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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Nov 01. 2023

뻔뻔한 초보 운전자가 되어 갑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더군요

운전을 시작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거창하게 말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서로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만큼은 우리, 운명 공동체 아닌가. 꼭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해도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지만 대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채 우리는 스쳐 지나간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서로의 한 순간을 함께 하며. 이 생각을 할 때면 어쩐지 감격스럽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청해도 된다는 것도 운전을 하고서야 배웠다. 나의 배움은 이렇게 늦다. 당황스러운 순간마다 낯선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어떤 대가도 없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과 시간을 내주었다. 복되고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뭐가 그렇게 무서워 겁내며 살았을까.


물론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다른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심지어 위험에 빠뜨리는 이들도 있지만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간 것은 스쳐지나 보내야 한다는 것, 그 또한 배운다. 지나치게 곱씹거나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래야 안정과 평온이 유지되고 내 곁엔 다른 이들이 유유히 흘러간다. 


@pixabay


며칠 전 공영주차장에서의 일이다. 한동안 별다른 일이 없어서 그런지 방심했나 보다. 3층으로 올라가는 유난히 좁은 코너를 잘못 돌았다. 후진과 전진을 여러 번, 잘못된 방식으로 시도한 탓에 차와 기둥은 더 가까워졌다. 내 뒤로도 차가 들어와 더욱 당황했고 그럴수록 상황은 더 나빠졌다. 


얼른 차에서 내려 뒤 차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리곤 말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운전이 서툴러서 코너에 걸려 버렸다고.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그는 나를 도와주려 했지만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비영어권 외국인이었다. 미안하고 고마웠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내 뜻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제스처로 양해를 구하고 1층 관리실로 달려갔다. 직원 분에게 도움을 주십사 말씀드렸는데 내 생각보다 내가 더 당황했는지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했나 보다. 직원 분은 무미건조하게 "말씀을 똑바로 해보세요. 뭐라고요?" 했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운전이 서툴러서 코너에서 못 돌고 기둥에 걸려 버렸어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죄송하지만 좀 도와주실래요?"


직원 분이 함께 올라갔고 주차까지 안내해 주었다. "핸들 오른쪽으로 끝까지, 그대로 후진하세요, 그대로. 이제 풀고 이쪽으로 전진, 다시 후진…." 그는 시종 정중하지도, 무례하지도 않았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인상적일 정도로 무색무취에 가까운 태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고마울 뿐이었다. 


여러 번 감사 인사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도로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간 친절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번만큼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볼 일을 빨리 마치고 주위 가게들을 살펴봤지만 마땅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편의점에서 스타벅스 커피와 쿠키를 샀다. 


주차권과 함께 가져온 간식들을 내밀었다.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나는 이런 장면을 예상했던 것 같다. '뭘 이런 걸 가져오셨어요, 안 그래도 되는데', 하면 나는 '너무 고마워서요', 하고 밝게 인사하는 것. 


하지만 직원 분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예의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가져가세요. 제 할 일 한 건데요. 천 육백 원입니다." 


사람 속을, 그것도 처음 본 사람 속을 속속들이 알 순 없지만 이건 진심 같았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를 불편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좋나. 이미 내민 것을 다시 거두기도 얼마나 민망한가 말이다. 우리의 대화는 묘하게 흘러갔다.


"너무 감사해서요. 저공해 차량이에요. (주차 할인 적용 해달란 뜻)"

"그럼 팔백 원이요. 이거(커피&쿠키) 얼른 가져가세요."


나는 천 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이래야 제 맘이 편해서요."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정한 말인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실패한 것 같다. 그의 업무 영역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고 지금도 주차 안내까지는 그의 일이 아닌 것 같지만 그는 다르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업무 영역이 어떻든 고마운 것이 변하지는 않지만 나는 고마운 그를,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늘 마음 졸이며 살았다. 나의 행동이 잘못된 결과를 만들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다 보면 선의고 뭐고 간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나아 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수할 일도 적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것이 자기연민에 찌든 무책임인 줄도 모르고. 


하지만 이제 이런 일에도 피식 웃어버리고 만다. 상황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행여 그를 좀 불편하게 했다 해도 어쩔 수 없겠거니. 세상엔 별 사람이 다 있다며 넘어가주길 바랄 뿐이다. 우리가 운전을 하며 그러하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세상을 겁내하기보다는, 실수하더라도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점점 더 뻔뻔해지고 있고 이런 내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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