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해 말하라면 몇 날 며칠 밤을 새울 수 있다. 그녀는 나의 무심함을 지탄하곤 하지만, 내가 평생 동안 가장 많은 시간 골몰해 온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진실에 가까울 수 있을까.
그녀는 1958년, 바다가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유복했고 부모님의 금슬도 좋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뒤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가 허송세월 하는 사이, 큰 오빠가 배를 건조하고 무모한 사업을 벌이며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 급기야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어린 나이에 직업을 찾아 상경한 그녀는 머지않아 한 남자를 만났다. 데이트를 할 때면, 그는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뛰어올 정도로 그녀에게 홀딱 반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사장님이라는 그 남자가 믿음직스러워 그녀는 결혼을 결심했다. 스물한 살에 결혼해 이듬해 큰 아이를 낳았고 연년생으로 낳은 둘째 딸이 나다.
옛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엄마는 자신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음을 수없이 강조했다.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이 풍부했으며 머슴도 여럿 있었다고 했다. 인근 마을 중 본가에서 돈을 꾸지 않은 집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고 추억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빠의 가난을 언급하곤 했다.
"그 시절 다들 어려웠다고 하지만 나는 잘 먹고살았어. 근데 니 아빠는 죽도 못 먹고살았다더라. 그러니 교육도 못 받고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왔지."
그 말을 할 때 그녀가 내비친 것은 연민이 아닌 우월감이었다. 아빠의 한을 그렇게 소비하는 그녀가 나는 못내 야속했다.
한참이 지난 뒤 나는 놀라게 되었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어 전적으로 믿었던 엄마의 이야기에서 거짓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모들에게 내가 가보지 못한 옛 외가에 대해 물었을 때, 엄마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곤 흘러나온 이모들의 이야기는 엄마의 이야기와는 너무도 달랐다. 엄마는 붉어진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사실과 거짓을 섞어 각색한 듯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왜 자식에게까지 아무런 득도 없는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그 옛날의 엄마를 상상해 본다.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온 젊다 못해 어린 여인 말이다. 믿고 인생을 건 남자는 한순간도 빠짐없이 한눈을 팔며 가정을 나 몰라라 했다. 악다구니를 써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생때같은 자식을 셋이나 둔 상황에서 다른 대안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과거라도 포장해야 했을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보다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언젠가부터 나는 그녀의 거짓말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한순간, 작은 위로라도 되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