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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Mar 14. 2021

우리는 경청이 어렵다

말하기보다 듣기, 쓰기보다 읽기





말을 재밌게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유쾌하고 기분이 좋다. 

이런저런 예를 들면서 성대모사도 잘하고 실감 나게 얘기를 참 잘한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는듯 이어지는 생생한 경험담은 꽤 오랫동안 집중하게 한다. 보통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이 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게 된다. 모임에서 뿐 아니라 단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상대가 재밌게 말을 잘하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능력에 더해 유머까지 겸비한 사람들은 요즘 사회에서 돈 주고 사지 못하는 굉장한 스펙을 갖고 있는 거나 다름 없다. 그러나 이 고퀄리티의 스펙을 갖고 있는 사람과의 활기찼던 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후, 이상하게도 뭔지 모를 공허함같은, 내 안의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은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다. 아이들 키우는 얘기, 직장생활 이야기, 남편과 시댁 이야기 등 만나자마자 폭풍 수다가 이어졌다. 친구는 큰애 학교 들어 간 이야기, 아들 둘이 축구에 빠진 이야기,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며 일하는 워킹맘의 고충, 남편과 다툰 이야기, 최근 시작한 운동이야기 등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처지가 비슷하니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워낙 말을 재밌게 잘하니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는 내 소식을 전하고 싶어 조심스럽게 내 얘기를 꺼냈다. 초반에 맞장구를 치며 들어주는 듯하더니 곧장 자기의 경우는 이렇다며 내 이야기 소재를 가지고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골대를 향해 열심히 드리블 중인 공을 뺏긴 기분. 이런 식의 대화가 2시간 넘게 오갔고 밝게 웃고 있던 나의 얼굴은 어느새 지쳐있는 입고리 미소만 남아 있었다. 다음에 또 언제 보냐며 오늘의 헤어짐이 매우 아쉬운 듯 작별을 하고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허했다. 무언가 채우지 못하고 돌아오는 기분. 썩 좋지 않다.  



이와 반대로 어떤 모임에서 내가 일방적으로 많은 얘기를 하고 돌아오는 경우는 어떨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보통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보다 내 이야기를 할 때 더 적극적이고 기분이 좋다. 최근 하버드 과학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두뇌의 쾌락 중추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섹스와 코카인, 설탕과 같은 것에 반응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말센스 P75) 상대방이 내 이야기에 재밌다고 웃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며 기쁜 일에는 축하를, 슬픈 일에는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면 우리는 더 많은 말을 쏟아내게 될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 얘기만 쏟아내고 돌아오는 길, 뭔가 찝찝하다. 뒤통수가 싸하고 뭐가 흘리고 와서는 안될 것을 두고 온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찾을 때는 나에게 지금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편과 싸웠을 때는 내편을 들어주며 맞장구 쳐주는 친구를 찾게 되고, 시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에 스트레스받았다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를 만나 공감받고 싶어 한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질책을 받거나 업무실수가 있었던 경우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괜찮다며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고, 최근 좋아하는 드라마나 운동, 취미가 생겼다면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참 즐겁다. 이렇듯 사람들은 나와 상대방의 대화를 통해 공감과 위로 그리고 인정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 한다. 



경청(傾聽)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경청'이 무엇을 의미하고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경청'은 한 조직의 지휘관, 집단의 리더들이 갖춰야 할 덕목 1순위로 꼽히기도 하면서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하는 강의의 주요내용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서점에 나와있는 경청과 말에 대한 책이 많은 것을 보면 '잘 듣는다'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한 것 같다. 또 이 책들이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말하기'와 '듣기'에 있어 뭔가 맘처럼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경청, 우리는 잘하고 있을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진 우리가, 진심을 다해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그것, 잘할 수 있을까? 그거 생각보다 어렵다.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경청이 어려운 것일까?


우리는 자꾸만 대화의 주인공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 


상대와 대화를 나누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바쁘다.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에 준비해 두고 대화가 시작되면 꺼내놓기 시작한다. 대화 도중 상대방의 말이 재미없고 관심사가 아니면 어느새 손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듣는 척하며 다른 생각하기 일쑤다. 만나면 상대방의 안부나 가족 근황을 형식적으로 묻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사회학자인 찰스 더비는 대화 속에 자기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성향을 '대화 나르시시즘'이라고 칭했고, "대화 나르시시즘은 주목을 끌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배적인 심리 성향을 잘 나타내 준다" 고 말했다. 이 성향은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대화를 이끌면서 대화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놓고자 하는 욕망으로 스스로는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화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의 경우 상대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나 나와 결부시켜 얘기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사람은 대화 도중 자꾸만 상대방의 공을 빼앗아 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대화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대화라면 공통주제에 대해 오고 가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나와 상대방이 적정한 비율로 말을 해야 하지만 상대방이 불편할 정도로 일방만 이야기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상대방의 의견은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았고, 들을 생각도 없었던 케이스, 대화가 아닌 말하기를 위한 말하기로 끝나는 경우다. 



두 번째로 우리는 꼰대 본성이 있다. 자꾸만 상대방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식과 경험이 쌓여가는 만큼 아는 것도 많아진다. 회사에서는 팀장, 과장이 되고 가정에서는 자녀들을 가르쳐야 하는 부모가 되면서 나의 지식과 경험, 인생 교훈 등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 자리도 많아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라테'를 찾게 되고, 순식간에 꼰대가 되고 만다. 꼰대가 라테를 찾는 경우 종종 대화의 핵심을 벗어나 상대방이 물어보지도 않은 내용까지도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상대방이 내 의도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이야기는 더 길어진다. 꼰대가 '라테'를 찾는 경우처럼 우리는 자꾸만 상대방을 가르치려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자칫 꼭 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도 잊어버린 채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말하려는 경향도 있다. 



이런 경향은 '오프라인 상의 대화'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코로나로 언택트, 비대면 관계가 활성화되고 있는 요즘 우리는 블로그나 인스타, 그리고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블로그에서는 이웃 수가, 인스타는 팔로워 숫자가, 브런치는 구독자수가 그 사람의 온라인 상 파워 지수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블로그나 브런치에서 글을 발행하고, 수시로 좋아요와 라이킷 수를 확인하고 댓글을 확인하며 우리의 만족감 지수도 올라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 글의 댓글 말고, 블로그 이웃이나 브런치 구독 작가들의 포스팅과 글을 얼마나 진지하게 읽고 있을까? 오프라인상의 만남이 아니기 때문에 온라인상의 관계에서 소통수단은 주인들이 발행한 글뿐이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오로지 서로가 글을 통해 공감하고 반응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작 블로그 이웃이나 브런치 이웃 작가들의 글을 경청하듯이 진지하게 정독하기란 쉽지가 않다. 내 블로그 이웃은 530명 정도다. 블로그 좀 한다는 사람들의 이웃에 비하면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다. 블로그 앱에 들어갈 때마다 이웃들의 새로운 글들이 올라오지만 그 글을 다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내 블로그에 자주 방문해 주는 이웃들의 글이 있다면 꼭 품앗이처럼 가볍게 스킵하고 댓글을 달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댓글들도 분류가 되면서 내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고 내용에 대해 언급하며 찐 댓글을 남겨주는 이웃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온라인상에서의 경청을 제대로 보여주시는 분들이다.  




이청득심(耳聽得心) : 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말, 언어, 듣기에 대한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말하기는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의 달인은 의외로 말솜씨가 유창하지 않고 그들의 말은 절제돼 있고 과도한 제스처도 사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들어주는 것에 능숙하다는 것이다. 



2021년을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나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자유롭지 못하면서 혼술, 혼밥이 일상화되고, 사람보다는 인스타, 블로그 등 sns 상을 통해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는 지금 '경청'이 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 입을 원하는지, 내 귀를 원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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