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다혜 지음, '아무튼, 스릴러'
어떤 오독은 즐겁다. 때로 그것은 책을 사랑하는 자의 은밀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가령, 금융경제에 대해 말하는 책을 보며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사무친다거나, 농밀하다 못해 끈적거리는 사랑 이야기를 보고는 그날 저녁 메뉴를 떠올린다거나.
규칙 없이 혼자 하는 활동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반전과 평화를 부르짖는 책을 보고는, '그래, 전쟁만이 해답이야'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더없이 슬프고 복장 터지는 일이겠지만, 그런 일이 아니고서야. 그러니까,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보고는 내 사랑을 새삼 깨달아도, 작가님께 민폐는 아니기를.
<아무튼, 스릴러>는 스릴러광인 저자가 스릴러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는 책이다. 이 장르를 명료하게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창작물이 그렇듯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감춰진 것, 세상을 움직이는 욕망, 혐오, 가장된 교양, 편견을 탐구하고 드러내 보여"(p13)준다고 정의하고 있다.
"스릴러는 풍토병과 닮았다. 그곳의 사회문화적 풍토가 특정 방식의 사건을 만들고 사건 보도를 만들고 반응을 만든다. 그리고 그런 알 만한 사건을 연상시키는 많은 소설이 태어난다. (중략) 스릴러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한 사회의 고민이 보이기도 하고 무의식이 보이기도 한다."(p31)
내가 이 책을 펼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 역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부터 추악한 것까지 인간사에 넘치는 호기심을 갖고 있는데, 왜 나는 스릴러를 즐기지 못하는가. 그게 궁금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책이라면 환영하고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소설을 택할 내가 왜 스릴러에는 유독 경계심을 보이느냔 말이다.
짐작하는 부분은 있다. 태생적으로 범죄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스릴러는 사건이 해결되는 쾌감을 누리기에 앞서 (대개) 피를 보는 불편함을 먼저 느껴야 했다. 그 지점이 지나고 나면 사건이 해결되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불편함을 참아가며 읽기엔 세상에 읽을 책은 많고도 많았다. 그 이유가 다일까.
"(중략) 범죄물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의 심리란 대체로 안전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 내가 읽는 것이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없다면 읽기 어렵다."(p31-32)
이 지점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아니었을까. 저자가 말하듯 "범죄물은 낙원에서 읽어야 제맛"(p111)일 테다. 현실에 넘쳐나는 흉흉한 일에 겁을 집어먹고 밤길을 쉬이 나서지 못하는 나로서는 가상의 범죄까지 탐닉할 여유가 없었던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미 불안정한 곳이었다.
아직 좋아한다고 할 순 없지만, 요즘의 나는 스릴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 책을 골라든 것 역시 전에 없던 관심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안중에도 없던 스릴러에 손을 뻗치게 된 것은 나의 동반자를 만나고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고 있음과 때를 같이 한다는 깨달음이 몰려왔다. 생뚱맞기 그지없지만, 그렇다. 나는 우리만의 소박한 낙원에 입장했다. 이전의 나보다 더 안정적인 마음 상태로, 그렇게 나는 스릴러를 쿡 찔러보기 시작한 것이다.
스릴러를 말하는 책을 보고 사랑을 깨닫기도 하는 것, 이게 나의 독서다. 그러나 저자의 메시지 또한 놓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쉬이 놓칠 수 없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는 저자의 말이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구경꾼'으로서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심리가 여기 없는가 묻게 된다. 범죄물의 팬은 범죄를 소비하는가, 범죄의 해결을 소비하는가? 일상 미스터리 같은, 잔인함과 거리를 둔 듯 보이는 서브장르에서조차 '못된' 심리를 전시하는 일을 종종 본다."(p31-32)
스릴러 애호가를 자처하는 저자가 그것을 즐기는 심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그것을 향유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시작일 뿐.
무엇보다 저자는 '픽션'과 '픽션 같은'은 완전히 다른 말임을 강조한다. 현실과 픽션이 구분이 가지 않을 때 이것을 즐겁게 소비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범죄물이 오직 여성 피해자를 노리고, 얼마나 더 잔인하고 악랄할 수 있는지에 집착하고, 그래서 현실에서도 밤길을 혼자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여겨진다면, 이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향유하는 것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물을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의 정체가 궁금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가 이루어지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천재적인 두뇌플레이를 보고 싶어서, 그 안에서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서사 안에서 안전한 쾌락을 느끼고 싶어서. 하지만 '내가 파는 장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p116)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현실이 어떻든 창작물을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으나, 현실을 픽션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픽션을 픽션으로 즐기려면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p138)고.
스릴러를 즐길 마음이 되었다고 속없이 좋아할 뻔한 이 독자, 정신이 번쩍 든다. 나의 소박한 낙원도 이 세상의 논리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은 안전한가. 다 큰 성인이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여럿이 같이 화장실에 다녀야 하는 이 현실 말이다. 태평하게 범죄물을 탐닉할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 범죄물이 뭘 말하는지, 현실과 픽션은 어떻게 같고 다른지, 두 눈을 부릅뜨고 주시할 일이다.
이다혜 작가의 글을 읽고 팬이 되지 않기란 힘들 것 같다. 유려한 글은, 아무리 짧은 분량이라지만 따로 꼭지를 나누지 않아도 될 만큼 매끄럽게 흘러간다. 그러나 이왕 나눠진 목차가 있으니, 몇몇 소제목만 꼽아보자면 이렇다. '나를 파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 '베이비, 세 권만 참고 읽어봐', '그때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
목차만 보고도 마음이 동하는 분이 있다면 당장에 펼쳐볼 것을 권한다. 어린이용 셜록 홈즈를 시작으로 범죄물의 세계에 진입했고, 애거사 크리스티를 접하며 "어른의 세계"(p22)로, 그 후 시드니 셀던, 마이클 크라이튼, 존 그리샴 등을 통해 "진짜 어른의 소설"(p22)로 들어서 이 분야의 광이 됐다는 저자다. 스릴러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가 떠날 틈이 없다.
순식간에 읽고 나니 끝이 아니다. 그녀가 소개한 수십 권의 책들을 읽을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이 여름, 스릴러와 함께 조금은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듯한 기대가 된다. 물론, 그녀가 전한 메시지는 잊지 않겠다.
"나는 여전히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사실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파는' 장르의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 쾌락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스릴러가 현실의 피난처로 근사하게 기능해온 시간에 빚진 만큼, 현실이 스릴러 뒤로 숨지 않게 하리라."(p138)
<오마이뉴스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