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키야 미우 소설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
결혼 안 한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은 어떨까. 시대가 변했으니 예전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내 부모 세대는 내 세대와는 또 다를 것이다. 함부로 넘겨짚을 수 없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우리 엄마를 떠올려 보면 살짝 양가적인 모습이 보인다. 맞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가 하면, 본인의 노후를 계획할 때 미혼인 딸의 삶을 겹쳐놓기도 한다. 어떤 땐 딸의 결혼을 바라는 고전적인 부모였다가 어떤 땐 익숙한 삶이 지속되길 바라는 연약한 노인이다. 이 사실을 지적하면 난리가 날 테지만.
남 말 할 것 없다. 남녀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나를 호강시켜 주겠다는 남자의 말에 가슴 찌릿함을 느끼는 게 나다. 어쩌란 말인가. 사람의 정체성은 한 가지가 아닌 것을. 과거도, 미래도 개별적인 것을.
자기모순은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지탄받을 일은 아니리라 믿는다. 다만 남을 재단하긴 쉬워도 나를 성찰하긴 어렵다는 진리, 그것만은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시대상을 드러내는 경쾌한 '에세이'를 예상하며 펼친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 소설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틀리진 않았다고 우겨볼까. 재치 있게 현시대를 보여주는 유의미한 책이다.
오십 대의 지카코는 미혼인 딸 도모미 때문에 걱정이 많다. 그 딸이 겨우 스물여덟이라 당황스럽지만, 어쨌거나. 지카고 주변에도 미혼으로 당당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카코는 딸의 직업도, 성격도 비혼의 삶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여긴다.
지카코의 속은 타들어가는데 도모미는 태평하다. 지카코는 결혼을 부정적으로 보는 딸에게 "너 바보야?" 쏘아붙이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천애고아가 되는 미래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결국 지카코와 남편, 도모미 셋은 오랜만에 똘똘 뭉쳐 결혼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로 한다. 지카코는 '부모 대리 맞선'에 나가고 도모미는 당사자들을 위한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다.
호기롭게 나간 부모 대리 맞선은 지카코에게 열등감과 무력감을 선사한다. 하면 할수록 혼란이 가중되고 결혼도, 인생도 손익계정인 것만 같다. 그럼에도 딸의 행복을 위해 포기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긴 시간과 큰돈을 투자해 가며. 그녀 역시 결혼이 만능 해결책이 아니며 완벽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지만 목표를 수정할 생각은 없다.
그녀는 스스로 페미니즘 기질을 타고났다고 여긴다. 며느리에게 맞벌이를 요구하면서도 집안일까지 다 시킬 거라고 말하는 뻔뻔한 상대 부모들에게, 내 딸을 과로사시킬 작정이냐고 쏘아붙이는 그녀다. 하지만 그녀 역시 구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평생 맞벌이를 했으면서도 남편의 가사노동을 배려라고 여겼고, 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어머니와 교사 노릇까지 자처하며 살아왔다.
뿐인가. 애초에 이 맞선에는 남자 45세, 여자 35세라는 연령제한이 있지만 지카코는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여자의 외모와 나이가 중시되는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녀 역시 딸의 젊음이 시들어갈까 봐 조바심을 느낀다.
경험이 쌓일수록 지카코는 여성의 일과 부모를 소중히 여기고 여성을 깔보지 않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남자조차 많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결혼이라는 목표는 변함없다. 그녀는 상황에 몰입한 나머지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우리 딸이랑 결혼하실래요?" 이 코미디 같은 상황에 등골이 오싹했다. 나 역시 뭔가에 몰입하면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렸던 것 같아서.
그녀는 생각한다.
"일본은 언제쯤이나 변하려나. 이래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여자는 남자 밑에 놓일 수밖에 없다."(178)
그러나 자신 역시 사회 변화를 늦추고 있다는 것은 끝내 깨닫지 못한다. 여자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제 몫을 한다는 것은 해묵은 사고방식이며 일본 사회의 구태의연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평하면서도, 밉살스러운 중년 여성을 보면 친구도, 가족도 없을 거라 지레 짐작한다. 이 또한 그녀가 편견 안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을 너무 매몰차게 비판했나. 물론 그녀는 지각 있고 예의 바르며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지나친 속물이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것도 물론.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그렇지 않은가?
나중으로 갈수록 딸 역시 비혼의 삶에 불안감을 느끼며 결혼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하는데, 지카코는 이를 반기기까지 한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딸이 우연한 계기로 직업적인 목표와 열정을 갖게 되었음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들어간 꿈은 얼마나 많을까.
딸을 평가절하하기보다는 믿어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응원할 수 없다면 한 걸음 떨어져 가만히 지켜볼 순 없었을까. 응석받이로 자란 아들이 사위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만 자식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한다는 데서 지카코 역시 다르지 않다.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하나. 도모미는 맞선 상대와 결혼 가능성이 보이고, 지카코는 딸을 가진 엄마에게 '부모 대리 맞선' 팁을 적극적으로 알려주기로 결심한다. 작가나 다른 독자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 이건 새드엔딩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지카코는 직장의 젊고 어린 여자가 치과의사와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 인생은 그런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평등하다고 헌법에 적혀 있지만, 이성으로부터의 인기에 대해서만큼은 통하지 않는 말 같다."(339)
그녀는 끝내 성장하지 않은 듯하다. 치과의사와 결혼했다는 것만으로 평등까지 거론하며 남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다니.
현 사회를, 남을 비판하긴 쉽다. 나도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 내키지 않는 회식 자리에 참석해 실없이 웃고 있으면서도 열정적으로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이들을 욕하긴 얼마나 쉬운가 말이다. 나 역시 그 문화를 바꾸지 않고 영속시키고 있다는 것은 모른 체하며. 지카코를 비판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을 통해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남녀관과 결혼을 대하는 인식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이중성과 무지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또 얼마나 좁은 나만의 사고 틀에 갇혀 헛발질을 하고 있을 것인가. 아무리 노력해도 후회와 부끄럼 없이 살 순 없을 것 같아서 감히 남을 평가하지나 말자 다짐해 본다. 남들도 너만큼은 생각하고 산다. 아닐 것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