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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Jun 17. 2021

"우리 집의 실질적인 수입원은 나 아니야?"

100% 창작이면 좋겠습니다만

“우리 집의 실질적인 수입원은 지 아니냐고 하잖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 앞에 있는 인간 목을 조르고 싶었어. 아, 생각하니까 또 손이 떨려.”


지희가 몇 주 전 있었던 남편과의 싸움에 대해 울분을 토하며 말했을 때, 연정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 말이 뭐가 잘못된 거지. 혼전임신으로 결혼한 지희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첫 아이를 가진 뒤부터 이른바 전업맘이 되었다. 연정은 자신이 미혼이라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나,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실질적인 수입원이라. 생계의 주체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한 것이 아닌가. 지희는 결혼 이후 지금까지 경제적 소득이 0원이었다. 


몇 년 뒤, 결혼을 하고 몇 가지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바람에 직장을 떠나 프리랜서가 된 연정은 그날의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스스로의 아둔함과 매정함에 치를 떨었다. 특별할 것 없는 날이었다. 연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너 가지 반찬과 국을 끓여 남편과 함께 저녁을 들었다. 대수롭지 않은 대화 끝에 노후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때, 남편이 물었다. 


“넌 나 없으면 뭐 먹고 살래?” 


연정은 웃으며 어물어물 넘어갔지만 그 한 문장은 그녀의 폐부를 깊이 파고들어 떠나질 않았다. 


연정은 까맣게 잊고 있던 지희의 말을 떠올렸다. 실질적인 수입원. 그 말은 곧, 현물화된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들이 해온 모든 일들을 무위로 돌리는 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집안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유지하고, 퇴근 후 돌아온 사람에게 영양과 정성까지 담긴 음식을 내밀고, 혹시나 벌어질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서로를 돌볼 준비가 되어 있고 실제로 그리 해온 사람의 노동력을 한 순간에 0으로 만드는 것.  


이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누가 더 남는 장사였는지 따져 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할 수도 없는 계산이지만 혹시 남편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워졌다. 연정은 다정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자신이 가진 작은 복이라고 여겨왔고 늘 백년해로를 꿈꿔왔지만 이 모든 것이 허상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고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계속해 자문하고 답은 내지 못하는 도돌이표를 그리는 동안, 남편은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태평했다. 연정은 직접 물어보고 따져볼까도 생각했지만 어떤 대답을 들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지 않았다. 진심이 아닌 그저 농담이었다는 말, 혹은 무엇이 잘못되었느냐는 반문. 어느 것도 이 상황을 종식시킬 수 없었다. 


연정은 그제서야 수년 전 지희와의 대화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났다. 남편을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한 지희는 때마침 걸려온 그의 전화를 다정하게 받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소고기 두부전골! 퇴근하자마자 뛰어 와야 돼!"


금방까지 전의를 불태우다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지희를 보며 연정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곧 전화를 끊은 지희가 몇 초쯤 눈이 멍해지는 것을 보았고, 연정은 저런 것이 결혼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은 백 퍼센트 다를 것이라 확신시켜주는 남자를 만나고서야 결혼을 하게 됐다. 딱히 가진 재산도, 명예도 없어도, 자신은 괜찮은 삶이라 자부해왔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연정은 스스로의 노동력과 생산성에 대해 자문하다가 서둘러 시장으로 향했다. 제철 맞은 채소들을 때맞춰 요리하는 것은 그녀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달큰한 맛이 한껏 배어들었을 봄철 쪽파를 집어 들다가도 문득 멈칫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나는 이걸 왜 하는 거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타인의 경제적 소득에 바치는 대가인가. 등가교환인가. 이것은 양쪽의 이득인가, 누군가의 손해인가. 연정은 몇 백 원을 아끼기 위해 시내버스를 보내버리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다가도 문득 멈칫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늘 이런 생각에 골몰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정은 대체로 행복했다. 만사태평하고 낙천적인 남편이 좋았다. 그러니 그녀도 잊으려 했다. 대부분은 성공했다. 그러나 즐겁게 웃다가도, 남편의 어깨에 기대 편안하게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 그 틈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기억을 어쩌지는 못했다. 연정은 수입을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그녀 몫으로 굳어져 버린 집안일까지 더해져 피곤함만 쌓였다. 일을 줄인다고 편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그녀가 왜 그리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아등바등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성격이려니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을 했다. 연정은 아들이기를, 아들이기를 바랐다. 연정의 엄마가 바라 마지않았던 것처럼. 딱히 능력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남자면 만사 해결될 것이었다. 그녀 역시 이것이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스스로를 멸시하면서도 아들을 바랐지만, 딸을 낳았다. 


연정은 산후우울증을 앓았고 이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손목이 아팠지만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안았다. 모든 일이 버거웠다. 주위에는 슈퍼우먼들이 많았다. 돈을 벌고 살림을 하고 육아까지 하는 완벽한 그녀들. 연정은 관절 건강을 해치며 더 노력했지만 모든 것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스스로를 더 몰아세웠고 피곤함이 쌓였다. 몸이 힘에 부치면 마냥 온화할 수 없어 표정이 굳어갔다. 


어느 날, 남편이 세 살 난 딸을 씻겨주며 농담하는 것을 들었다.


“엄마가 자꾸 왜 화를 내실까. 외할머니한테 가서 엄마 반품해달라고 하자!”


부녀는 깔깔대며 웃었지만 연정은 웃을 수 없었다. 남편은 아이를 씻기자마자 리모컨을 붙들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욕실 정리는 물론, 널브러진 집안 정리도 그녀 몫으로 남았다. 연정은 딸의 옷을 거칠게 입혔다. 어린 딸은 왜 엄마가 아빠처럼 다정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은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도울뿐, 모든 가사노동의 주체는 연정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자타공인 가정적이란 소리를 듣는 것에 분개했다. 가정적이지 않으면 뭐가 될 것인가. 연정의 짜증은 늘어갔다. 그녀는 속을 다스리다가 주체하지 못해 짜증을 부리고 나면, 때 이른 갱년기를 핑계 삼았다. 


"미안해. 이런 게 갱년기인가 봐. 자꾸 마음이… 그러네."


연정의 엄마도 그토록 붙잡고 늘어지던 갱년기. 아빠는 별 문제 없이 넘기던, 대대로 세상 여자들을 유난히도 힘들게 한다던, 그 갱년기가 찾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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