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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Mar 15. 2021

눈으로 먹는 시대가 왔다

맛이냐 vs 플레이팅이냐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맛일 것이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 장사가 잘되는 음식점에 가보면 대기표까지 받아 들고 1-2시간도 거뜬히 기다렸다 먹을 만큼 맛집의 음식은 충분히 맛이 있다. 과연 음식은 맛이 최우선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음식의 맛을 흔들 만큼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음식들의 비주얼을 상상해보자. 커다란 접시 한가운데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뽐내며 적당히 익힌 스테이크가 빨간색 방울토마토, 초록색 어린 입 채소와 함께 담겨있다. 고기 사이로 흐르는 육즙은 고기를 씹었을 때 압안으로 번지는 식감을 상상하게 한다. 오목한 그릇 속에 폭 담긴 크림 파스타는 그 위에 뿌려진 파슬리 가루와 입을 벌린 조개들로 둘러싸인 채 자태를 뽐낸다. 포크를 들기도 아까운 아름다운 음식을 보자마자 감탄사가 나오고 먹기도 전에 오감을 자극한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이 음식의 황홀한 맛을 상상하게 된다. 입에는 어느새 침이 고인다.


사실 우리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로 꽤 일찌감치 음식의 외적인 모습을 중시해왔다. 오래전부터 맛 좋은 음식을 더 맛있고, 푸짐해 보이도록 차리는 데에 신경을 써왔지만 요즘처럼 '진짜 정답이다'라고 느껴지는 때가 없다. 최근 음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티브이, 유튜브에서도 음식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고, 인스타, 블로그 등 온라인 상에서 이미지 즉, 사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음식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플레이팅에 대한 관심도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음식뿐 아니라 디저트나 카페, 베이커리에서도 음식의 비주얼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소가 돼버렸다.


8살인 아들에게 '맛집'으로 불리는 친구 집이 있다. 커피 한잔, 빵 한 조각을 담아도 예쁜 그릇에 근사하게 담아내 오는 그 집은 맛도 맛이지만 가정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환상적인 플레이팅으로 우리들 사이 '례cafe'로 통한다. 밥상을 차려도 한식인지 양식인지에 따라 담아내는 그릇들이 달라지고, 명절이면 유기그릇에 12첩 반상을 멋들어지게 차려낸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 눈에도 그 친구 집에서 먹는 음식들은 다르게 보였나 보다.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친구 집에 초대받아 함께 가던 길,

"엄마 윤우네 집은 맛집이더라"

" 맛집? 왜?"

" 음식들이 다 예뻐. 맛있고"


2015년 찰스 스펜스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교수팀은 사람들이 자꾸 음식 이미지를 보려고 하는 이유가 안전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얻으려는 인간의 생존본능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뇌는 후각과 미각, 시각 등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 음식을 인지하는데 그중에서도 시각 정보는 음식의 영양가를 예측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한다. 2011년 반 데르 라안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대 의학 연구소 교수팀은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fmri) 촬영 결과, 뇌가 음식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음식 사진이나 영상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뇌는 음식을 먹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고 하니 맛있어 보이도록 플레이팅 된 음식은 당연히 뇌에 큰 자극을 줄 것이다.


대한민국은 유독 음식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교제하는 자리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경우가 많고,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경우에도 음식으로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표현한다. 또한 한국 특유의 '정(情)'문화도 음식을 통해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단골 식당에서는 자주 오는 손님에게 밥 한 공기 정도는 공짜로 내준다. 김치를 담거나 반찬을 많이 만들어 이웃들과 나눠먹는 문화야 말로 제대로 정을 나누는 일이다. 사람들과 안부인사를 하며 가장 많이 건네는 말도 '언제 밥 한번 먹자'이다. 특히 초대받은 집에서 근사하게 플레이팅 된 음식이 나오면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 대접받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디에 담겨있냐에 따라 음식이 품격이 올라가고, 덩달아 그 음식을 먹는 나의 품격도 올라간다. 외식문화가 자유롭지 못한 요즘, 우리는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음식의 격을 올리고 싶어 한다.


눈으로 음식을 먹는 플레이팅, 더 이상 맛으로만은 승부를 볼 수 없는 시대가 왔다. 먹는 것 이상의 만족을 주는 플레이팅은 미각을 자극하기 전에 시각을 먼저 건드린다. 음식을 진짜 제대로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미각뿐 아니라 시각 또한 충족시켜야 한다.



    맛이냐 vs 플레이팅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한쪽만 가지고는 완벽한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맛' 만큼 눈으로 보고 즐기는 '멋' 또한 중요해졌다. 입으로 먹기 전 눈으로 먹는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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