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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an 23. 2021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들의 코로나 검사





2020년 12월 겨울,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 오후 우리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숨쉬기, 돌아다니기, 사람 만나기와 같은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 채 흔들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모두 지쳐있었다. 지구 상의 생명체 중 가장 진화했고, 생각하는 두뇌를 가진 가장 똑똑한 동물 인간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좀처럼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폭설, 수해, 화재, 지진, 화산 폭발, 전쟁과 같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항상 운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재앙은 나를 비껴갔다. 그러나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예외였다. 숨을 쉬고, 이동하고, 사람을 만나는 인간의 생존수단 자체를 점차 빼앗가 가면서, 우리의 일상과 몸속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명씩 우리 동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고, 급기야 확진자는 점차 우리 가족의 생활권으로 들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여느 일요일 오후와 다름없이 우리 4 가족은 식탁에 모여 식사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7살인 큰아이는 좀처럼 가만히 앉아서 식사를 끝내는 적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춤을 추고, 질문을 하고, 티브이에 나오는 흔한 남매를 보면서 배꼽을 잡고 뒹구는 누가 봐도 7살인 남자애였다. 두 돌을 갓 넘긴 둘째 밥까지 챙기느라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내 손은 진동이 울리는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큰 애 공부방 선생님이었다. 평소에도 특별한 일 없으면 전화할 일이 없는데 일요일에 전화라니.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다고 하던데 나는 아니길 바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공부방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고, 그 확진자와 우리 큰 애가 공부방에서 수업한 시간이 겹친다는 것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잠시 후 지역 보건소에서도 바로 연락이 왔다. 큰 애가 수동 감시 대상자로 선정이 돼서 지금 바로 검사를 받아야 하고, 확진 자과 마지막 접촉 시부터 14일 동안 증상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애는 일주일에 딱 두 번, 한 시간씩 공부방에 가서 한글을 배우고 있었다. 왜 하필 그 확진자 중학생은 우리 큰애와 시간이 겹친단 말인가, 일하는 엄마를 둔 탓에 별로 내키지 않아 했던 그 공부방을 억지로 가고 있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나는 무슨 배짱으로 아이를 그곳에 보냈단 말인가, 설마 양성은 아니겠지, 아이에게 아무 증상도 없잖아, 나는 항상 운이 좋은 편이었어, 이번에도 행운은 내 편일 거야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고, 주섬주섬 아이 옷을 챙겨 입히는 두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엄마 나 코로나 바이러스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큰 애의 동그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고,

목소리는 불안함으로 가득 차 떨리고 있었다.


" 아니야~~  찬이 공부하는 공부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누나가 있는데, 그 누나랑 찬이가 같은 공간에 있어서 찬이도 괜찮은지 확인만 하는 거야"


" 어떤 누나? 나는 누나들 잘 모르는데.."


다행스럽게도 확진된 중학생과 큰 애는 공부방에서 같은 시간대에 있었지만 다른 교실에서 공부를 했고, 지도했던 선생님도 다르다고 했다.


보건소에서 전화를 받고 한 시간 만에 큰애는 아빠와 동행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선별 진료소에는 큰애의 공부방 선생님도 검사를 받기 위해 와 계셨고, 아빠품에서 잔뜩 움츠려있는 큰애를 보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검사 결과는 24시간 후 문자로 통보된다고 했다.

만약 양성이라면 더 빠른 시간 안에 전화가 올 것이고, 음성이라면 24시간 안에 문자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폰 수신 알림음이 최대한 늦게 울리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코로나 검사는 콧속 깊숙이 바늘 같은 검사체를 집어넣는 방식 때문에 성인도 많이 아파한다고 들었다. 독감주사 맞을 때도 발버둥 치며 안 맞겠다고 난리를 피워 간호사님과 함께 팔다리를 붙자고 접종했었던 아이인데.. 코로나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일 년 내내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티브이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말로, 무언가 무섭고 피할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것 같았다. 큰애는 울면서도 큰 저항 없이 검사에 임했고, 검사 후 많이 아파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엄마로서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왜 하필 이제 7살인 우리 아이인가. 우리 가족이 감당해야 할 시련을 이 작은 아이가 대표로 받는 것 같아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우리 부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검사 후 몇 시간이 지나자 진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7살 아들이 초성 놀이를 하자고 했다. 초성 놀이는 단어의 첫 자음만 알려주고 그 단어에 대해 간단한 힌트를 준 후 맞추는 게임이다.


처음 아들이 제시 한 초성은 ㄱ ㅇ이었다.


"엄마, 이건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거야 "


7살이 되자 친구들과 동네 형아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이것을 접하게 되었고, 완전 푹 빠져서 벌써부터 이걸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문제를 내자마자 단번에 답을 알 수 있었다. 정답은 바로 게임이었다.


두 번째로 제시 한 초성은 ㄱㅈ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설명은 " 이건 엄마가 좋아하는 거야 "라고 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큰애는 엄마와 체질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비슷해 7살짜리가 해산물을 그렇게 좋아한다. 운동신경이 발달한 것도 꼭 닮았다. 책? 운동? 음식?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과자? 나는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뭐지? 결국 나는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 아들~ 엄마 정답이 뭔지 정말 모르겠는데?"

" 에이~ 바로 알려주기 아까운데~~~ "

" 진짜 모르겠어 알려줘 봐 아들 "



정답은 가족이야 가족. 엄마가 좋아하는 거



마음속 깊은 곳으로 찐한 무언가가 흘러 들어왔다.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이었을까? 울컥했다. 못 맞춘 엄마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일하는 엄마를 둔 탓에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툭하면 아이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한 미숙한 엄마라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그래도 아이의 마음속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자리 잡고 있음이 느껴져 안도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너무 미안했다. 아들이 생각하기에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가족이란 단어를, 정작 엄마는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들이 실망할 까 걱정이 되고, 또 미안했다.


그날 저녁은 많이 피곤했다. 긴장했던 탓일까 뒷정리를 남편에게 맡기고 먼저 침실에 들어와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큰 애가 누워있는 내 위로 올라와 목을 감으며 껴안았다. 졸리고 피곤한 상태여서 그랬는지 불편했고 귀찮았다. '저리 가~'라고 말하려던 순간, 큰애가 내 귓속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는 내 사랑 건전지야, 이렇게 엄마한테 충전해서 힘내야지




아...........  순간 몸이 굳는 듯하더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말없이 아들을 꼭 안았다. 내 품 안에서 느껴지는 아들의 따뜻한 체온, 엄마를 향한 사랑의 속삭임, 빨갛게 상기된 아들의 얼굴, 작고 보드라운 아들의 손,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음에 한 없이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이 아이의 웃음, 살아 숨 쉬는 이 모습 자체가 기적이거늘, 우리는 왜 몰랐던 것일까.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리는 매 순간 기적과 같은 행복을 경험하고 살았을 것인데...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재방에서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데 문자 알림음이 왔다. 음성이었다.

책장 넘어 창밖에는 대여섯 대의 자동차들이 2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듬성듬성 마스크를 낀 채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늘도 맑다. 하얀 구름들이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놓고 떠다니고 있다. 저 하늘이 어제 봤던 그 하늘일까? 항상 저 위에 있었는데, 분명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모습일 텐데 내가 봐주지 않았구나...


'행복은 풀과 같다' 고 하지 않았던가. 행복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것, 거창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발견하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작은 일상이 설렘이 되고, 그 설렘들을 가슴 벅찬 기적으로 만들어보자. 그 가슴 터지는 순간순간이 모여 내 인생이 기적으로 변할 것이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 책은 도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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