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여자의 빨간 일기장
가방 하나를 가지고 있다.
꽤 오랫동안 들고 다녔다.
빨간색의 헝겊으로 된
헐렁한 이 가방은 모양이 일정치 않다.
둘둘 말으면 겨드랑이에 쑥 끼우고
걸어 다닐 수도 있고
35*15 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
바닥면의 각을 잘 세워서
통통거려 곧추 세우면
꽤 많은 짐도 넣는다.
도서관에 가서는 책을 가득 담고
시장에 가서는 양파와 감자, 오이 따위
눌러 담아도 좋을 식량들을 양껏 담는다.
자전거 타고 강바람 쐬러 갈 때는
수건과 물병 , 장갑 따위를 담는다.
주머니가 많다.
가끔은 주머니에
버리지 못한 쓰레기들도 담는다.
아침밥 먹으면서
남편과 투닥거린 불평도 담는다.
학교 가는 딸 옷매무새
트집 잡은 잔소리도 담는다.
달달한 노랫말 꼬리따라 흐르는
느닷없는 눈물도 담는다.
아무도 없는 방 한구석으로 쏟아지는
한없는 나른함도 담는다.
나에겐 빨간 가방 하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