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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an 26. 2021

우리에게 '말'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에게 의사소통이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 짓는 중요한 능력이다. 힘 있는 자가 살아남는 세상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비록 힘에서는 약자였을지라도 이 의사소통 능력 때문에 훨씬 높은 수준으로 진화할 수 있었고 지배계층이 될 수 있었다.


의사소통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생존수단인 동시에 사람들이 어울려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의사소통을 지금까지 인간의 언어, 즉 "말"로 이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들 사이에 이 "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말이라는 음성보다 스마트폰이나 이메일의 문자를 이용해 서로에게 연락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직장에서도 업무내용을 보고 받고 공지사항을 전달받을 때 직접 구두로 전달하기보다 카카오톡 단체 문자나 내부 인트라넷 메신저를 통해 전달받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말로 간단히 전달할 수 있는 내용도 문자나 카톡을 이용한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인간의 의사소통 방식은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따라 다양하게 진화했고, 그 양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 당시 사람들은 매달 약 140억 개에 달하는 문자를 보냈는데 이 수치는 10년 뒤인 2010년에는 1880억 개로 폭증했고, 2014년도에는 5610억 개 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2011년 당시 발송된 이메일의 수는 약 1050억 개 정도였지만 2020년이 되면 이 수치가 2460억 개 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말 센스 P174)








우리는 왜 말보다 문자나 이메일을 선호하게 되는 걸까?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편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음성이 전달 가능한 거리까지 이동해야 하지만 문자를 이용하면 지금 당장 있는 자리에서 바로 전달이 가능하다. 또 전화를 통해 구두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 한번 내뱉은 말을 수정할 수 없다는  부담감으로 문자를 이용하는 것보다 긴장감이 더해져 전달자는 에너지를 더 쓸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머릿속에 생각한 내용을 그대로 음성으로 전환해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어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크고 또 정제되지 않은 말이 나갈 수도 있다. 말을 통한 의사소통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리하거나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단어와 문장을 선별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러나 문자는 다르다. 대화의 핵심 내용을 빠트리지 않고 좀 더 세련된 단어를 선택해서 보기 좋게 편집해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보내는 시기와 상대방이 받는 시기도 조절할 수 있다.


특히 그 상대방이 앞뒤 가리지 않는 막무가내 스타일의 거래처 사람이거나 직장상사 또는 불편한 친구라면 더더욱 전화를 피하고 싶어 질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덮쳐버린 지금의 상황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멈춰버린 지금, 말을 통한 대화는 내 건강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무서운 바이러스 전달자가 돼버리고 말았다. 사람과의 만남 자체를 막아버린 이 현상은 일시적일 수도 있으나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로 비대면 소통과 온라인 상의 느슨해진 새로운 인간관계에 익숙해진 우리들을 더욱 전화와 직접 대화라는 아날로그적 의사소통을 더욱 멀리하게 해 버렸다.


그러나 문자나 이메일을 통해서는 상대방의 감정, 표정, 진정성, 공감, 뉘앙스,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인 것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다. 신이 우리에게 5가지 감각을 준 것은 이 감각을 활용해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문자나 이메일을 읽는 데에는 시각의 힘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직접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거나 음성통화를 한다면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의 감각을 더 활용해 상대방의 말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맛있는 저녁 요리를 준비했고 남편이 그 요리를 맛본 후 소감을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냥 문자로 '요리가 너무 맛있다. 당신 최고야'라고 얘기하는 경우와, 서로 마주 앉아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요리 너무 맛있다, 당신 최고야'라고 말해주는 경우를 비교해보면 어떤가?


또한 실수하지 않고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조합해 정확하게 의사 전달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짝사랑한 이성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사랑을 고백하는 그 애절함과 진정성, 어린아이가 친구와 메뚜기를 잡았다며 숨 가쁘게 뛰어와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그 순수함은 문자와 이메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문자와 이메일로 주고받은 일상에 익숙해져 편리함을 선택하는 대가로 우리는 사람 사이의 진정성과 공감 어린 소통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또한 문자나 이메일을 통한 대화는 스마트폰이나 SNS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고립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얼마 전 상담심리학 박상미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에서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나, 경제적인 문제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고립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고, 코로나 상황으로 고립된 사람들의 사회와의 단절은 더 깊어져 우울증과 자살이라는 또 다른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소통과 공감은 인간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마음의 양식과 같다. 진정한 소통은 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단순히 듣고 이해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라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고 느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연 문자와 이메일과 같은 비대면 소통으로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우리의 인간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폭넓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 사이 진정한 소통능력은 더욱 퇴화하고 있는 듯하다. 느슨하지만 넓게 연결된 sns 상의 인간관계와 소통방식은 느슨한 연결만큼이나 끊어지기도 쉽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와 너,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진정으로 소통했던 방식을 잊어버리지 말자.


힘내라, 괜찮다며 꼭 안아주는 포옹,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진심으로 슬픔을 나눠주는 눈빛, 잘했다, 고생했다며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는 격려의 말들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글자보다 몇십 배의 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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