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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May 20. 2019

내 곁의 생로병사

결혼식과 출산을 거쳐, 이제는 무엇을 보게 될까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기 시작할 때, 결혼식만 보면 왜 그리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예식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말랑한 감정이 몰려들기 시작해 애써 꾹꾹 눌러 참다가,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들께 인사 드리는 장면에선 게임 오버였다. 참아내지 못한 눈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화사하게 웃는 신부 옆에 서서 사진을 찍을 땐 이미 붉은 눈시울의 하객이 되어 있었다. 주의 깊은 누군가 봤다면 사연 있는 여자로 오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pixabay


시간은 흐르고, 어느 순간 친구들이 하나둘씩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 한가로운 주말을 누릴 수도 없게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결혼식들에 차츰 둔감해 질 때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작고도 작은 아기 생명체와의 조우는 내 감성을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작고 연약한, 그러나 내가 모르는 생명의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아기의 모습은 그 존재 자체로 감동이었다. 결혼식때보다 더 설명 못할 감정들이 올라와 나는 울컥했다. 잠시 잊었던 내 안의 사연 있는 여자, 그녀의 컴백. 나는 자리를 피해가며 눈물을 훔쳤다. 


시간은 또 속절없이 흐르고, 이제 주일에 교회가듯 결혼식에 빈번하게 불려가야할 나이도 지났고, 첫 아이를 낳아 호들갑을 떨며 친구들을 부르는 이들도 없어졌다. 간간이 있는 결혼식에서, 나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영혼없이 앉아 예식을 지켜보며 지루해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는 피로연은 이제 뷔페보다는 갈비탕이 더 낫네, 어쩌네 떠들며 예식은 곧 잊어버리곤 한다.


낯선 아이를 봐도 마찬가지다. 청승맞게 눈물을 글썽이던 여인은 어디갔나. 다들 제 살기 바빠 모처럼만에 모이는 모임에, 눈치 없이 아이를 데려와 밥이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친구에겐,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이제 나는 좀처럼 울지 않는다. 결혼식에서도, 작은 아이를 보면서도. 특별한 사연을 들으며 여전히 울컥할 때가 더러 있긴 하지만, 극히 드문 일이다. 


아직 나이 운운하기엔 이른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것을 부인할 수 있으랴. 가까운 지인과 친지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들의 성격이 변해가기 시작한다. 이따금 부고, 그리고 발병의 소식들. 


얼마 전엔 일흔 넷의 외삼촌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야 말았다. 삼촌의 병문안을 가는 길에 주책없이 튀어나오는 눈물을 다스리며, 절대 누구 앞에서도 울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요즘 의학기술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분명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싶게 벌떡 일어나 여느 때처럼 호탕하게 웃으실 것이라 믿기에, 우는 것은 굉장한 결례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다 가끔씩 아픈 거니까. 단지 그런 것뿐이니까. 나는 이를 악물었고, 성공했다.


외숙모와 이모들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나, 병실 앞에서부터 망설이며 들어갔지만, 내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 외숙모와 이모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셨고, 여전히 수다스러우셨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셨다. 


이제는 영감이 되어버린 남편의 고통 앞에서,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오라버니의 병마 앞에서, 외숙모와 이모들의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지고 말았을 거라는 것을 나는 선명하게 알고 있다. 


애써 담담한 그녀들 앞에서, 삶의 굴곡을 굽이굽이 헤쳐온 고운 여인들의 앞에서, 나는 가슴으로 울었다. 그리고 생의 비밀을 사사받는 듯했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로병사. 기적은 보지 못했는데, 그 기척이 오나보다. 아니다. 기적을 보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외삼촌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 언제 그랬냐는 듯 온 가족을 호령하시리라 믿어본다. 호령이 심해지시면, 나는 출가외인 핑계로 자리를 슬슬 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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