보험 같던 우리의 우정 A.

입사동기들 중 우리 둘만 동갑이었고 말도 잘 통하는 터라 급속도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회사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퇴근 후에 같이 공연도 보러 다니고. 주기적으로 교외로 여행도 다녔었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많이 친해지기 힘들겠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걸 넘어설 정도로 가까워져서 정말 친구라는 감정을 느꼈었다. 동기애를 넘은 우정이랄까.


그러다 A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후로부터 부쩍 기분 나쁜 일들이 잦아졌다. 나는 평소에도 혼밥을 잘하고, 딱히 꼭 A와 점심을 반드시 같이 먹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좀 선을 많이 넘었다고나 할까. A의 남자친구는 우리 회사와도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는 모양이었는데, 점심시간마다 그것도 식사시간을 5분에서 10분 앞두고 A는 부쩍 통보식으로 점심약속을 파투내곤 했다. 최소 30분 전이라도 미리 말해주면 좋았을 것을 매번 5분 10분 전에 "미안 나 오늘 점심 약속 있어!"라고 말해오곤 했다. 처음 몇 번은 그러려니 했었는데 눈치가 빠른 편이라 곧 알게 되었다. 나와의 점심약속을 일종의 보험?처럼 활용하고 있었다는 걸. 남자친구가 일이 생기거나 약속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랑 같이 먹을 수 있게 약속을 상시로 잡아둔 뒤에, 남자친구가 시간이 된다고 하면 나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남자친구와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친한 무리들과 다 같이 잡은 약속 날짜에 당일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는 등.. 남자친구와의 약속을 전제로 하되 그와의 약속 불발을 대비해 나와 친구들과의 이중약속을 보험?으로 사용하는 행태가 계속되었고.. 결국 나는 점차 A와의 식사며 약속을 피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냥 마주치면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정도의 거리를 유리할 뿐,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거나 마음을 터놓지는 않게 되었다.



- 롤모델의 몰락 B.

모든 면에서 쿨하고, 열려있던 B. 항상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이 멋있어서 나의 롤모델이었다. 나보다 사회생활 경험도 풍부했던지라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무리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결혼을 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어른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 무리들 중에 점자 기혼자들이 늘어갔고. 그중에서도 B는 유독 딩크족으로서 호들갑을 떨어댔었다. (난 출산, 비출산 모두 존중받아야 하고 각자의 사정과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남이 쉽게 재단하거나 재단해서도 안되고.) 우리가 생각하는 B는 응당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좀 과하다 싶게 출산하는 사람들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자주 쏟아냈었다. "애 낳는 건 바보야. 자유 다 잃는 거야. 인생 망하는 거야. 경제적으로 쪼달릴걸? 능력도 없는데 뭔 출산?" 듣기에 많이 거북스러운 발언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돌연 B는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 그때부터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의견은, 이제 반대로 딩크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되었다. "애 없는 삶은 의미가 없어. 여태 내가 누린 기쁨은 기쁨이 아니야. 너네 지금 그 행복 영원할 거 같아? 아닐걸? 애가 남는 거야. 나중에 후회해. 애 없는 가족 정상 아니야." 역시 거북스러웠다.


자신과 같은 입장이 아닌 사람들과는 영원히 대화하거나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B의 모습은. 더 이상 내 롤모델 이었던 B의 모습이 아니었다.



- 지인자랑 중독자 C

아는 지인이 많은 만큼 발도 넓고 성격도 활발했던 C. 그저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건가 싶었는데, 만날 때마다 지인자랑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시간이 길어졌고. 과연 우리의 친목을 위해 만난 건지 C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지인 자랑을 들어주러 만난 건지 헷갈리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내 친구가 ㅇㅇ동에 사는데 거기 아파트값 엄청 오른 거 알지? 그거 ㅇㅇ억이라더라. 대박이지?

내가 아는 언니 있잖아. 그 언니 시댁에서 이번에 집 사줘서 그 언니 집이 몇 채인 줄 알아?

유명한 맛집 추천해 줄까? 직업이 의사인 사람이 추천해 준 거야. 그래서 정확해. 의사거든.

내 친구의 친구가 있는데. 걔네 집이 엄청 부자거든. 걔가 이번에 미국 부자랑 결혼한다?

우리 앞집 사람이 저기 대학 유명한 교수고 그 와이프는 약사래.


밑도 끝도 맥락도 없는 끝없는 지인자랑. 그 자랑들은 지인의 경제력, 직업과 같은 것에 대부분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몇 다리 건너서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자랑과 칭송을 듣기엔.. 내 시간과 인내심이 너무 아까웠다. 도대체 왜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자꾸만 다른 쪽으로 대화 주제를 틀어봐도 불시에 튀어나오는 그 지인자랑에.. 나는 점차 C와의 대화를 피하게 되었다.




친해진 이유만큼이나 멀어지는 이유도 참 가지가지인 관계들.

안타깝게도 저는 그들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멀어지지 마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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