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돌봄

by 서나림

나는 깔끔한 편이다. 그리고 부지런하고 건강을 챙기는 편이다.

이건 스스로 나를 돌보며 생활하는 성인으로써 내 자부심이고 힘들어도 되도록이면 지키려고 하는 (내가 생각하는) 멀쩡한 삶의 최소한의 기준과도 같은 것이다.


배달 음식을 잘 시켜 먹지 않으며, 오랜 사무직으로 무너져가는 몸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한다. 집은 늘 깔끔하게 청소하고 물건들은 정돈되어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즐거워하고 기꺼워한다.


그럼에도 솔직히 가끔은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이 최소한의 기준들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겠지만) 도시 직장인의 삶은 참 바쁘고 고되다. 왕복 최소 2시간이 걸리는 출퇴근길, 야근, 피로와 스트레스, 예측할 수 없는 온갖 변수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잔인한 시곗바늘이 나를 비웃으며 찔러댄다. "오늘 하루가 2시간 남았습니다. 1시간 남았습니다." 라며.


아 청소해야 하는데

배달 음식 말고 건강한 집밥 해 먹고 싶은데

빨래도 해야 하고

분리수거도..

근데 책도 읽고 싶고

이번 주 운동도 아직 부족한 것 같고

이 상황에 좋아하는 예능 한두 시간 보는 건 또 사치인가..?


특히 회사, 사회생활, 인간관계들로 힘든 일이 있거나 피곤할 때면 집에 들어서자마자 무기력감이 나를 덮쳐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내 생활을 돌보기는커녕 몸에 안 좋은 배달음식들로 겨우 연명하고 드러누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 청소도 하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그러면 차라리 편하고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점점 더 밀린 집안일들을 하기 싫어졌고 손하나 까딱하기 싫은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비싼 아파트는 아닐지라도)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하루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최고급은 아닐지언정) 좋은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해 먹고 지속가능한 체력을 위해 꼬박꼬박 운동을 하고 남는 시간엔 (너무 사랑하는 시간인) 독서하고, 글 쓰고, 생각하는 삶이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다 보면 원하는 삶을 살 에너지가 남아있질 않네..?

이게 맞아? 가끔씩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의 직장인이란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마르지 않는 잔고가 있지 않은 한 나는 또 나가서 일을 해야 하고,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소중한 만큼 퇴근 후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움직여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피하지 말고 나만의 루틴과 방식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아침에 20분, 최소 10분이라도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에 청소기 돌려놓기. 회사 점심시간에 짬 내서 책 읽기. 운동과 글쓰기는 격일로 나눠서 하기. 1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외식하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도 스스로 눈감아주기. 주말 중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off 데이 만들기.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해나감에 있어서 절대 스트레스받지 않기!


사실 아직까지도 이 루틴들은 미완성형이고 계속 수정을 거듭해나가고 있다.


아마 이런 나를 보며 너무 어렵고 피곤하게 사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보다 더 바쁘고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유난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나는 나 자신을 돌보고 생활을 가꾸는 것이 결국엔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과 애정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수고로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퇴근 후 정돈된 집의 안락감, 나를 위해 정성스레 차린 건강한 음식이 주는 만족감, 읽는 이가 없더라도 꾸준히 쓰고 고쳐가는 나의 글들. 예측할 수 없이 닥쳐오는 세상살이의 어려움들을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내려면 매일매일 쌓아오는 나의 생활이 주는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오늘 하루 조금 안 풀리면 어때? 누가 나한테 상처 주면 뭐 어때? 포근하고 안락한 내 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잊어버려야지. 운동하고 땀 흘리며 때로는 일기를 쓰며 실수는 고치고 상처는 극복해야지. 이런 작은 요소들이 모여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올 때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회사생활에 치이지 않고 마음껏 읽고 쓸 수 있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 (설령 오지 않더라도) 이런 꿈을 꾸며 혼자 해나가는 노력들은 무엇이 되어도 되고 있다. 내 속에서. 조금씩 작지만 분명하게.


내 방법이 아마 모두에게 답이 되거나 정확한 방향이 되진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도 방식도 속도도 다 다르니까. 그래도 나는 주변에서 무언가 안 풀리거나 힘들거나 괴로운 일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단 권유해 본다. 오늘 집에 가서 청소부터 해봐! 운동을 시작하거나, 너 자신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해 봐. 너 자신의 생활을 아름답게 건강하게 만들어봐. 작은 것부터.



내 생활의 구석구석을 돌보고 가꾸는 일.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힘들고 지쳐서 무너지려고 할 때, 내 안에서 나를 다독여주고 일으켜주는 무언가가. 반드시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나를 그리고 내 생활을 조금씩 가꾸고 있다.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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