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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Mar 06. 2021

혼자였기에 알게 된 것들

엄마의 쉼표, 혼자 떠난 제주 여행




난생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다.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하기 힘들었다. 드라마나 예능에서 그럴듯하게 포장되지 않는 한 현실 속 혼자인 사람들은 뭔가 있어 보이거나 멋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저렇게 혼자 여행하고 혼자 카페에 가고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어떠한 이유로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일방적인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봤었다.


10대 때의 여행은,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가서 친구들과 잠도 같이 자며 놀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렘이 벅차다. 결혼 전 20-30대는 가장 자유롭게 여행을 계획할 수 있는 시기로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 어디를 갈 것인지에 따라 여행의 목적도, 준비과정도 달라지면서 여행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시기이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생기면 여행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태교여행, 아이 동반 여행을 검색하고, 장소도 매우 제한적이다. 유모차를 끌고 다닐 수 있는지, 아기침대, 젖병소독기 등 육아 편의용품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고 장거리 이동은 가급적 피하게 된다. 건물 안에 먹거리, 놀거리 등 시설을 갖추고 있는 리조트나 키즈 펜션을 숙소로 정한다. 여행은 그동안 지쳤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refresh'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여행인지, 극기훈련을 온 것은 아닌지 여행기간 내내 '다시는 오지 않으리' 후회를 달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결혼 7년 차,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결심과 준비는 신속했고, 재고의 여지도 없었다.

생애 첫 혼자 여행이었지만 두렵지도 않았다. 마흔을 갓 넘은 아줌마는 치안강국인 우리나라가 매우 안전한 나라임을 이미 알고 있고,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소가 어딘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기저귀와 물티슈가 없는 백팩만 메고, 손과 발 자유롭게, 인간의 자유 의지대로 어디든 걷고, 뛰고, 멈출 수 있는 그런 여행. 얼마만인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7살이었던 아들은 대성통곡했다. 남동생과 얘기하는 것을 듣고 가족 모두 제주여행을 가는 줄 알고 있었던 큰애는 "엄마는 왜 엄마만 생각해~~ 우리도 좀 생각해!!" 라며 울부짖었다. 헉..... 엄마의 가슴을 후벼 팠다.

"아들, 엄마가 혼자 가서 미안하니까 아들 좋아하는 장난감 하나 사줄게 알았지?"

" 그럼 그. 러. 든. 가." 폭풍 같은 눈물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친정엄마는 의심하기 시작하셨다.

"너 박서방이랑 무슨 일 있니? 솔직히 얘기해라"

"아니야 일은 무슨 일~ 혼자 시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 너무 좋아"

"가족이 있는 애가 왜 혼자 가는 거야? 솔직히 얘기 안 하면 내가 지금 박서방한테 전화한다!!"

친정엄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딸의 말을 참 오랫동안 믿지 않으셨다.


친구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가족중심형 친구들은 "혼자? 아.. 나는 혼자는 못 갈 것 같아. 가족들이랑 같이 가야지, 혼자는 못가..."

독립형 친구들은 " 이야 역시 너다. 잘 생각했다. 응원한다 친구야"

직장동료 워킹맘들은 "이야~ 대박!! 와~~ 진짜 부럽다. 대박~ 너무 좋겠다!! "

15년 차 경찰 친구는 "이게 미칬나~ 야 절대 가지 마라? 세상 무서운 줄 모르나? 니 절대 가지 마라잉?"


아들친구 엄마로 만나 언니, 동생 하며 허물없이 지내던 동생의 한마디는 엄마의 혼자 여행이 깜찍한 일탈임을 한마디로 증명해줬다. "양아치... 3박 4일이나 가다니.... 같이 가면 안되나?"

애 딸린, 그것도 미취학 아이 둘의 엄마가 3박 4일이나 혼자서 여행을 가는 것은 누가 보면 '양아치'스러울 수도 있지만 엄마라면 한번쯤 꿈꾸는 로망 같은 것일 수도.


시댁 시구들은....

알리지 않았다... ㅜ.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 부러움과 응원을 안고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3박 4일, 나에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후회 없이 불태우리


여행의 목표는 많은 곳을 다니지 않고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카페에서 책 보고 커피 마시며 여유와 사색을 즐기는 것이었다. 되도록 시계도 보지 않으려 마음먹었다. 시계를 보고 있으면 매시간마다 해야 할 일의 리스트가 쓰여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의 시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해치워야 했다. 소파에 앉아 쉬다가도 시계를 보면 앞으로 해야 할 집안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리.


제주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경, 캐리어를 끌고 어두컴컴한 제주의 땅을 밟는 순간, 갑자기 집에 있는 아이들과 남편이 생각나면서 울컥해졌다. 내가 지금 가야 하는 곳은 항상 돌아가던 집이 아니라 생전 처음 가보는 낯선 장소라고 생각하니 한없이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참, 사람은 간사하다더니 순간순간 달라지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이 얄팍한 감정선이라니, 울컥하다 웃음이 났다.






3박 4일의 일정 동안 모두 다른 지역의 숙소를 예약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바다 뷰를 간직한 감성 숙소.

여행하는 동안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자연이 주는 감성에 잔뜩 취하고 싶었다. 밤 10시쯤 도착한 숙소는 바닷가 바로 옆에 자리 잡은 곳이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짐을 풀고 낼 아침 기상과 동시에 내 눈과 창문을 가득 채울 제주바다의 모습을 상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첫날 숙소 '썸타임즈 제주'




찰싹, 찰싹, 귓가에 맴도는 파도소리에 잠이 깼다. 설레는 마음으로 창문 커튼을 열어젖힌 순간, 어스름한 빛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제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평선까지 뻗어있는 새벽녘 가을 바다는 벽 한쪽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창문에 가득 찼다. 바닷가 바로 옆에 침대가 있고 그곳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파도가 세다면 침대까지 바닷물이 넘어올 것 같았다. 고요하고 평온했다. 쏴~ 쏴~ 바닷소리뿐이다. 나를 위해 준비된 이 아름다운 감성 속에서 안락한 침대와 보드라운 이불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완성시켜 줄 나의 여행 동반자, 책을 꺼냈다. 허지웅 작가님의 '살고 싶다는 농담'이었다. 제주 여행에서 읽으려고 아껴두고 아껴둔 책, '살고 싶다는 농담'은 제주여행 첫날 나의 새벽시간을 환상적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렌터카에는 캐리어 하나 백팩 하나, 그리고 김동률, 악동뮤지션, 로이킴의 명곡들 뿐이었다. 김동률의 노래는 첫 소절부터 전율이다. 악동뮤지션은 앳되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한 목소리와 익숙한 듯 편안하게 다가오는 음조들이 온몸을 매혹시킨다. 로이킴의 목소리는 맑다. 또르르 물방울이 긴 풀잎 사이로 떨어지는 듯, 가사 하나하나가 목소리에 그대로 담겨 가슴으로 전달된다.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바꿔준다.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는 나의 렌터카는 어느새 빨간색 오픈카로 변해있었고, 선글라스를 끼고 한쪽 팔은 운전석에 걸친 채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자유를 만킥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제주 남쪽 끝에 자리 잡은 송악산 둘레길은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바다와 산이 만나고 있었다. 바다를 옆에 낀 채 천천히 걸었다. 10월의 제주 햇빛은 뜨거웠지만 바람은 차가웠다. 뜨거운 햇빛에 이마에 땀이 맺히다가 바람에 금세 씻겨가는 느낌이 좋았다. 땅을 밀어내며 걸어가는 내 발걸음이 느껴졌다. 바다를 등지고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들은 제주 가을 여행을 제대로 실감하게 해 줬다.



송악산 둘레길




바다와 산. 20-30대 때는 무조건 바다였다. 바다는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자기 보습을 다 보여주며 아무 조건 없이 반겨준다. 보자마자 시원하고 가슴이 뻥 뚫린다. 반면 산은 처음부터 자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시간과 체력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천천히 자기 모습을 조금씩 다양하게 드러내다 어느 정도 대가를 치렀다 싶을 때 환상적인 뷰와 작은 성취감을 선물해준다. 산의 최고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정상까지 올라야 하는 혹독한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무조건 바다였던 이유.




카페 오라 디오라에서 바라본 산방산




제주에는 그토록 좋아했던 바다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주의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어디에서나 같은 모습이었다. 반면 산은 그 모습이 다 달랐다. 카페 오라 디오라에서 바라본 산방산은 늠름했고 당당했다. 카페 통창을 집어삼킬 듯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바다와 맞닿아 자연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채 모습을 만들어 간 송악산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절경을 품고 있었다.




송악산 둘레길 절경


바다는 혼자일 때 보다 섬이나 바위, 떠오르는 태양, 해 질 녘 노을, 그리고 산과 어우러졌을 때 더 아름다웠다. 그런데 산은 아니었다. 그냥 혼자여도 아름다웠다. 산 자체만으로 가지고 있는 모습도 다 달랐다. 산의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카페 '서연의 집'



제주는 환상적인 뷰를 간직한 감성카페가 제일 많은 곳이다. 그중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유명한 카페 '서연의 집'은 꼭 가봐야 하는 곳 리스트 1순위였다. 카페 정면이 통창으로 뚫려 있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바로 액자에 사진이 담기는 듯 한 연출이 가능해서 포토스팟으로도 유명했다.


둘째 날 아침식사를 하고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조그만 잔디 마당이 있고 돌담이 둘러져 있는 주택이었다. 중년의 여성이 머리에 두건을 쓴 채 긴 호스를 들고 초록이들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상상했던 서연의 집과 너무 잘 어울렸다. 오픈 10분 전, 입장이 가능한지 물었다. 환한 웃음으로 흔쾌히 들어오라고 반겨주셨다. 망설임이나 번거로움 같은 기색은 전혀 없었다.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입구부터 천천히 돌아봤다.



카페 '서연의 집' 입구



10미터 안 되는 짧은 돌담길, 카페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잔디와 초록이들, 정면으로 보이는 바닷가, 영화 건축학개론의 포스터들과 소품들, 돌과 나무가 적절히 어울려 감성과 세련미를 모두 갖춘 실내 인테리어는 기대 이상으로 나의 가슴을 두드렸다.


카페에 들어서자 카페 정면 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통창과 통창을 가득 채운 바다, 그리고 통창을 두르고 있는 사각형의 목조 테두리가 눈에 들어왔다. 액자 포토스팟. 콩닥대던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 감성이 좋았고, 그 순간을 맘껏 느끼고 있는 내가 좋았다.



서연의 집 포토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이 순간을 나누고 싶었다.

" 나 지금 서연의 집인데... 진짜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좋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몇십 배는 좋아. 사진으로는 진짜 절대 다 담을 수가 없고 담기지도 않아. 너무 아름다워서 벅차고 설레고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

" 아~~ 서연의 집? 나도 가봤어~~  거기가 그렇게 좋아?"

" 응 너무 좋은데? 나 눈물 찔끔했다니까? 와.. 이런 데서 살고 싶다~~ "

" 그래? 난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 그래? 왜 그랬지? 너 누구랑 갔었는데?"

" 나? 시어머니랑 시누이"


친구의 대답에 나는 빵 터졌다.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하는 건 음악뿐만이 아니었다. 혼자였던 나와 시댁 식구들과 함께였던 친구는 같은 장소에서 보고 느꼈던 게 참 달랐다.









난문쾌답에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3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1. 시간을 달리 쓰는 것

2. 사는 곳을 바꾸는 것

3.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여행은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하루 24시간 반복된 일상으로 보낸 나의 시간을 여행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위해 달리 써보는 것이다. 회사에 연차도 내야 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고 걸리는 게 많지만 내 시간 중 일부를 기꺼이 여행을 위해 남겨두는 것.


두 번째로 사는 곳을 바꾸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있다. 보통 일반인이 사는 곳을 자주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것으로 여행만 한 것이 없다. 여행을 통해 그동안 가보지 못한 새로운 장소에 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겪게 되는 새로운 경험들은 잠재되어 있던 낯선 감각을 깨워주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눈 앞에 가져다준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나는 지금껏 외면했던 나 자신과 새롭게 사귀어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온 나, 지금껏 애써 온 나를 제대로 돌아보고 토닥토닥 위로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혼자 여행을 떠나 온전히 나를 느껴보고 돌아보는 것.

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난문쾌답에서 또 말한다.

가장 무의미한 행위는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이라고.


로망과 설렘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용기와 행동이다. 반복된 루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시간을 만들고, 온몸의 감각을 깨워주는 새로운 곳에 가서, 평생 내 인생에 함께 하고 있는 나 자신과 제대로 사귀어 보는 것.


생애 첫 혼자 여행은 혼자였기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고,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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