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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Sep 20. 2020

명절, 만나야 행복한 건 아닙니다

각자가 행복한 길을 찾고 싶습니다

인간 관계에 정해진 규칙이나 모양이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사람이 다르니 관계의 형태 역시 다채로운 것이 당연할 테다. 만남의 횟수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서로를 위하는 진심만 있다면 족하다. 내겐 가족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십 년 전 일이다. 나는 한 남자와 1년째 연애를 하고 있었다. 이따금 서로의 집에 왕래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남자 친구가 해외 현장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몇 년이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지만 우리는 씩씩하게 장거리 연애를 지속하게 되었다.


때마침 명절이 찾아왔고, 나는 남자 친구의 집으로 작은 선물을 보냈다. 주위에서는 괜히 일찍부터 그런 것까지 챙길 필요가 없다는 조언도 해주었지만, 나는 그저 즐거운 명절이 되셨으면 한다는 단순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어떤 파국이 닥칠 지도 모르고. 


택배가 배송된 뒤, 나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따로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택배 송장을 보고 연락하셨다 했다. 잘 받았다, 고맙다고 인사하시기에 나 역시 감사히 받아들였다. 그 후 뜻밖에 이어진 것은 어머니의 신세 한탄이었다. 사는 게 힘들다는 것과 결혼한 딸의 내밀한 속사정 같은 것들.


고백하자면,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나를 믿고 말씀해주신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하는 의아함.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은 쉬이 끝나지 않았고 나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폭탄과도 같은 말씀을 던지시기 전까지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너 결혼한 뒤에 애들 핑계로 네 엄마랑 같이 살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꼴은 못 본다. 니 엄마, 새끼들 버리고 갔다며? 세상 천지에 그런 여자가 어디 있냐. 아무리 힘들어도 제 자식 버리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거야. 연을 끊어도 시원찮을 판에 그런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건 말도 안 되지.”


구구절절 옳지 못하지만, 팩트 자체가 틀렸다. 나의 부모님은 내 나이 스물 하나에 이혼 하셨을 뿐 누가 누구를 버리진 않았다. 한동안 내가 아버지와 살았다는 사실로 오해를 하신 듯 했다. 나는 분명 아니라고 말씀 드렸지만, 어머니는 완강했다. 내 말을 가차없이 막고 ‘여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씀만 녹음기처럼 반복하셨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좌절되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반론을 펼치지도 못한 채 어영부영 전화를 끊은 뒤에는 분노가 찾아왔고, 타인이 내 엄마를 모독하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자책감이 몰려 왔다. 남자친구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고, 나는 울분을 토했다. 


나와 통화한 뒤, 남자 친구는 곧장 어머니께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아들로부터 좋지 않은 말을 들은 어머니는 바로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당황한 나머지 스마트폰의 전원을 껐다. 밤새도록 자책과 분노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새벽녘에 핸드폰을 켜자 십여 개의 음성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모두 어머니였다. 


쌍시옷이 남발되고, 동물이 거론되는 상스러운 욕설들. 살아오는 내내 딱히 고운 길만 걸어 오진 않았지만, 그 전에도, 후에도 그런 욕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했던 내 연애의 장르는 순식간에 막장 드라마가 되었다.


어머니는 바로 다음 날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고 내가 받지 않자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쉴새 없이 전화한다는 사실 자체에 이미 질려 버렸고,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남자친구에게는 이별을 통보했고, 한동안 넋이 나간 상태로 지냈다. 



나와 내 연인은 한동안 헤어져 있었지만 다시 만났고, 부부가 되었다.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해 이별한다는 것은 일종의 연좌제라고 생각했다. 내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판단되고 싶지 않듯이, 그 역시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랑에 눈 멀어 찾아낸 핑계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도 콩깍지는 벗겨지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때마다 시댁을 찾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렇게 하면 없었던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게 또 한 번의 일격을 날리셨다. 


남편과 다른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내게 말씀하셨다. 욕설을 한 건 미안하지만, 네 친정 엄마는 죄를 지은 거라고. 그건 명백한 사실이라고.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다시금 제지 당했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으신다는 것, 이전의 사과가 알맹이 없이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긴 노력 끝에, 지금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이해한다. 어머니의 삶 역시 굽이굽이 질곡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상상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당신의 공을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직 자식만을 바라보고 희생해 왔고 그것이 어머니가 아는 '여자의 일생'일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가슴 깊이 연민한다. 어머니로서는 최선을 다해 왔을 것이며 그것은 인정 받아 마땅한 삶이 분명하다. 동시에 나는, 어머니의 행동을 지지할 수 없다. 내 친정 엄마 역시 뼈를 깎는 아픔으로 최선을 다해왔다. 손가락질이라니, 가당치 않다. 더욱이 자식된 자 앞에서 그 부모의 험담을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왜 번번이 아무말도 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신 것에 내 잘못이 있진 않을까, 끝없는 자책을 하고 또 했다. 하지만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 남이든, 나든, 잘못을 복기하는 것에 지쳤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무슨 말씀을 하실까 두렵고, 공포가 가득한 상황을 이제 벗어나고 싶다. 왜 우리는 만나서 불행해야 하는가. 


여지 없이 또 명절이 다가온다. 긴 고민 끝에 나는 시댁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무 일도 없던 척 하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내 노력은 매번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까. 더이상 마음과 다른 연기를 하며 내가 아닌 존재가 되어 드릴 수는 없다. 혼자 간 남편은 많은 질문과 힐난을 들을 테지만, 그건 이제 그의 몫이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온 영혼을 다해서, 나는 어머니가 무탈하시기를, 건강하게 장수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꼬박꼬박 찾아 뵙지 않는 것에 대한 자기 위안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진심으로 그리하고 있다. 어머니께서도 나의 행복을 바라고 계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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