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소개로 Y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서로 대강의 인사를 나누다가 사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피차 서울에 사는 것은 알고 있던 터라 나는 간단히 'OO동'이라고 말했는데 곧이어 그녀는 약간 놀라운 대답을 했다. 'OO동 XXX'라며 아파트 이름을 댄 것이다.
순간 멈칫했다. 'XXX가 뭐지?' 부동산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영 생소한 명칭이었다. 서울에 있는 그 어떤 아파트도 살 돈이 없는 나로서는 그 집을 폄하할 생각이 없다. 다만 아파트 브랜드라고 해봐야 누구나 다 아는 두세 개뿐 그 밖의 것은 알지 못하는 터라 찰나였지만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에 살았던 터라 새롭게 친구를 사귀면 서로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몇 단지에 사는지 인사말처럼 주고받은 적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근 지역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니었던가.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날, 그녀는 가족 중에 교수와 변호사, 약사가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어떤 정보는 꽤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도 연관성을 찾을 수 없을 때면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만남이 지속되었고 그녀는 한 번도 빠짐없이 가족들의 직업을 거론했다.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다들 근사하네요!', '참 좋은 집안이네요.' 등을 고민하다가 어떤 것도 천연덕스럽게 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언젠가 그녀는 오랜만에 운전을 했더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고 했다.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어쩐 일로 운전을 했느냐 물었더니, 그녀는 말했다. 'OOO 서비스 센터'에 가느라 해야 했다고. 그렇다. 이번에도 그녀는 수입차 브랜드를 언급했다. 굳이 붙일 필요 없는, 내겐 생소한 그 이름을.
나는 그녀의 예의 바른 태도와 우아한 몸가짐, 다정한 목소리를 좋아했고 배우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장점이 퍽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한 그녀가 각종 브랜드와 뜬금없는 가족들의 직업을 언급할 때마다 그 모든 장점들이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때때로,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내가 미취학 아동이던 1986년, 우리 집은 30평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당시 낙후된 건물이 즐비하던 동네에서 그 집은 군계일학이었고 엄마의 자부심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온 동네가 못 알아볼 정도로 변했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다. 그 곁의 3층짜리 연립주택은 근사하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우리 집은 완전히 몰락했고 15평짜리 아파트 월세로 이사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도 물색없이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곤 했는데, 엄마가 내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언제 사귄 친구들이라고? 그럼 전에 OO빌라도 놀러 왔었나? 그때 그 집은 넓고 좋았는데. 지금은 좁아서 놀기 불편해서 어쩐다니."
엄마는 궁색한 살림에 행여 내가 초라함을 느낄까 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그 말에 수치심을 느끼곤 했다. 당시 친구들의 집은 내가 살아 본 그 어떤 집보다 근사했지만 나는 한 번도 위축되지 않았는데, 엄마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내 비밀이 들통나는 것만 같았다. 엄마의 자부심도, 열등감도, 모두 부끄러웠지만 그녀에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Y가 고집스럽게 언급하는 브랜드들과 가족들의 직업은 자부심일까, 열등감을 숨기려는 것일까. 둘 다일 수도 있고 모두 아닐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못내 아쉬웠다. 나는 우리가 브랜드나 남의 직업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로에게 더 많은 영감과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낯선 이름과 뜬금없는 이야기들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맥없이 툭 끊기곤 했다.
그녀를 만난 이후로 나는 나를 더욱 단속한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워낙 내세울 것이 없는 터라 딱히 뭔가를 강조하려고 한 기억은 없지만, 그렇기에 어쩌면 별 것도 아닌 것에서 우월감을 느끼며 은연중에 드러내려고 했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초라한 행위, 하지 않으리라.
나는 누군가 쓰는 브랜드나 가족들의 명함보다 그 자신이 궁금하다. 어떤 성품과 취향을 갖고 있는지, 어떤 때 행복하고 분개하는지, 어떤 감성과 태도로 삶에 반응하며 살아가는지 알고 싶다. 상대 역시 나의 그런 면에 호기심을 가지길 희망한다. 감상적인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이런 관계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