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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Nov 10. 2023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행운일까, 불운일까

[리뷰] 스테판 츠바이크 소설 '우체국 아가씨'

나의 엄마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부친과 오빠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집안의 몰락을 경험했다. 결혼 후에는 한동안 여유로웠지만 또 한차례의 급격한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IMF가 터짐과 동시에 모든 것을 잃고 월셋집을 전전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래도 밥은 굶지 않았으므로 당시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내가 겪은 가난은 수치와 열패감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겪은 가난은 좀 더 구체적인 형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가격표, 청구서, 고지서, 등록금, 노동, 노동, 노동. 그리고 따라오는 피로와 절망.


지친 엄마는 이런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차라리 전쟁이 나면 좋겠어. 그럼 다 같이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할 거 아냐. 차라리 그게 나아." 


듣다 못해 "전쟁 나면 다 죽는 거라고! 우리만 살 것 같아?" 쏘아붙이면 엄마는 텅 빈 눈으로 말했다.


"응. 그래도 되니까. 다 쓸어 없어졌으면 좋겠어."


한두 번 듣는 게 아닌데도 매번 소름이 돋았다. 그 말의 함의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가끔은 뻗어가는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한때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행운일까, 불운일까. 우리는 삶에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까. 


<우체국 아가씨> 책표지 @빛소굴


스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우체국 아가씨>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오스트리아의 한 시골 마을, 크리스티네는 우체국에서 일한다. 직업이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녀는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소모품일 뿐이다. 십여 년간 이어진 전쟁은 그녀에게 젊음과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워버렸다. 삶은 그저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절망 속에서 살아가던 어느 날, 왕래가 없던 클라라 이모가 스위스의 고급 휴양지로 오라는 초대장을 보내온다. 크리스티네는 병든 엄마를 대신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여행을 떠난다.


도착한 그곳에는 부유함이 넘친다. 크리스티네는 모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금세 환희에 젖는다. 이모의 호의로 값비싼 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우아한 사람들과 함께 춤추고 어울리며 그 생활을 만끽한다. 사람들의 호의와 환영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다. 아픈 엄마와 연락하는 것조차 잊고.


무심결에 부유한 귀족 행세까지 한 크리스티네. 누군가의 질투로 그녀의 출신이 폭로되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가차 없이 등을 돌린다. 설상가상으로 클라라 이모는 크리스티네로 인해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발각될까 겁을 먹어 갑작스럽게 그녀를 돌려보낸다.  


영문도 모른 채 쫓기듯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크리스티네는 고통도 불안도 아닌, 분노에 휩싸인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슬픔도 느끼지 못할 정도. 새로운 세계를 접한 그녀는 전과 다르다. 자신이 속한 동네도, 사람도, 모두 흉물스럽고 꼴 보기 싫다. 삶은 지긋지긋하고 견딜 수 없다, 이전보다 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타자로서의 시선이다. 마치 자신은 다른 곳에 속해 있다는 듯이.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인가. 얼마나 참혹하게 가난한 사람들인가. 하지만 저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어. (...) 하지만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거야.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얼마나 지독하게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245)


그녀는 예의와 친절도 없고 거만하고 무관심한 사람으로 변한다. 악의와 적개심, 증오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죄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오직 추억만을 가슴에 품고서. 


그러다 우연히 형부의 전우인 페르디난트를 만난다. 그는 전쟁으로 잃어버린 11년에 분노한다. 자신의 인생과 권리를 빼앗겼다고 느껴 시도 때도 없이 공격성을 드러낸다. 그 자신도 마치 자기 혼자 전쟁을 겪은 것처럼 군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삶의 무의미를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인생이 밑바닥이 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과 타협하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오히려 그것이 똑똑한 게 아닐까 싶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 증오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는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사랑이 아닌 연민이다. 지치고 절망한 상태에서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서로를 만나는 일요일을 기다리게 되지만 보통의 연인과는 다르다. 희망이나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만날수록 고통이 커지고 인생이 잘못되었음을 상기할 뿐이다. 


"처음에는 서로 믿고 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가난'이라는 좁은 골목에서 큰길로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믿지 않았다."(362)


이들은 동반 자살을 떠올리다가 우연히 우체국의 돈을 보고 계획을 바꾸게 된다. 성공을 확신하지도 않으면서, 어쩌면 실패를 확신하면서도 돈을 들고 도주하기로 한 것이다. 책은 치밀한 계획을 짜는 것으로 끝난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패배하겠지만, 우리가 언제 이겨본 적이 있었나?"(397)


소설은 전쟁이 삶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전쟁을 결정한 자들은 그 고통에서 열외 되면서 왜 힘없는 이들이 고통받아야 하는가. 빈부의 차이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나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된 것들로 인해 모든 것을 누리거나 어떤 것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부조리한가. 


완벽하게 평등한 세상이란 불가능하다고, 팔짱 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확대경을 들고 삶을 들여다볼수록 그 말이 얼마나 가볍고 무책임한 지 깨닫게 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일뿐이다. 


그럼에도 불공평한 현실 앞에서, 사람은 어느 곳을 준거집단으로 삼으며 살아야 할까. 내 잘못이 아닌 것으로 인해 불행한 사람에게 아래쪽을 바라보라는 말은 잔인하기만 하다. 그 사람에게도, 그 '아래'에 속한 사람에게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삶이 무엇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 순간 행복은 물러가게 되는 것일까. 크리스티네도, 페르디난트도 알고 있다. 그런 생각들이 자신들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우체국 아가씨>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목숨을 끊은 뒤 발견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소설을 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스스로의 뒤틀린 부분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쩌지 못해 끊임없이 분열하지는 않았을까.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는 수치를 끝내 이기지 못해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도 절망도, 열정도 냉정도 아닌, 그저 상상이 아닐지. 


"사람의 영혼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탄력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 무한히 커질 수 있고, 그 비좁은 공간에 온 세상을 담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111)


그 옛날 나의 엄마를 떠올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때 그녀는 절망 속에 살았지만 결국 다시 일어섰고 내게 기적이 뭔지를 알려주었다. 그 모든 일들을 겪고도 여전히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녀. 허황된 꿈을 말할 때면 그 어리석음과 비현실성에 기가 막히지만 그래서 그녀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죽을힘이 있다면 그 힘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삶이 꼭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게 기적을 알려주는 사람들은 살아내는 사람들이라는 것. 구차하고 부조리한 이 삶을 버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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