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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3) 최근 내가 바라본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나 하늘

[작가와 공동집필] 고마운 일상 C.환경 및 상황_ 질문 13.

by 쏘스윗

A) 오늘.


와, 질문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나의 오늘의 하루를 위한 질문이

어쩜 이리 절묘히 오늘에 있나 싶게.


왜냐하면 오늘 하루 종일 바라본 하늘이

정말 눈물 나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라고 쓰고 바로 잠들었다.ㅎ>


그러니까 지금은, ‘어제’가 되었다.

어제의 하루는 참 길었고, 많은 감정이 오갔다.


3주 만에 힘내서 아빠에게 지난번 약속을 지키러 가는 하늘이었고. (그 사이 나의 검사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몸과 마음이 쉽사리 회복이 되지 않았으므로 )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이었지만,

쨍한 해가 미세먼지를 뚫고 환하게 빛나는 하늘은,

오랜만에 조잘조잘 노래하며 달려가는 나를 향해 따스하게 다가왔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들어

선명하게 나뭇가지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는 가로수길.

잎이 없어도 괜찮다는 듯 멋진 모습을 뽐내며,

뾰족하게 솟은 무리들이 줄지어 나를 반겼다.


잘못 든 길마저도,

고등학교 시절에 타고 다니던 버스를 뒤따라가며,

오후 일정으로 만나게 될 친구와의 추억을 되짚었고,

그 길을 이제야 내 차로 운전해서 지나가보는 것이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친구의 집(이사를 가기 전)에서 어무니의 따스한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늦었음에도 여유로웠던 우리가 앉아 놀던 버스정류장을 지났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를 뵈러 가는 날이면 늘 자고 왔던 친구의 집도 지났다.(친구가 이사를 간 곳도 우리 아빠 집 근처인 덕에, 뚜벅이로 왕복 4시간의 버스여행을 당일로는 다녀오기 힘들었기에, 친구가 시집을 가기 직전인 재작년 까지도 늘 친구를 볼 겸 자고 왔다.)

언제 이리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와 있다니. (다쳐서 친정엄마에게 애기 맡기고 요양 중인 친구)


뿌연 미세먼지 하늘 속의 어슴푸레한 추억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도착한 곳에서 나를 반기는 건,

한껏 웃으며 나의 깜짝 방문을 좋아하는 아빠였지만

역시나 또 행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좋지 않은 아빠의 건강상태도 함께했다.

( 왜 우리는 서로 말하지 못하는 건지..

참.. 이해가 되면서도 그저 슬픈 현실이다. )


언제나 “괜찮어.” “똑같지 뭐.” 했던 말들은

그냥 걱정할 서로를 위한 배려였을까.


아빠의 배려를, 나 또한 좋지 못한 결과를 말할 수 없는 마음이므로 이해하며 나를 다독였다.


치료처치가 조금 더 이뤄지고 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라서

기다리는 동안 잠시 나는 마음을 다독이고자

홀로 근처 상당산성으로 향했다.

나의 기분을 달달이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애 와플집이 이곳에 있기에)


오 마이갓, 그런데 사라진 것이 아닌가.

지난겨울 새로 크게 생긴 대형 카페로 인해

장사가 되지 않았는지 문을 닫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20년 내 단골 와플집이 사라졌다.

(이식 후에도 기분이 꿀꿀할 땐 여기 와플이 먹고 싶어 달려가곤 했는데 말이다.)


기분을 리프레시하는 데에 실패했지만

아빠 앞에서 웃지 않으면 되돌아가는 길에

또다시 후회할 것임이 분명했기에 어떻게든 감정을 토닥이기 위해

나는 또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달렸다.


먼저 내려온 아빠의 활동 보조 선생님과 이런저런 상황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나마 정말 친구 같은 선생님 덕분에 아빠가 선생님께는 숨김없이 편하게 다 이야기를 하고 의지를 하신다. 또한 선생님도 그냥 업무로서가 아닌 애정을 가지고 잔소리도 하며 진심으로 케어해 주시는 것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 이런 분이 우리 곁에, 아빠 곁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했다. 아무도 모르는, 가족도 모르는 나의 상황을 선생님께 전하며, 감사함을 전했다. 염치없게도 나의 건강을 잘 다스려 최대한 자주 오겠노라고, 그러지 못하는 상태인 나날은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잘 부탁드린다는 먹먹한 말을 전했다. 선생님은 그런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묵묵히 손을 잡아 주시며 담담히 위로해 주며 토닥여주셨다.


아빠가 내려오고 함께 약속한 장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오늘도 계속해서 까먹으셨다. “몰라.”를 반복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웃기며 또다시 달렸다. 그래도 선생님과 나의 잔소리에 손사래를 치는 아빠는 나의 장난에 웃으며 기분이 풀리시는 듯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엄마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갔던 식당이었다.

3주 전 아빠와 함께 엄마에게 다녀오는 길에 지나치며

아빠와 내가 좋아하는 ‘찜질방’이 생긴 것을 보고 가보자고 약속한 곳이었다.

아빠의 다리 상태 때문에 찜질방을 가지는 못했지만

엄마와 함께 먹었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라본 풍경은,

그 뿌연 햇살 속에 더 깊은 추억들을 모랫바람처럼 떠올렸다.


엄마와 함께 보던 옹기들, 아기자기한 소품들 (어린 날 우리 집에 있던 소품들과 참 비슷했다. 하회탈, 해적선피규어들, 등등), 엄마와 함께 먹었던 그 맛.


엄마와 앉아서 먹던 좌식 자리에 들어가

홀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하다가 문득 내다본 아빠의 뒷모습,

그리고 마주 앉은 아빠의 친구가 되어주신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스해졌다. 먹먹하게 텅 비어 가는 가슴이 평온함으로 채워지며 안심이 되었다.


주인아저씨가 느긋한 덕에 한참을 기다려 먹을 수 있었는데,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아빠가 참느라 뾰로통 해 졌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맛에 맞는 게장을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그때부터는 마음에 햇살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식당을 나가니 미세먼지가 걷히고 조금씩 파아란 하늘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주 연한 파스텔 톤의 코발트블루 색이었다. 바다 색과 같은.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 아빠에게 말했다.

다음엔 어디 갈까 벚꽃을 보러 가자.

그다음엔 푸른 바다도 보고 싶다.

그렇게 미래의 추억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매일 캘리그라피를 쓰고 있는데,

오늘의 글귀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다. 노력하면 실제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더라고.

아빠가 나와 함께할 미래를 꿈꾸며, 그날이 꼭 올 수 있도록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게 하루를 잘 보냈으면 좋겠다고. 아빠에게, 내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아빠를 모셔다 드리고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올라가려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친구의 아버지는 20년 전과 같은 인자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사랑스러우신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발랄한 친구는 더 마찬가지였다. ㅎㅎ 그냥 아기만 더 있었다. ( 엄마라기보다 언니 같은 모습으로.. ㅎㅎ)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전처럼 수다를 떨었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이사이 아기가 보채는 것을 달래는 모녀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울컥했다. 가장 아이 같던 친구가 엄마가 되어있는 모습이, 그런 친구의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포근하고 사랑스러우시며 그렇게 든든한 모습이, 또 친구는 친구의 엄마에게 투닥거리며 잔소리를 하다가도 미안한지 애써 말을 바꿔 설명하는 모습이.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밥 먹여 보내려는 어무니, 그러나 이후 일정이 있는 식구들을 위해 편히 준비하시라고 마음만 감사히 받고 일어났다. 어무니는 끝내 반찬을 가득 싸주셨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던 시절에도 냄새가 나진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그렇게 한가득 싸주셨던 것이 떠올랐다. 여전한 그 마음에 참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또 다른 친구에게도 챙겨 온 빵을 전해주고 가려고 다른 경로로 가고 있었다. 잠깐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멈추느라 길을 잘못 들었는데, 그 바람에 마침 어린 시절 엄마와 살던 동네를 지나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다가 문득 저 멀리 예전 집 앞의 동산에 새하얗게 핀 목련나무가 보였다. 나는 곧바로 차선을 바꿨다. 예전 집 앞에 차를 대고 집 앞동산 산책길로 올라갔다.


엄마와 봄이 되면 쑥을 캐어 쑥버무리를 해 먹던 그 동산이었다. 예전과 달리 좋은 맨발 걷기 황톳길이 되어있어 엄마와의 동산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아까 본 그 목련나무는 그때와 같았다. 다시 그 목련 나무를 향해 갔다. 건널목 방향에서 바라본 목련 나무. 그 뒤에 우리 집이 보였다. 당장에라도 엄마가 베란다에서 나와 손을 흔들 것만 같았다. 새하얗고 큰 목련을 보며 엄마는 목련이 좋다고 했었다. 나는 “꽃이 너무 커~ 하얗기만 하고~” 했던 음성이 귓가에 흘렀다. 엄마는 말했었다. “그러니까 좋지. 엄만 하얀 게 좋아. 그래서 네가 새하얗게 태어났을 때 참 행복했지. 그 하얀 햇살 같은 네가 그렇게 예뻤어.”

여전히 푸른 하늘빛 하늘에 하얀 목련이,

우리 집의 청록빛 창문에서 엄마가

그렇게 여전히 나의 귓가에서, 나의 눈가에서, 나의 마음에서 외쳤다.


추억에 젖어 목련 꽃잎을 들고 엄마와 예전에 하던 것처럼 목련 풍선을 불었다.

한숨이 담긴 숨이라 좀 셌는지 목련 풍선이 ‘폭’ 하고 터졌다.

추억에 빠진 나를 깨우며 기다리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족발이 좋아? 닭강정이 좋아?” 하며. ㅎㅎ


엄마와의 추억을 뒤로하고 서둘러 친구의 퇴근시간에 늦지 않게 달려갔다.

응원의 마음으로 챙겨 온 빵이었는데, 닭강정으로 되돌려 받았다.

퇴근 후 신랑이 또 약속이 있어 얼른 애기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는

친구에게 빵만 주고 가려고 했다고, 근데 신랑은 왜 또 약속이냐고 그랬더니 친구가 말한다.

“그러게 말이다. 남편은 없어도 되는 거 같아 진짜.”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한껏 둘이 웃다가, 친구가 덧붙인다.

“근데 애는 있어야 하는 거 같아 ㅎㅎ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이건 느껴야 돼 너도 얼른 좀 아기 가질 수 있게 해 봐. 아까운 우리 쏘.”

이도저도 아닌 마음으로 살아가는 내가 걱정스러워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얘기에 문득 오늘의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치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방금까지 미친 듯이 둘이 웃다가 쏟아지는 눈물에 우린 둘 다 당황했다.

다시 미친 듯이 웃었다. 울며 웃었다.

당황했을 친구에게 나는 오늘 이러저러했다고 설명했다.


친구를 달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노을 진 하늘은 정말 눈부시게 예뻤다.

은은한 노을, 회오리 같은 구름.

눈물이 맺힌 채 먹는 닭강정.

(냄새가 도저히 안 먹고는 못 배기는 냄새였다. 맛은 정말 끝내줬다.)

나는 또 울음을 멈추고 웃으며 노래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처음으로 매일 쓰던 ‘마음풍경’의 글귀에 절반은 동의하지 못했다.

‘과거를 품고 살면 삶이 힘들고 괴롭다’고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는 큰 힘이 있다.

과거의 행복한 기억은 현재를 소중하게 만든다.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살리기 위해 존재했으니.

그래서 나는 미래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낼 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미래가 어떠할 지놀라도, 그저 그 미래는 모두 지난 나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어느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으려 한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행복한 순간을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늘 질문에 정답이 ‘오늘’인 이유이다.

나는 언제나 오늘의 하늘이 나름의 이유로 눈부시다.

그렇게 그날의 소중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면

그날의 나는 어느 날과 비교하지 않고 그 자체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런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삶은 눈부신 날들로 가득 차지 않을까.

그렇게 살아간다면, 내가 짧은 시간을 살더라도

나의 삶은 찬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를 충실히 사랑하는 것,

그것이 미래에 나의 희망을 실재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오늘의 하늘을 바라보고

어제와는 다른 미묘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라.


행복은 그 속에 있다. (내 오늘의 행복)


오늘의 마음풍경을 담은 하늘.
엄마와의 추억과 아빠와의 오늘그리고 미래의 약속과 함께한 하늘
친구의 달라진 하나. 우리 나은이 <이건 하늘 아니지만 힝귀욤>
여전한, 하아얀 아름다움을 간직한 하늘.
나를 다시 웃게만든 닭강정 그리고 파아란 하늘, 그리고 노을(영상)

ps. 영상 화질이 좋지 않아 아쉽다.

정말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이었는데 말이다.


어제의 닭강정을 싹싹 비우며 글을 썼다. 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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