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모순을 직면하며 살아갑니다
집 앞,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가는 좁은 골목에 폐지 줍는 노인이 터를 잡았다. 날이 더워도 추워도, 좋아도 나빠도 고생스러울 노인이 신경 쓰였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력함은 내 무기 아니겠나. 내가 뭘 어쩌겠어? 복지 예산을 삭감한 정부를 욕하고 또 욕했을 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폐지는 점점 쌓여갔다.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길 한쪽을 차지하던 것이 양쪽이 되었다. 내 운전 실력으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지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하나같이 운전을 잘하는 거야? 나만 힘든 거야?" 답은 무의미했고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급기야 며칠 전 새벽. 누군가 그곳에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깨끗한 곳에 버리는 것보다 지저분한 곳에 버리는 것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새벽, 자신의 집 앞이 아닌 그곳까지 찾아가서 버렸을 것이다. 그는 한 줌의 쓰레기가 아니라 내 상반신보다 커다란 비닐봉지를 버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민원을 넣었다. 불법 노상적치물을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멀쩡한 길을 지나다니기 힘든 것도 지긋지긋했고 깨끗했던 집 앞 골목이 불법 쓰레기 투기의 표적이 되는 것도 싫었다.
민원을 넣은 뒤에서야 처리 과정을 검색해 보았다. 과태료 부과대상이라는 말에 심장이 덜컹했다. 과태료는 노인의 며칠치 일당일까. 손이 발발 떨렸다. 민원 취소를 알아보려고 컴퓨터를 켜며 검색 결과들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과태료 부과 전에 경고장이 먼저 전달된다 했다. 안심했다.
언젠가, 운전을 하던 한 지인이 말했다. 폐지 줍는 노인들 때문에 미치겠다고. 막무가내로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횡단하며 여러 사람 놀라게 하고 피해 입힌다고. 나는 말했다.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냐고. 목숨 내놓고 다니는 게 재밌어서 그러겠냐고.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하지만 그의 생계에 직접적인 훼방을 놓으려는 건 나다. 나는 이제 민원을 취소할 마음도 없다. 이게 나다. 이렇게 가증스러운 인간이 나다. 그 골목은 폐지나 쓰레기 적재소가 아니라고, 사익이 아니라 공익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알량한 핑계를 안고서.
단독주택에 살고 싶었다. 아파트 공화국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좋은 위치의 근사한 집은 꿈도 꿀 수 없지만 견딜 만한 위치의 작고 오래된 주택을 사서 거의 새로 짓는 수준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 어떨까 고민했다. 그래봐야 비싼 서울 하늘 아래이니 결국 빚을 져야 하지만, 어차피 빚질 거라면 좋아하지도 않는 아파트보다 우리 생활에 맞게 꾸민 집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민원을 넣고는 생각했다. 그냥 아파트로 가야 하나. 그럼 매일 좁은 골목을 지나다닐 일은 없지 않을까. 나는 끝까지 내 생각뿐이었다. 나는 겨우 이런 인간인 것이다.
고백건대 이건 반성문이 아니다. 내 안에는 선도, 악도,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그 무엇도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을 뿐이다. 선하지만 무력한 사람으로 나를 포장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기보다는, 내가 이런 인간이라는 것을 수시로 깨달으며 세상과 부대끼고 싶다. 남에겐 무의미할지라도 나에겐 의미 있는 변화들을 고민하고 실행하며. 때론 후회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