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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May 11. 2020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인간의 어떤 공상

스토커는 아니예요..


규칙을 꽤나 준수하는 편이다. 비난 받기 쉬운 환경에서 자라 규칙에 집착하게 됐다.. 라고 말해도 어느 정도 진실이겠으나, 간단히 말하자면 소심해서. 규칙을 어기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잠이 안 오니 어지간하면 지킨다. 그게 속 편하니까.


그러니 내가 코로나19 이후 감금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란 말씀. 물론 자가 감금이다. 재택 근무를 하고 있으니 출근할 일도 없고 생필품을 사러 시장이나 마트에 간 적은 있지만, 그밖의 필수적이지 않은 외출은 전무하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사는 공동 주택에도 한낮의 인구밀도가 전에 없이 높아졌다. 이웃들의 인기척을 느끼는 일도 무척 잦아졌으니 누군가는 시시각각 나의 존재를 느끼고 있겠지. 


어린이 여러분! 두껍아 두껍아 아무리 소원을 빌어도, 프라이버시는 보장해 주지 않아요! 이게 다 날림 공사 때문인데... 뭐, 언젠가 나아지겠지요.


@Pixabay


그러다 떠오른 공상.


어느 날, 경찰이 찾아와 묻는 거야. '혹시 윗집에서 이상한 낌새나 분위기를 느낀 적은 없나요?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진 못하셨나요?'

일단 난 말하겠지. '거의 마주친 적이 없어요. 3년 가까이 살았지만 마주친 것은 일 년에 너댓 번쯤 되려나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경찰은 의례상 한 번 더 물을 지도. '그래도 윗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거나, 그런 적은 없나요?'


나는 말할 지도 몰라.

"윗집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보통 청소기 소리 뿐이에요. 진공청소기일 때도 있고, 밀대 같은 걸로 박박 문지르는 소리일 때도 있고, 청소에 관심 없는 저로서는 언뜻 들어서 알 수 없는 종류들도 있어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청소를 하시죠. 잦은 청소가 아주머니 때문인지, 아저씨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청소를 하시는 분은 아주머니가 확실해요. 아저씨가 새벽에 출타하신 뒤에도 그 소리는 많이 들었거든요. 아, 저는 잠이 얕아서 새벽에 나가시거나 들어오시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물론 문을 열고 확인해 본 것은 아니니, 추측일 뿐입니다만.


그런데 아저씨가 많이 아프셨다고 했거든요. 정확히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는데, 작년 이맘때 듣기로 아저씨가 크게 아프셨다고. 그래서 아주머니 말고는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어쩐지 저를 보실 때 눈빛이 크게 흔들리는 걸 느꼈는데 그게 그 이유였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저는 안색이 좋아 보이신다, 건강해 보이신다, 라고 말을 했는데, 아주머니는 본인이 보기에도 그건 그렇다면서도 덧붙이셨어요. 사실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이죠, 라고. 언뜻 보기엔 신체의 이상은 없어 보였지만 그렇게 봐서는 모를 수도 있고, 사람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신다 하니 몸이 아닌 정신의 재활을 말씀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문에 일을 그만두셔서인지, 한동안은 아저씨를 전보다 오히려 자주 뵐 수 있었거든요. 특히 아주머니랑 아저씨가 함께 체육관에 다니셔서, 오며가며 자주 만날 수 있었죠. 저도 같은 곳에 다녔거든요. 무척 보기 좋다고 생각했죠. 한번은 인사를 건네며 그렇게 말씀 드린 적도 있어요. 너무 보기 좋다고. 저는 원래 젊은 부부보다 노부부의 다정함에 낭만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 이런 이야기는 쓸모가 없군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주머니 혼자만 계시기에 여쭤봤더니, 부군께서는 더이상 가기 싫다고 하셨다더군요. 이제 운동도 안하려고 한다고. 그저 아, 하고 인사를 마쳤던 것 같네요. 그후로도 별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어요. 아주머니는 평소와 다름 없이 운동을 하셨고, 집안 청소를 계속하셨죠.


굳이 하나를 더 말씀 드리자면.. 코로나 사태 이후, 딱 한 번 청소기가 아닌 다른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3년 넘게 살며 윗집에서 사람의 음성을 직접 들은 적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그러니까 사람이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죠. 정확히 누군지는 알 수 없고 내용도 당연히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도 여자의, 그러니까 아주머니의 음성인 것 같았어요. 소리와 함께 물건도 떨어지거나 부서지는 소리가 났죠.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좀 놀라긴 했죠. 때마침 저도 코로나 때문에 24시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끼던 시점이라, 약간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아주머니가 혹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죠.


 그러니까 제 말씀은, 저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딱히 왕래하며 지낸 적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사생활이라면 말씀해 주지 마세요. 제가 알아야 하는 거라면 말씀해 주시고요. 어쨌든 저는 도움은 드리지 못할 것 같네요. 아는 게 없으니까요."


나의 이웃들은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Pixabay


여기까지 공상에 잠기다 보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어. 실제로 우리 집에 경찰이 찾아왔던 적이 있거든. 어쩌면 내 공상의 근원도 거기에 있는지도 몰라. 몇 년 전, 그러니까 다른 집에 살 때였는데, 그때 경찰의 질문은 매우 간단명료했어. 바로 앞 공사장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해서 그런데, 우리집 현관의 CCTV 좀 볼 수 있냐는 거였지.


나는 수줍게 답했어.


“그거 가짜예요.”


경찰은 황망한 표정을 지었으나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돌아섰고, 나는 그의 뒷통수에 대고 애원하듯 말했어.


 “저기요.. 비밀로 해주세요. 저 CCTV 가짜인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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