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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Mar 07. 2021

자연이 주는 위로, 산책




햇빛의 따스함이 좋다.

버스를 타도, 식당에 가도, 기차를 타도, 카페에 가도 햇빛이 적당히 들어오는 곳으로 자리를 잡는다. 거실 커튼도 거의 치지 않고 하루 종일 햇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둔다. 따뜻하고 밝아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 때문이었을까. 어려서부터 따뜻한 곳이 좋아 항상 햇빛을 곁에 두고 싶었다. 그렇게 햇빛뿐이었다 자연을 찾았던 것은. 좋아해서 찾았고 곁에 둔 것은 햇빛뿐이었다.


작년 10월 어느 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길, 회사 후정과 주변에 알록달록 다양한 색을 빛내며 바람에 흩날리는 은행나무들과 땅 위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각사각 나뭇잎을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나무를 올려다봤다. 노란색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부셔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시선을 비스듬히 바꿔 다시 올려다보니 인스타나 블로그에서 봤던 감성 사진이 눈 앞에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시계를 보니 08시 50분. 출근시간 10분 전이다. 그대로 들어갈까? 이 회사에 다닌 지 5년째인데 처음이었다. 이렇게 예쁜 가을 풍경을 마주했던 것은.


1년 365일 동안 계속 모습을 바꿔가며 봐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변해가는 모습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그렇게 5년이 흘렀다. 내가 봐주건 봐주지 않건 그것들은 묵묵하게 본연의 모습을 가꾸어 내 앞에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며 살아왔던 거지? 사무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회사 후정을 한바뀌 돌았다. 천천히, 자세히, 아주 오랫동안 나무들과 풀, 나뭇잎들을 봐줬다. 잎에 새겨진 노란색과 빨간색이 가을을 알리는 선명함으로 빛났고, 떨어진 수많은 나뭇잎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색,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09시가 지나자 회사 후정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마스크를 벗고 걷기 시작했다. 언제 바깥공기를 맘껏 들이마셨는지 기억이 없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된 요즘,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시며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마스크를 벗고 들이마신 찬 공기가 코를 통해 순식간에 단전까지 내려갔다.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찬바람도 반갑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쾌했다. 그때 어디선가 향긋하고 시원한 향이 코끝에 아른거렸다. 향에 이끌려 걸음을 옮긴 곳에는 모과 5-6개가 가지런히 땅 위에 모아져 있었다. 모과나무였다. 모과나무에서 떨어진 모과를 누군가 나무 옆에  모아 두었던 것이다. 출근시간까지 무시하고 감행한 나의 일탈은 묘하게 몸과 마음의 긴장감을 풀어줬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약 10년 전쯤 30대 초반 무렵, 60대에 접어든 엄마는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 양 옆에 만발한 코스모스를 보고 차를 세우라고 하셨다. 4차선 도로 양옆으로 하얀색, 핑크색, 보라색 코스모스들이 가득 차 있었다. "우와~~ 코스모스 좀 봐라 이렇게 예쁠 수가 있니?" 연신 뱉어내는 감탄사가 참 와 닿지 않았었다. 도대체 코스모스가 어떻다는 건지, 코스모스로 배를 채우나 돈이 나오나? 핸드폰 시계만 바라보며 엄마를 채근 댔었다.


공부하랴, 취직하랴 앞에 놓인 숙제를 해치워가며 살아가는 나와 다르게, 인생의 모든 숙제를 거의 끝마친 60대의 엄마는 그렇게 자연을 좋아하고 감탄했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40대에 접어든 딸은 이제야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즐거워했던 엄마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에게 갇혀 있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회사에 가도, 집에 가도, 친구들을 만나도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갇혀 있는 기분이 밀려와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다. 그럴 때 잠깐식 집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걷다 보면 답답함이 풀리고, 나를 몰아세우던 충동질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싸우거나, 우울하거나, 복잡한 고민이 있을 때 사람들이 잠깐씩 바람을 쐬러 나가는 것은 집 바깥에 지금 이 기분을 조금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분명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미숙하고 나약하다. 그래서 위로와 공감을 먹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나약한 인간은 또 다른 나약한 인간에게 상처 받고 부대낀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람이 아닌 다른 위로제가 필요하다. 30대의 나는 아직 사람이 견딜만하고 사람으로부터 위로받을 여력이 남아 있었지만 60대의 엄마는 사람에게 지치고 상처 받고 갇혀 지낸 시간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연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원래 자리에서 본연의 모습을 뽐내며 우뚝 서있는 나무들,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얀 눈과 어울려 장관을 만들어 내는 소나무, 어두운 밤 어디로 가든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따라와 홀로 가는 길을 비춰주는 달과 별은, 삶의 용기와 힘을 준다.


산책은 이런 자연과의 데이트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볼 수 있는 것과 천천히 걸으며 볼 수 있는 것이 다르다.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이 자라는 모습과 변해가는 모습들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내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춰볼 수 있게 된다.


박웅현 작가는 '책은 도끼다'에서 삶의 속도를 늦추고 들여다보는 힘, 감응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고 말이다.


잔디가 자라는 속도, 정 많은 나뭇가지가 가을바람에 나뭇잎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은 속도, 그 똑같은 나무가 다부진 가지마다 이미 또 다른 봄을 준비하고 있는 속도, 아침마다 수영장 앞에서 만나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는 하얀 강아지가 자라는 속도, 내 무릎 사이에서 잠자고 있는 고양이가 늙어가는 속도, 부지런한 담쟁이가 기어이 담을 넘어가고 있는 속도, 바람이 부는 속도, 그 바람에 강물이 반응하는 속도, 별이 떠오르는 속도, 달이 차고 기우는 속도, 내 인생을 움직이는 질문. 내 인생을 움직이는 질문은 오직 하나. 어떻게 하면 그 속도에 내가 온전히 편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동차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잔디가 자라는 속도로 살 수 있을까

- 책은 도끼다 P74 <내 인생의 질문은 무엇인가> -



사람이 사람에게 위로받을 수 없을 때, 자연에 기대 보는 건 어떨까? 자연과의 데이트를 통해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위로를 받아보자. 힘들 때 진통제가 필요하듯  산책이라는 자연의 위로를 곁에 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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