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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a Jul 06. 2020

하얀 짬뽕







우리 동네 단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유난히 허리가 굽으셔 유모차 없이는 걷지 못하시는 할머니와  사이좋게 오셔서 탕파소를 시켜 드시던 할아버지께서
수척해지신 얼굴로 보행기에 여윈몸을 의지하고 오셨습니다.

"병원에서 오는 길인데 기어코 짬뽕을 먹어야겠다잖아.  캔에 들은 죽을 점심으로 먹어야 해서 갖고 갔는데.."
할머니께서 역정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 안 맵게  해줄 수 있어?"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사람을 위한  그릇을 볶습니다.
나가사끼 짬뽕이 유행할 때도 한 번도 볶지 않았던 하얀 짬뽕을 볶았습니다.

"고마워.. 고마워"
 드시고 나갈 때까지 연신 고맙다 하십니다.
"많이 먹었어.. 사장님~  감사해요~"

5 이곳에 자리 잡은 지  5년입니다.

울동네 어르신들이 매일 달라집니다
매일 아침 가게 앞을 지나  운동 가시는 할아버지도 꼿꼿했던 허리가 5년의 시간을 견디니 점점 언덕이 되어갑니다.
매일 동네슈퍼에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 사러 다니시던  아랫집 할아버지도 
5년의 시간 속에서 지팡이와 식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내 집 앞을 소리 없이 지나가는걸
 같은 모습으로 
커다란 유리창 너머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산다는 건 물 흐르는 것처럼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고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흐르는  고이지 않게  막지 않고
흐르면서 만나는 생명들 함께 호흡하고..
그렇게 흘러 흘러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도 가게 앞으로  소리 없이 지나가는
세월이 보입니다.




2015.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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