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업은 늘 위태로웠다. 어린 시절 나는 '부도'가 뭔지 몰랐지만 그 말에 공포를 느꼈고 나중엔 너무 많이 들어 오히려 무감각해졌다. 엄마는 가계수표의 부도를 막기 위해 일주일이 멀다 하고 돈을 구하러 뛰어다녔다. 아빠는 본인이 이 집안의 유일한 생계 부양자라고 으스댔지만 어림없는 말씀. 그는 엄마 없이는 사업을 하루도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은 엄마는 너는 꼭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것을 하고 있지만 본인의 능력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머리가 굵어진 뒤에야 내가 능력을 키우면 되지 않냐고 되물었고 엄마 역시 너무도 쉽게 수긍해 날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것이 그녀의 한계였을 것이다. 나는 돌림노래와도 같았던 그 주문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을까? 어떤 대답도 진실되지 못한 느낌이다. 한순간도 그것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 해도.
위태롭던 아빠의 사업은 IMF와 함께 기어코 무너졌다.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그 집의 반토막도 안 되는 집의 월세로 들어갔다. 다섯 식구만으로도 비좁은 집이었지만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빚쟁이까지 맞이해야 했다. 그즈음 아빠는 뇌졸중을 앓아 모든 의지를 잃어버렸고 결국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없었다.
엄마는 호프집에서 낮부터 새벽까지 일하며 점차 피로에 찌들어갔다. 미소는 사라졌고 화난 얼굴이 기본값이 되었다. 나는 대학에만 가면, 아니 수능만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그리했다. 장학금을 받거나 탄탄한 스펙을 쌓아 좋은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푼돈이라도 지금 당장 손에 쥐길 바랐다. 가난은 꿈꾸는 법을 잊게 만들었다.
스무 살의 어느 날, 이미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지만 습관처럼 구인 공고를 샅샅이 훑었다. 당시 패스트푸드점의 시급은 삼천 원대였는데 (그 이하면 이하였지 이상은 아니었다) 나는 그보다 많은 돈을 벌기를 원했다. 몸은 고되더라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어느 한정식집이었다. 시급은 무려 십만 원.
내가 세상 풍파에 닳고 닳은 것일까, 당연한 사고일까. 지금의 나는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일에 과도하게 많은 시급을 준다면 꺼림칙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한정식집이니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차리거나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설거지가 쌓일 것이라 예상했다.
전화로 면접 날짜를 잡고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간판은 없었다. 한문으로 된 작은 문패뿐이었는데 알아보지 못해서 바로 앞까지 오고도 한참을 헤맸다. 커다란 대문 안쪽으로는 근사한 정원이 있었다. 작은 연못과 바닥에 총총 박힌 예쁜 돌도 있어서 드라마 속에서나 본 재벌집 같았다. 내 돈 주고는 먹지 못할 비싼 음식을 팔겠구나 생각했다.
당시 나는 내 허리보다 십 인치 이상 큰 힙합 바지와 그에 걸맞은 커다란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사장은 나에게 점퍼를 벗어보라고 했다. 영문을 몰랐지만 어차피 벗을 생각이었기에 순순히 벗었다. 대충 몇 킬로그램쯤 되겠네, 하는 말에 네 라고 답했다. 그의 눈대중이 정확했고 내가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 짐작해 보는 것으로 알았다.
공고와 다르게 시급은 십만 원이 아니었다.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테이블당 돈을 받는 구조였다. 즉, 내가 맡은 테이블이 한 시간 내에 식사를 끝내든, 두세 시간으로 길어지든 십만 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고 경력이 늘어 요령이 생기게 되면 두 테이블에서 동시에 일해 몇 배를 벌 수 있다고 했다.
시급 십만 원이 아닌 것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좋은 소식도 있었다. 저녁 여섯 시 이후에는 기본급이 십오만 원으로 뛴다는 것. 나는 속으로 부지런히 셈을 했다. 테이블당 세 시간이 될지라도 일반적인 시급의 열 배가 넘는 게 아닌가.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드디어 꿀 알바를 찾은 것이었다.
그때가 오전 열 시쯤. 사장은 당장 점심 식사 때부터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예약 손님이 오기까지 시간이 있으니 사장은 내가 신을 스타킹 하나만 사 오라고 했다. 옷은 빌려줄 테니 그것을 입으라는 것이었다. 고급 요릿집답게 유니폼이 있는 줄로 알고 나는 그러마 했다.
스타킹을 사들고 다시 찾아가니 대기실로 안내했다. 그 안에는 수십 명의 곱게 차려입은 이십 대 여성이 있었다. 왜 알바생이 젊은 여자들뿐인지, 왜 일하기에 불편한 옷을 입고 있는지 의아했지만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사장이 건네준 옷은 유니폼이 아니었으나 단정한 블라우스와 치마였기에 군소리 없이 입었다.
일은 정말이지 쉬웠다. 이렇게 돈을 쉽게 벌어도 되나 죄책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모든 식사는 화장실까지 딸린 독립된 방에서 이뤄졌는데 방문 안쪽으로 병풍이 처져 있었다. 덩치 좋은 아저씨들이 병풍 바로 앞까지 음식들을 옮겨 줬고 나는 그것을 겨우 몇 걸음만 종종걸음으로 다니며 방 안의 테이블로 옮기면 되었다.
다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나는 테이블을 떠나지 않고 앉아 있어야 했다. 사장은 다소곳한 자세로 미소를 머금고 앉아 손님들의 요구에 민첩하게 응하라고 했다. 비워진 접시가 있으면 재빨리 채우고 잔이 비면 술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술을 따른다는 것에 묘한 편견이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아주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의 일을 능히 해냈다. 생전 처음 본 신선로를 옮길 줄 몰라 쩔쩔맸을 뿐, 나머지는 어렵지 않았다. 손님들은 하나 같이 점잖고 여유로워 보였다. 한국말인데도 나로서는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했고 중간중간 일본어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함께 방에 들어온 언니를 흘끔거리며 일을 배울 궁리뿐이었다. 결국 배울 것은 별로 없었지만.
일이 끝나고 사장은 아주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딱히 한 것도 없는 데 칭찬까지 받으니 어리둥절했다. 사장은 이게 전부라고, 지금처럼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직원이 방에 혼자 들어가는 일은 없고 손님 수와 똑같이 들어가는 때도 많으니 모르는 게 있으면 언니들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했다.
사람들 참 별나다고 생각했다. 밥 한 끼 먹는데 얼마나 대단한 수발이 필요하다고 손님과 직원이 같은 수로 들어가나. 사장은 내친김에 저녁 때도 일하는 게 어떻겠냐 했지만 그날 저녁엔 과외가 예정되어 있어서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음 날 점심에 또 일하기로 했고 오늘 일한 것까지 포함해 주급을 정산받기로 약속받았다.
이튿날 아침, 모처럼 엄마와 언니와 함께 밥을 먹었다. 각자 사는 게 바빠 이렇게 모일 기회는 드물어서 나는 어제 갔었던 한정식집 이야기를 신나게 했다. 정원이 있는 집, 독립된 방, 높은 시급 등 앞서 언급한 모든 내용을 말했다. 드디어 좋은 알바를 찾은 것 같다고, 일은 쉬운데 돈을 많이 주니 이게 웬 떡이냐고.
언니는 갑자기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너 모르겠어? 그거 이상한 술집 같은 거라고! 요정이라나 뭐 그런 거. 절대 다신 가지 마! 알겠어?"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언니가 옳았다. 거긴 늙은 아저씨들이 젊은 아가씨들을 끼고 밥과 술을 먹고 마시는 곳이었다. 아마도 그날 내가 맡은 테이블은 드물게 가벼운 반주만 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사장은 내가 지레 놀라 도망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 일을 내게 맡겼을 것이고.
언니는 그곳에 다신 가지 않겠다는 내 다짐을 받은 뒤에야 집을 나섰다. 얼른 안 가겠다 답했지만 혼란스러웠다. 너무 많은 돈을 준다는 것은 찜찜했다. 하지만 내 눈으로 크게 잘못된 것을 보진 못했다. 일주일만 설렁설렁 일 같지도 않은 일을 하면 한 달 내내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이걸 하면 안 되는 건가.
그때, 엄마가 다가와 말했다. 내가 한참 동안 보지 못했던 상냥한 미소를 온 얼굴에 띠고서.
"언니가 왜 저런다니. 난 하나도 안 이상해 보이는데. 너 그냥 음식만 날랐다며. 상차림만 한 거잖아. 안 그래? 그리고 어제 일한 것도 받아야지. 다시 안 가면 이미 일한 돈도 못 받잖아. 이따가 가 봐, 알았지?"
나는 이십 년도 지난 그날의 일이 어쩐지 잊히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큰 부부싸움이 벌어질 때면 그녀는 세차게 가슴을 치며 복받쳐 올라오는 설움으로 말하곤 했다. '이렇게 순진하고 착해 빠진 나를' 당신이 망쳤노라고. 곁에서 울고 있다가도 엄마의 그 대사가 나오면 웃음이 비져 나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진지한 와중에 자화자찬을 하는 것이 낯 뜨겁게 느껴졌달까.
그건 엄마의 자기연민이었다. 그리고 어떤 자기연민은 사실에 근거한다. 엄마는 스무 살에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연애할 때부터 다른 여자가 있었지만 엄마는 까맣게 몰랐고 결혼 후에도 아빠의 불륜으로 인해 피폐해져 갔다. 그럼에도 아빠를 믿었고 또 배신당했다. 엄마는 순진했다. 세상 물정도 몰랐다. 엄마가 일하던 호프집마저 아빠의 불륜녀 소유였고 나는 이 모든 것에 지금도 치가 떨린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다. 요즘으로 치자면 시급 삼십여 만원을 주는 한정식집 알바인 셈인데, 과연 그곳이 정상적이라고 볼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보고 겪은 것까지 떠올린다면 퍼즐을 맞추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전부 듣고도 내가 그곳에 가기를 바랐다. 중년은 어디까지 순진할 수 있을까.
엄마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포기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엄마는 지난날의 대부분을 놀라우리만큼 기억하지 못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망각이라는 축복 덕분에 엄마는 낙천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나도 난처한 기억을 엄마에게 상기시키고 싶지 않다. 가난에 지쳐 많은 것을 내려놓은 여인을 기억하는 것은 나로 족하다.
그날,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을까?
나는 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곳에 갔고 보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들을 보았다. 아저씨들의 추태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어린 여성들의 너그러움. 아니, 돈의 힘. 돈으로 타인의 호의를 사는 치들이 한심하다 못해 가엾게 느껴졌는데 한참 뒤에야 알았다. 어떤 이들에겐 그것이 권력을 만끽하는 핵심이라는 것을.
난 그것을 이겨낼 정도로 돈이 궁하진 않았던가, 나를 많이 사랑했던가. 아님 단지 비위가 약했던가. 나는 두 번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고 이틀 치 일한 대가는 깔끔하게 포기해야 했다. 받지 못한 돈은 아쉽지 않았지만 생뚱맞게도 차비와 스타킹 값이 아까웠던 기억이 난다.
둘째 날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언니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느냐고 혼낼 것이 뻔했다.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행여 죄책감을 느낄까 봐 사려 깊은 배려를 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역시 진실이다.
하지만 또 다른 진실도 있다. 그게 뭐 대수라고,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는데 그것도 이겨내지 못하느냐고 할까 봐, 나는 몹시 두려웠다. 내가 전 국민 기본소득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