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양경수 그림 에세이 '잡다한 컷'
마음에 쏙 드는 식당을 찾았다. 두부, 콩탕, 콩국수 등 평소 워낙 좋아하는 콩 요리 전문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빙해주시는 분의 친절함에 완전 반해 버렸다.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는지 자세히 알려 주시고, 매일 아침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드는 음식이라는 말씀엔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나는 당연히 사장님이신 줄 알았다.
다닐 일이 없는 길목이긴 하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이렇게 좋은 식당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이상해서, 혹시 새로 생긴 식당인가 여쭤 보았다. 어르신께서 예의 그 자부심을 보이시며 하시는 말씀.
"이 자리에서만 17년째 영업 중이에요. 그리고 나는 여기서 꼭 15년째 근무 중!"
이 식당에 더욱, 홀딱 반해 버렸다.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터라니!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것이 맛에 대한 자부심이든, 영업 방식에 대한 자부심이든 마찬가지다. 직원에 대한 처우 역시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면, 너무 섣부른 것일까. 부디 내 섣부른 짐작이 틀리지 않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모두가 행복한 일터, 꿈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럼 무엇이 우리의 일터를 지옥으로 만드는지, 요목조목 따져봐야 할 터.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진지함은 필요하지만, 때로는 유머 가득한 접근 역시 우리의 답답한 숨통을 트여줄 것이다.
독특한 그림과 속 시원한 문장들로 인기를 끌었던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을 쓴 양경수 작가의 신작 <잡JOB 다多 한 컷>은 그런 면에서 들여다볼만 한 책이다.
전작이 직장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였다면, 이 책은 다양한 직업군의 애환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반 회사원부터 시작해서 택배 기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소방관, 은행원, 승무원, 미용사의 직업을 그들의 입장에서 들여다본다. 결국 오늘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다르지만 같은, 같지만 다른 우리네 인생 얘기.
JOB多하지만 잡다하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p5)
그가 들여다본 각 직업군의 애환을 잠시 살펴보면 이렇다.
택배 기사의 70~80퍼센트는 대형 택배 회사 소속이 아닌 지입 택배 기사, 즉 자영업자라고 한다.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4대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고, 차량관리비, 유류비, 통신비 등 모든 것을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업무 자체도 체력 소모가 큰데, 오전 상하차 작업에 대해서는 별도 비용이 잡히지 않는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사회복지사는 직업이 아닌 자원봉사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들의 전문성이 '봉사'라는 이름으로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공짜 노동은 없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사에게는 유독 '좋은 일 하면서 돈을 따지냐'는 등 직업으로서의 기본 권리마저 훼손시키는 오해와 편견들이 존재한다. 그런 편견들로 사회복지사들은 '헌신', '희생'을 강요받으며 속앓이를 한다." (p71)
환자들을 돌보느라 제 몸 돌볼 틈이 없는 직업, 간호사가 있다. 책에 의하면, 1년 차 간호사의 퇴직률이 무려 34퍼센트, 이 직종을 떠난 간호사가 10만여 명에 달한다고 하니, 노동의 현실이 어떨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생사를 다투는 현장에서 일하는 소방관. 화마와 맞서 싸우고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데, 소방관 1인당 정신건강예산이 연간 7천원이라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심지어 실질적 근무시간을 계산해보면 주당 84시간이라고 하니, "불길에 뛰어들기 전부터 이미 극한직업"(p166)이라는 저자의 말이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소방관이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존재라면, 우리 또한 마찬가지로 연대 의식을 갖고 소방관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p150)
오후 네 시면 영업이 끝나지만, 오히려 그때부터 진짜 일과가 시작되는 직업이 은행원이다. 돈을 다루는 직업이니만큼 조심성이 요구되기도 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데서 오는 고충, 실적에 따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데, 유독 사람들의 좋지 않은 편견에 둘러싸여 있다고 한다.
"가끔 은행원들의 고충을 다른 기사를 볼 때, "배가 불렀네", "그것보다 못한 사람 많으니 참고 일해라"라는 댓글을 많이 본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고용주인데 왜 우리는 다른 노동자를 향해서 서로 손가락질 하는 걸까?" (p202)
하늘에서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 승무원이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까운 편견을 감내해야 하고, 시시때때로 살인적 스케줄에까지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승무원들이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면, 과연 이렇게 외모에 대한 평가나 요구를 심하게 할 수 있을까?" (p235)
서비스직이자 아티스트인 직업, 미용사다. 그러나 직업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은 더욱 향상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직업인에 대한 편견은 이들이 미용사가 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수고, 열정을 깎아 내린다.
삽화와 함께 봐야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책이다.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진중하다. 덕분에 우리 곁의 친숙한 직업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 열악한 직업 환경은 더 높이, 더 크게 소리 내어 떠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이 모든 업무 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의 질 향상과도 직결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업 환경의 개선과 함께 우리의 편견과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는 충만한 연대 의식을 담아, 조금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응원을 보내면 어떨까. 응원이 간지럽다면, 인사도 충분할 것이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하고.
(오마이뉴스 기고글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