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의 달, 저는 빙그레*년입니다
헬스를 마치고 샤워를 하다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대화를 들었다. 왜 이렇게 운동을 빨리 마치고 가느냐는 질문에 한 분이 말했다. 오늘 애들이 오는 날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운동까지 대충 할 필요가 있느냐 또 묻자, 그분은 답했다.
"그럼! 가서 뭐라도 해야지. 그래야 돈을 받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곁에 있던 다른 어르신들까지도 다 함께 깔깔대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 그럼! 뭐라도 해야 돈을 받지!
농담과 진담이 섞였을 그 말에 나도 따라 빙긋 웃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심란해졌다. 받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귀엽기도 하고 어딘가 모르게 짠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주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일 테니까. 얼마나 야박하고 정 떨어지는 말인가.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빚진 기분에 지친 나머지.
엄마는 늘 바쁘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여러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바쁜 그녀를 위해 일정을 맞춰야 한다. 이 날도, 저 날도 안 될 때가 많다. 온 가족이 모이는 날에는 솔직히 엄마만 빠졌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그녀가 모두의 일정을 복잡하게 만드니까. 그녀가 주인공인 날에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그냥 우리끼리 만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일정을 조율해 가며 모두의 만남을 성사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바쁜 와중에 이 일정을 강행하게 되었는지 강조한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정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날에는 엄마는 아무도 묻지 않은 이유를 밝혀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그날은 의사 선생님이 오신다고 했거든."
그 의사, 나는 모른다. 엄마에게 자식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엄마가 합세한 날에는 식당을 잡아야 한다. 집에서 먹게 되면 엄마가 고생을 하게 되고 그건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특히 엄마가 그렇다. 밖에서 먹으면 편할 것을 왜 집에서 모이냐고 퉁박을 준다. 물론 계산은 자녀들의 몫이고 엄마는 잘 먹었다는 말에 인색하다. 불평불만은 흔해서 나는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그녀는 모처럼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친구들의 자식과 사위 자랑을 전하며 한숨을 폭폭 내쉰다. 샘이 많은 엄마는 본인이 가진 것으론 만족할 수 없다. 이 대화는 로스-로스 게임이다. 누구도 승자가 없다. 자칫 잘못하면 그 대화에 말려들어가기 쉽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흐름은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그들의 흉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을 깎아내리며 그거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엄마를 위로한답시고. 나는 그러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 결국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대화가 이어진다.
엄마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가족이잖아. 가족끼리 도와야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온몸에 기운이 쪽 빠지곤 했다. 그건 돕는 사람에게 허락된 말 아닌가. 엄마가 그 말을 할 때는 늘 그 반대 상황이었다. 엄마는 도움을 청하며 굳이 그 말을 덧붙였다. 이깟 도움은 도움도 아니라는 듯이. 도와달라는 것까진 괜찮아도 뒤에 붙는 그 말이 싫었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엄마는 마냥 서러워할 것이 분명하다.
다행일까. 아빠를 만날 때는 일정을 조율할 일이 없다. 그는 언제든 우리를 환영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빠는 우리가 가도 본인의 일정을 다 소화한다. 네 시간을 운전해 도착했거늘 아빠는 건강 검진으로 병원에 가서 온종일 얼굴을 보지 못한 적도 있다. 뿐인가. 자식들이 와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제 웃음도 안 나온다.
여럿이 모이게 되면 누군가는 식사 메뉴를 짜내느라 골머리를 앓게 되는데, 아빠는 아니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다. 밖에서 먹든, 집에서 먹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신없이 장을 봐오고 요리를 하느라 손발이 모자라도 그의 눈엔 보이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 와중에도 이거 내와라, 저거 내와라 잔소리를 하는 것일 테다.
뿐인가. 뜬금없이 손님을 모시고 와 다과를 내오라고 명하기도 한다. 여자는 다 우렁각시의 신묘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이도 저도 지쳐 외식을 선택하면 계산대는 쳐다보지도 않고 스쳐 지나간다. 그런 건 자식들의 일이니까. 그러니 우리가 찾아가든 말든 그는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다. 나는 언제나 환영받는다. 떨떠름하게.
허니패밀리의 '남자이야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의 부모님 주는 사랑만을 고집하셨지."
어디 그 노래뿐이겠는가.
나는 일년 365일 끝나지 않는 엄마의 노동을 받아먹으며 자랐음을 순순히 인정한다. 정말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직 사랑과 희생이기만 했을까. 과연 엄마가 부정한 남편과 이십여 년을 함께 살아온 것이 오직 자녀들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연인이 생기자 우리를 떠났다. 말 한 마디 없이.
아빠는 희생 자체를 한 적이 없다. 당신의 일을 한 것이 희생은 아니다. 내가 밥을 차리면 그는 다른 식구들이 다 앉기도 전에 냉큼 앉아 먼저 식사를 시작한다. 백숙을 먹게 되면 닭다리를, 냉면을 먹으면 계란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데, 그건 본인이 누린내라면 질색을 하기 때문이다. 맛있고 몸에 좋은 것은 본인 몫이다.
대체 주는 사랑만을 고집하신 그 부모님들은 어디 있는 걸까. 내겐 해태나 봉황처럼 여겨질 뿐이다. 그래서 참 고맙다. 내가 부채의식에 허덕이지 않게 해 줘서. 미안하다가도 분개할 수 있게 해 줘서. 마냥 희생하지 않아 줘서, 마냥 고고하지 않아 줘서, 마냥 존경스럽지만은 않아 줘서 감사하다.
어제는 어버이날. 나는 명실상부한 빙그레*년이 되기 위해 엄마에게 소정의 금액과 함께 감사 인사를 적어 카톡으로 보냈다. 평소 답이 늦는 엄마이지만 이런 때만큼은 냉큼 확인한다. 아빠는 지난주에 미리 찾아뵙고 봉투를 건네드렸고 그는 내 눈앞에서 돈을 하나하나 세었다.
훈훈함으로 벅차 오르는 가정의 달이다. 자식, 낳을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