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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an 24. 2021

마흔, 나는 두 번째 꿈을 꾼다

마흔, 두 번째 꿈을 꿔야 할 때



전국 5명 선발, 한 번의 꿈을 이루다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아이였다.

그렇게 풍족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어려운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큰 딸인 나에게만큼은 먹는 것,

입는 것, 공부하는 것에 있어서 부족함 없이 누릴 수 있게 해 주셨다.


1년에 전국 5명(여) 선발하는 공무원 공개 경채 시험에 응시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IMF로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이 흔들렸고 그 여파로 아버지의 사업도 바닥을 내리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 조건 없이 딸에 대한 지원을 보장해주셨던 아버지였기에, 철없는 20대의 풋내기 대학생이었던 나는 오로지 부푼 꿈만을 간직한 채로 짐을 싸들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그렇게 의기양양 시작된 수험생활은 생각보다 치열했고,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 회사는 남자들이 전체 직원의 90%를 차지하고 여직원은 10% 남짓으로 구성돼 있는 특정직 공무원 조직으로, 일반 공무원의 직급체계와는 조금 다르게 11개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응시하는 9급 공개 경채 시험에 합격하면 11개 계급 중 가장 아랫 단계인 1단계 계급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응시한 시험에 합격하면 4단계 높은 계급으로 임용이 되어 조직의 중간관리자로 시작한다. 선발인원도 1년에 딱 한번, 남자는 45명, 여자는 5명뿐이었고 경쟁률도 치열했다.


대학입시에 한번 실망했던 터라, 한 번뿐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아보자 결심하고 도전하기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시험이었다. 좀 더 거창하게 덧붙이자면 이 시험을 통해 '인생역전'이라는 로또와 같은 기대마저 품을 수 있었던 도전이었다.


신림동 고시촌 생활이 익숙해져 갈 때쯤 친구들은 하나둘씩 취직을 하고, 결혼도 했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던 대학 동기들도 9급 공개 경채 시험으로 눈을 돌려 나보다 먼저 조직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후줄근한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 신림역이라도 나갔다 오면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신림동에서 처음으로 혼밥을 경험했고, 혼자서 비디오방도 가봤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일은 예사였다. 시험 막바지에는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밥 먹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을 안배했고 거의 폐인 수준으로 자취방과 독서실만 오가며 하루하루 버텨갔다.


시험 일주일 전 알 수 없는 원인의 극심한 체력 저하로 의자에 앉아 있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 병원 침대에서 링거를 맞으며 주관식을 달달 외웠었고, 위장 소화기관이 약하게 태어나 원래 소화도 잘 안됐지만 연속된 긴장감 속에 있어서 그랬는지 자주 체했다.


한 번은 독서실에서 갑자기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오한이 느껴지면서 위아래로 줄줄 쏟기 시작했다. 힘겹게 가까운 약국에 가서 처방을 기다리는 동안 손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급체였다. 약사분이 급하게 손을 따주셨고, 나아지지 않으면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한해, 두해, 만 4년을 꽉 채웠을 무렵 파란만장했던 나의 고시촌 생활도 끝이 보이는 듯했다. 2008년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필기시험은 최종 합격자의 1.5배인 8명을 선발했고, 2차 체력, 3차 적성검사, 4차 면접을 거쳐 최종 5명을 선발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해 최종합격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최종 합격에 탈락하게 되면 1차 필기 합격 이력이 있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객관식 5과목에 주관식 2과목, 총 7과목을 하루 동안  치르는 시험이라 어떠한 유예도 가점도 혜택도 전혀 없었다.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와는 달랐다. 그냥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처음 며칠은 잠만 잤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는 게 그렇게 두렵고, 처절하게 외로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최종 합격 후 지급될 제복을 맞추기 위해 필기 합격자들 대상으로 신체 사이즈를 측정했었다. 체촌 도우 미분이 줄자로 내 머리, 허리, 가슴 사이즈를 쟀던 그 손끝이 감촉은 나를 전율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 나의 가슴은 얼마나 뛰었던가, 제복 입은 나의 모습을 얼마나 상상했던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다시 1년의 수험생활을 보냈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최종 합격이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엄마는 한참 동안 바닥에 엎드려 일어나질 않으셨다. 흐느끼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잠시 후 대성통곡으로 바뀌었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가 난 이후라서 채권자들을 피해 집에 들어오지 않으신지 꽤 오래 지났었고 집으로 찾아오는 채권자들을 엄마 혼자 감당하고 계시던 때였다.


매일매일 가슴 졸이며 채권자들을 상대하고 집에 오지 못하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혼자 보냈을 그 시간들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엄마는 그 모든 것에 대한 한을 쏟아내듯 많이 우셨고, 기뻐하셨다.


나의 모교인 대학교 교정과 시골집 입구에 플래카드가 걸렸다. 엄마 손을 꼭 잡고 마을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를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럽고, 가슴 저리게 눈물이 핑 돈다.


그렇게 나는 한 번의 꿈을 이뤘고,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황금마차에 올라탔다.






계급장이란 족쇄, 그리고 멈춰버린 나의 10년






합격의 영광과 그 후광은 참 달콤했다.


1년의 교육기간을 거쳐 2010년 정규임용이 된 후 꿈에 그리던 직장으로 출근을 하면서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나에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내 어깨 위의 계급장은 충분히 빛났다. 계급사회인 우리 조직에서 동료 직원들의 부러움을 샀고, 인정을 받으며 그렇게 나의 황금마차는 계속 달리는 듯했다.


분명히 새로운 시작이었지만, 마치 끝인 것처럼 골인지점의 환호와 영광에 오랫동안 취해있었다.


그러나 나를 빛나게 해 준 합격의 영광은 계급장만 빛나게 했을 뿐이었다. 계급장 안에 갇혀 있던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갔고 꺼져가고 있는 빛을 감지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나이만 먹어가고 있었다.


2017년 승진시험에 합격한 후 또 한 번 계급장이 주는 달콤함을 맛봤다. 그렇게 계급장은 계속해서 나의 성장을 발목 잡는 족쇄가 되어 버렸고, 앞으로 배워야 할 세상으로부터 나를 단절시켰다.


직장생활 10년 동안 승진시험을 위해 다시 꺼내 든 법학서적 말고는 책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이 둘을 낳고 점점 더 망가져가는 내 몸뚱이를 방치했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거나 취미생활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저질체력에 매일 기진맥진, 집안일에 서툰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채 감정 루저로 하루하루 버텨나갈 뿐이었다. 정년이 보장되고, 매달 일정한 급여가 지급되는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틀은 나를 더 안주하게 만들었다.


계급장으로만 빛났던 나의 황금마차는 점점 동화 속에 나오는 호박으로 변해갔고, 인생의 여러 레이스 중 단 한 경기만을 치렀을 뿐인데 마치 모든 경기를 다 치르고 승리한 것처럼 맘껏 취했있었던 그 오만함의 결과는, 불만족과 불만으로 가득 찬 패배자의 삶이었다.


그야말로 딱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2010년 이후 지금까지 나의 성장 시간은 그냥 '멈춤' 상태였다.






이제 진짜 공부를 해야 할 때 : 두 번째 꿈을 찾아서






계획대로라면 40대의 지금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 돼있어야 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내 삶도 특별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특별한 시험에 합격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결혼생활과 육아에 허덕이고, 직장생활, 인간관계에서 보이는 나의 미숙함과 어리숙함 들은 나를 당황시켰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계급장에 가려진 나의 밑천이 드러날까 전전긍긍 하기 일쑤였다.


분명히 나는 죽어라고 공부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나름 성실하게 보냈고, 신림동 고시촌 생활까지 자그마치 20년 넘게 교과서와 수험서에 둘러싸여 그 많은 지식을 내 머릿속에 쑤셔 넣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직업을 갖기 위해 했던 공부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 가고자 할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연한 인간관계는 어떻게 만들어 가는 것인지, 회사에서 리더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가족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쥐구멍에 숨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확행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공부했던 그 어떤 책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분명 어른이었다. 누가 봐도 어른이었다.

40을 불혹이라고 한다. 불혹이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감정조절도 못하고, 서툴고, 미숙한, 온갖 세상 유혹에 흔들리는 불혹의 어른을 진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노도 없고 방향키도 없는 작은 배안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을 풍요롭게 가꿔가기에 나는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


어딘가에 들어가고,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 순수한 지적 호기심의 발동으로, 오로지 나만의 의지로 불태워 내 인생의 꽃과 향기가 되어 줄 그런 공부가 필요한 때이다.


2009년 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 남동생이 물었었다.

 "누나 이제 뭐하고 싶어?" 잠깐 생각한 후 난 망설임 없이 대답했었다. "공부"라고. 지금까지 공부를 했는데 또 공부라고 답한 내가 대단하다며 이해할 수 없다던 동생의 얼굴이 생생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했던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동안 못했던 진짜 공부를 이제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속 빈 쭉정이와 같았던 나의 내면을 단단하고 강하게 채워 줄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 또 다른 지식과 기술을 얻기 위한 공부도 좋다. 인생을 좀 더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한 옛 성인들의 지혜를 배워도 좋다. 감정 루저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 근육을 단련시키는 공부도 좋다.


이제 진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비록 10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흘러 보냈지만 이 흘려버린 10년이 있었기에 새롭게 다짐하고 두 번째 꿈을 키우기로 결심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이니, 너무 자책하지는 말아야겠다.


공부는 인생에서 가장 우아하고 사치스러운 취미라고 한다.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에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진짜 '사치'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나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판단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이 삶에서 어떤 배움을 얻는가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다음 삶을 선택한다.
아무런 배움도 얻지 않는다면 그다음 삶 역시 똑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똑같은 한계, 극복해야 할 똑같은 짐들로 고통받는..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삶의 이유는 없다.

<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_김애리>




공부는 배운다는 것이다. 영어공부, 엑셀, 포토샵 자격 취득만이 공부가 아니다. 배움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서야 한다. 꿈꾸는 엄마는 늙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두 번째 꿈, 엄마의 우아하고 지적인 한방을 준비할 때가 왔다.






독서와 글쓰기는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새벽 기상을 시작한 지 곧 150일이다. 새벽 5시, 핸드폰 알람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독서, 필사, 글쓰기, 운동으로 채워지는 나의 새벽시간은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을 마주하게 했다. 절대적 시간 빈곤자인 워킹맘에게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감으로 시작했는데 150일이 지난 지금 나는 참 많이 달라졌다. 작은 돌파구 수준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습관'에서 '100일만 반복하면 내 삶의 무기가 된다'라고 했다. 처음에는 100일만 버텨보자 시작했는데 지금은 하루 일과 중 가장 즐겁고 설레는 시간이 되어버려 언제까지라는 시간을 정해 둘 필요가 없어졌다. 하루 중 가장 즐겁고 기다려지는 시간을 잠이나 피곤함 따위로 미루거나 포기할 이유는 없다.


앞으로도 새벽 기상은 내 하루의 시작이자 하루의 정점이 될 것이다. 새벽 기상은 이미 나를 성장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돼버렸다.


미라클 모닝. 왜 사람들이 미라클이라는 단어를 새벽 기상에 붙였는지 알 것 같다. 새벽 기상을 시작하고 나의 하루는 26시간이 되었고, 일주일에 2-3권씩 책을 읽어내고 있다. 그동안 시간 없다는 뻔한 핑계로 미뤄 둔 책 읽기가 하루 2시간을 확보하면서 한 달에 10권, 150일 동안 읽어낸 책이 50권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론 아침 2시간 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의 매력에 푹 빠지고 난 후 회사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고, 집에서도 설거지하며,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단 몇 줄이라도 책을 읽고 있다. 1년에 최소 100권, 그리고 빠른 시간 내 1000권 독서라는 야심 찬 목표도 생겼다.


나는 알고 있다. 1000권의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분명히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외적인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매력적인 여자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여자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도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다독으로 다져진 강한 내면은 자연스럽게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여배우들이 성형수술이라는 인공적인 기술로 자신의 타고난 얼굴을 바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다.

어느 날 아침, 드라마에서 한 중년 여배우가 철없는 아내 역을 연기 중이었다. 여배우의 나이는 60대였지만  배우의 얼굴은 미세한  주름 하나 없이 하얀색 파우더로 덮여있었다. 그런데 얼굴 아래 목 부분은 60대의 보통 여성들처럼 탄력도 없고 주름이 많이 져 있어 얼굴과 괴리감이 너무 심했다.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반면, 그 무렵 오랜 공백 기간을 거치고 드라마로 복귀하는 김희애 배우의 인터뷰 장면을 봤다. 화장기 없는 투명한 얼굴에 살짝 패인 눈가 주름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졌다. 온화한 미소와 소녀 같은 말투는 그대로였다. 나는 김희애 배우의 눈가 주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에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주름은 두드러졌으나 배우가 아닌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 살아온 김희애 배우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듯 보여 참 자연스러웠고, 김희애 배우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듯했다.


아침드라마에 나온 그 여배우는 무엇 때문에 본인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걸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살아온 삶에 자신 있고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든 나 자신은 그대로이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판단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내공이 센 사람, 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독서만 한 것이 없다. 책 읽기는 나의 생각과 경험의 틀 안에 갇혀 편협한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한 독서는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참 멋지고 괜찮은 사람임을 떠올리게 한다. 책을 읽는 순간 나의 자존감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유대인들은 독서를 삶의 일부로 여기며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것처럼 일상의 한 풍경이라고 한다. 그 결과 유대인의 9명 가운데 1명은 작가, 저술가이며,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들은 역대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23%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당신의 인생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위대하게 바꿔줄 방법은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 방법을 따르기 바란다.
그러나 인류가 현재까지 발견한 방법 가운데서만 찾는다면
당신은 결코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 워런 버핏-



독서와 함께 꾸준히 해야 할 또 한 가지는 바로 글쓰기다.


유명한 심리상담가 박상미 교수는 어릴 적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고 자살시도까지 했을 정도로 힘든 과거를 겪었는데, 글쓰기를 시작하며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게 되고 그 상처가 치유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또 책과 글쓰기를 통해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김애리 작가는, '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에서 '잔인한 타인과 더 잔혹한 사회에서 받는 강펀치들을 대체 글쓰기라는 의식 없이 어떤 방법으로 치유하는지 궁금하다'며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신기하다고 했다.


이렇듯 글쓰기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거울이 되어주고, 내 상처를 보듬어 치유할 수 있게 해 주며, 내면의 힘을 키워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또한 인간관계에서 진심을 전달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150년 전통을 간직한 하버드 대학교에는 유명한 글쓰기 수업이 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많은 학생들이 가장 도움이 되고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글쓰기 수업을 꼽았고, 하버드생들이 대학에서 글 쓰는 양은 무려 50킬로그램이라고 한다.


자신의 의견을 적당한 어휘로 옮기지 못하는 리더는 없다. 또한 세련된 글쓰기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더욱 확실하고 강하게 남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누구나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멋진 글을 쓰는 여자가 훨씬 매력 있어 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


멋지고 우아하게 나이를 먹어가자. 보이는 것들에 치중하지 말고 내공을 단단히 채워나가자. 독서와 글쓰기는 나의 두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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