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혐오범죄에 맞서야 한다
몇 해 전, 오랫동안 길러 온 머리를 싹둑 잘랐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어떻게 하면 더 편할까만 생각했는데 자르고 보니 상상 이상으로 개운했다. 이 좋은 것을 그동안 잊고 살았다니 아쉬웠을 정도. 샴푸 후 머리카락을 말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귀를 드러낸 쇼트커트로 한동안 시원하게 지냈지만 지금 내 머리는 어느새 또 자라나 있다. 짧은 머리는 간편하지만 그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미용실을 자주 방문해야 한다. 그걸 귀찮게 여기는 나로서는 다시 또 긴 머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평생 이 패턴을 반복해 왔다.
누군가는 헤어스타일로, 옷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겠지만 나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다. 미적 감각이 없고 그 분야에 관심도 없는 나로서는 그저 편한 것이 좋다. 다만 지나치게 튀거나 문명을 등진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아 최소한의 노력을 할 뿐이다. 긴 머리든, 짧은 머리든, 나는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누군가 내 외모로 나를 파악하거나 규정하려고 한다면 어이가 없을 것 같다. 외모로 사람을 함부로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배워 온 '상식'이기도 하지 않던가. 상식이란 말이 때로 폭력적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굳이 쓰고 싶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믿기지 않는, 믿고 싶지 않은 사건
지난 4일, 한 20대 남성이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여성을 폭행했다.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되던 당시 "여자가 머리가 짧은 걸 보니 페미니스트"라며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나 메갈리아는 좀 맞아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나는 피해 여성이 페미니스트였는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다만 누구든, 어떤 외모와 정체성을 갖고 있든 간에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또한 이것이 명백한 혐오 범죄라는 것도. 7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 절망스럽다. 가해자의 정신병력이 거론되고 있긴 하나 그것으로 혐오 정서가 있었다는 사실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여성혐오는 그 자체로서도 문제적이지만 이렇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이 모든 사건들을 개인적인 일탈로 치부하는 것은 악을 뿌리 뽑지 못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인셀(비자발적 독신자) 테러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도 그 전철을 밟을까 봐, 아니 이미 그 가운데 있는 것 같아서 두렵기만 하다.
부디 정부 차원에서 혐오 범죄에 대한 세심한 대책을 세우기를 바란다. 또한 가해자가 내뱉은 기괴한 '남성연대'가 아니라 진정한 시민 연대를 보고 싶다. 사건이 공개된 이후, 여성들의 짧은 머리 지지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지각 있는 남성들이 대거 참여하길 간절히 바란다.
굳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하지 않아도 좋다. 주변의 몰지각한 사람들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가해도 좋다. 외모를 사람을 품평하지 말라고, 그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을 고칠 수 없다면 입 밖으로 발설이라도 하지 말라고. 그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혐오에 맞서는 연대를 만들기 위해선
이것이 남성의 힘을 빌어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오인될까 봐 걱정스럽다. 하지만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무엇보다 대부분의 여성은 외모로 인한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널려 있으며 우리 삶을 좀먹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성별을 떠나 모두가 한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폭력의 측면에서 남성은 강자의 위치가 되기 쉽고 여성들은 늘 이를 의식하고 산다. 남자라는 이유로 가해자로 오해받기 싫다며 분노하기보다 약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 품격 있는 시민의 자세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혐오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신뢰를 말살한다. 혐오에 맞서는 진정한 연대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오마이뉴스 기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