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돈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by 구황작물

명실상부한 자본주의 시대다. 사랑도, 축하도, 감사도 돈으로 표현한다. 때로는 돈 봉투를, 때로는 돈으로 바꿔 온 선물을 주고받는다.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고 난 뒤에는 재빨리 머리를 굴린다. 이건 누가 사야 하지? 호구는 싫고, 염치없는 인간이고 싶지도 않다. 더치페이가 익숙한 관계라면 차라리 편하다.


가족이라면 예외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옛말 가끔 틀리지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는 말은 옳았다. 적어도 고맙다는 말, 잘 먹었다는 인사 정도는 돌려줘야 한다. 이 사실을 영 모르는 사람이 있으니, 내 아버지다.


장성한 자식이 부모와 함께 외식을 하면 누가 계산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누구여도 상관없지만 덕분에 지갑을 열지 않은 사람은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나는 기꺼이 값을 치르지만 잘 먹었다는 인사를 꼭 듣고 싶다. 하지만 이제 상상으로도 좀처럼 그려지지 않아 약이 오른다.


노인이 된 아버지에게 그깟 밥 좀 사는 것이 억울하냐고, 그가 밥을 사야 직성이 풀리겠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련다. 이런 상황이 된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었다는 것을. 그는 내가 취직을 한 이후부터 모든 계산에서 스스로를 열외 시켰다. 밥값뿐만이 아니다. 친지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도 그는 빈손으로 왔고 내게 돈을 찾아오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취직을 했다 해도 대단한 회사도, 알아주는 전문직도 아니었으며 하루하루가 빠듯하고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그에게 자식은 든든한 연금까지는 못 되더라도, 여차하면 빼먹을 수 있는 저금통인 것이 분명하다. 어쩌다 내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어도 그는 일말의 머뭇거림조차 없이 계산대를 '노 룩 패스'했고 예비 사위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움은 오직 내 몫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사업체와 직원들이 있고 본인 소유의 집과 차가 있던 사람이 쫄딱 망해 가난에 내몰리게 되었으니 염치 따위 지킬 수 없었다고 이해해야 할까. 그렇다고 하기에 그는 예나 지금이나 주변 사람들을 너무도 잘 챙긴다. 멀고 먼 친척과 지인들의 경조사를 챙기느라 돈이 우르르 빠져나간다며 자신의 사람됨을 강조한다. 챙겨야 하는 이들 중에 가족이 속하지 않을 뿐이다.


뿐인가. 나는 빵 하나를 살 때도 고민하며 기회비용을 고려하지만 그에겐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을 사고 기어코 버리면서도 양심의 가책 따위 없다. 매일매일이 '플렉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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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골에 내려갔다가 함께 장을 보았다. 동네 마트에서 아버지가 먹고 쓸 잡곡과 각종 채소, 건전지 등을 샀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는 계산대를 쳐다보지도 않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퍽 익숙해 이제 이질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다. 나는 계산을 마치고 영수증을 확인하다가 포인트가 만원이 넘게 쌓인 것을 보았다.


나는 말했다. 포인트도 다 기한이 있는데 굳이 모아둘 필요 없다고. 오천 원 이상이면 쓸 수 있으니까 다음에 꼭 쓰시라고. 아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깟 만원 따위."


기어코 분통이 터졌다. 나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던 아버지 때문에 곤궁함을 증명해 학비를 면제받아야 했고,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성희롱을 당해도 이 악물고 출근하며 돈이 무섭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왜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 나는 또 언성을 높였다.


"그깟 만원? 그렇게 돈이 많으면 나 좀 주지 그랬어? 나는 만원이 아니라 천원도 무서워! 백원도 아끼며 산다고. 근데 그깟 만원? 그렇게 돈이 우습고 만만하면 아빠가 계산하지 그랬어? 왜 계산대는 처다 보지도 않고 지나가는데? 어?"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다짐한다. 이번만큼은 얼굴 붉히지 않고 그와 정다운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고. 하지만 여지없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화내고 자괴감에 휩싸이는 것도 지치는 일이고 이 패턴이 내 몸에 배어버릴까 봐 두렵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어쩌면 아빠는 나름의 방식으로 가난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농사로 돈을 벌고 있긴 하나 고정적인 수입이 아니니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울 테다. 어차피 언젠가 빠져나갈 테니 있을 때 쓰고 없으면 그만이라며 돈을 홀대하게 된 것은 아닐까. 삼만 원어치씩 로또를 사는 것을 보면 돈을 간절히 원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 삼만 원이 귀하다고 여기지는 못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이번 달부터는 삼남매끼리 조금씩 모아 매달 얼마간의 돈을 보내기로 했다. 지금까지 각자 나름대로 자식 된 도리를 해왔지만 정기적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이것으로 아버지가 돈을 조금이라도 배우게 되길 바란다. 생각 같아서는 용돈기입장을 쥐어주며 경제관념을 가르치고 싶지만 그것까지는 무리일 테고.


얼마 되지 않는 이 알량한 돈을 보내며 나는 더욱더 치사해질 것이다. 아빠가 버리는 그 빵이, 반찬이 귀한 줄을 알라고 더 큰 소리로 떠들 것이다. 당신의 자녀들이 얼굴에 쥐가 나도록 억지웃음을 짓고, 잠자리에서 일 생각을 하고, 피곤한데 눈을 비벼가며 일해서 번 돈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니 제발 돈 무서운 줄 아시라고.


언젠가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후회하게 될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착한 딸이 될 생각도 없고 그럴 그릇도 못 되는 나로서는 내 방식대로 그를 향한 복잡한 사랑을 표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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