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을 굳이 쓰는 이유는

모두가 더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씁니다

by 구황작물

부모에 관해, 특히 그들의 과오에 관해 글을 쓰다 보면 벽에 부딪치는 순간이 온다. 과연 나는 그들에 대해 떠들 자격이 있느냐 하는 질문이 찾아오는 것이다. 효를 위시한 유교적인 사상을 제쳐 둔다 해도 그렇다. 나는 그들보다 손톱만큼이라도 나은 인간인가. 내 답은 늘 부정적이어서 애써 트인 입이 막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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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유해한 남편이었다. 좋은 시대와 영민함을 밑천 삼아 일찍이 사업체를 차렸지만 아내에게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많은 부분을 떠넘겨 버렸다. 샷시를 하는 것은 그였지만 모자란 돈을 융통하느라 동분서주하는 것은 엄마였다. 그렇게 유지되는 사업은 늘 위태로웠고 IMF가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너졌다. 다섯 식구의 생계는 엄마 몫이 되었다.


그는 숱한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다. 한 번은 상대 여성의 남편이 칼을 들고 집에 찾아왔다. 아빠는 놀랄 만한 민첩함으로 베란다로 달려갔고 머리카락이라도 보일세라 꽁꽁 숨었다.


열 살쯤의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고 몹시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때 내가 느낀, 당시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던 격한 감정의 이름은 한참 뒤에서야 배웠다. 수치였다.


엄마는 길길이 날뛰는 남자에게 집엔 자신과 아이들밖에 없다고, 우리도 피해자이니 괴롭히지 말라고 통사정했다. 남자가 돌아간 뒤 베란다에서 나온 아빠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고작 '멋쩍은' 일인 것처럼. 남자는 그 후로도 전화를 해왔고 내게 말을 걸었다. 어린아이가 충분히 놀랄 만한, 성적인 말들을 쏟아내기 위해.


아빠가 한심한 시절을 보내던 그때, 엄마는 모든 것을 해냈다. 가정환경 조사서의 '직업란'은 전업주부로 채웠지만 실질적인 생계 부양자로서 우리를 먹이고 돌보고 가르쳤다. 동시에, 그녀는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했다. 나는 제한 없는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었다. 그녀의 손도, 발도, 물도, 언제든 폭력의 도구가 되었다.


내가 자라며 그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폭력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맞은 것은 스물여덟. 엄마는 바르고 있던 크림통으로 내 머리를 찍었다. 나는 엄마와의 다정한 대화를 상상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녀가 큰 동작을 취할 때면 몸을 움찔한다.


그녀의 폭력에 길들어가던 때 나를 구해 준 것은 아빠였다. 그는 나 역시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려주었다. 돌이켜 보면 가사와 육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아빠가 어쩌다 한번 쓰는 선심이었겠지만, 나는 아빠와 갔던 한강과 열심히 페달을 밟았던 오리배, 우리가 나눈 다정한 대화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엄마는 남편의 방종과 무책임함의 피해자였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폭력 위에 군림한 사람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엄마를 무적의 강자로 인식했다.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엄마를 바라보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집안팎을 가릴 것 없이 몸을 갈아가며 노동했던 엄마를 연민하기 시작했던 스물한 살 무렵, 그녀는 말 한마디도 없이 사라졌다.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헌신으로 자랐다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어쩌면 그녀가 평생 다른 대안을 찾아 헤맸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성인이었지만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그때, 내 곁에 있던 것은 아빠였다. 엄마가 사라지자 그는 병든 몸을 일으켜 공사장에 나갔다. 그의 노동으로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순 없었지만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했고 내 학비의 상당 부분을 채웠다. 버려질 수 없지만 버려졌다고 느꼈던 그때, 나를 보살핀 것은 아빠였다.


어떻게 봐도 모범적인 부모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내게 주었다. 어떤 것도 동시에 주어진 적은 없었고 핑퐁하듯, 때로는 폭탄 돌리기하듯 주어졌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나는 이들 덕분에 살았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노라 말할 순 없으나 그들은 자신이 지은 생명을 책임졌다.


하지만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부모의 과오와 아픈 기억까지 기록하는 것은 그 역시 나를 이뤘기 때문이다. 내 일부를 부정하느라 나라는 사람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지쳐 버렸다.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싶어서 숨겨왔던 기억들을 글로 옮긴다.


또한, 쓰지 않으면 그들은 내 안에서 시시때때로 가해자가 된다. 나는 그들에게도 자유를 선사하고 싶다. 쓰는 동안 나는 어린 나뿐만 아니라 젊고 미숙한 그들을 만난다.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그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내 글쓰기는 이해할 수 없는 부모에게서 시작되었으므로 그들을 언급하지 않고는 다른 글로 나아갈 수가 없다. 애써 피해도 다시 제자리였다. 그래서 쓴다. 지금보다 더 먼 길을 가기 위해서. 그 끝에 뭐가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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