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여자의 빨간 일기장
의자가 하나 있다.
조금 작다.
빨간 에나멜 칠 벗겨진 모서리 애연한 맘 뭉클이다.
엉덩이 딱딱하게 받쳐 줄 얇은 합판 퍼슬퍼슬 일어난 가시
바지 뚫고 복숭아빛 살갗에 남몰래 올라 탈것 같다.
짧은 다리 하나 덜꺽거리는 모양새 심히 불안하다.
빨간 의자가 하나 있다.
의자에 앉고 싶다.
걸어서 십오 분 걸리는 동네슈퍼에 콩나물 사러 가면서 의자에 앉고 싶다.
비 오는 오후 우산 찾는 막내 학교 쫓아가다 의자에 앉고 싶다.
오늘 아침 방 두 칸 작은 아파트 마루 닦다 의자에 앉고 싶다
내 집에는 빨간 의자가 하나 있다
그 의자에 앉았다.
노랑 얼룩무늬 고양이 녀석 좋아한다.
햇빛에 시달려 말라 시들어진 벤자민이 좋아한다.
덜덜거리는 세탁기 속 구겨진 빨래가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빨간 의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