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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ul 22. 2021

엄마의 돈지랄이 어때서?




돈지랄을 좋아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돈을 좋아한다.

돈을 좋아하고 쓰는 것을 좋아하니 종종 돈지랄을 즐긴다.


몇 년 전 친구와 사주를 보러 갔는데 나보고 '돈을 너~~ 무 좋아한다' 고 했다. 쩝쩝..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너~~ 무를 몇 번이고 강조하면서 얘기를 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돈을 좋아해 돈이 계속 들어오나 들어오는 대로 나간다고 했다. 이 점쟁이가 돌팔이는 아닌 듯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엄마의 돈지랄에 날개를 달아줬다. 터치 몇 번으로 구매가 가능해져 고르고, 비교하고, 고민할 시간이 짧아졌다. 눈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스마트폰은 화면을 켜자마자 온통 화려하고 예뻐서,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인스타그램 속 물건들은 내가 그 물건들을 사면 꼭 피드 속 사진과 같은 생활이 가능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맞다. 착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또 본다.


다시 네이버 검색창으로 들어와 그 물건을 검색한다. 요즘은 검색창에 입력한 글자, 내가 자주 터치한 피드, 오랫동안 읽었던 화면 등에 대한 정보를 알고리즘이라는 것으로 나를 조종까지 한다. 찾기도 전에 알아서 먼저 나타난다. 이놈의 디지털 세상에서 착각 속에 놀아나는 듯 하지만 즐겁다.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산다.


없는 게 없다. 싱크대 서랍장, 옷장, 팬트리, 책장 구석구석, 있었는지도 모르는, 용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갖가지 물건들이 가득하다.


옷부터 얘기를 해볼까? 단연 돈지랄의 대표주자다.


옷장 속에는 안 입는 옷들로 가득하다. 뒤적이다 보니 10년 전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할 때 입었던 티도 있다. 아, 버려야 하는데... 너무 멀쩡하다. 10년쯤 지난 것들은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과 어찌 또 비슷하다. 1-2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은 옷들은 과감히 버리라는데, '그런 거 버리면 벌 받는다'는 친정엄마 말대로 이렇게 멀쩡한 걸 버리면 진짜 벌 받을 것 같아 그대로 다시 처박는다. 즐겨 입는 브랜드 제품이 갑자기 세일을 하는 경우, 치명적인 1+1의 유혹, 교묘한 9900원이라는 숫자의 함정에 기분 좋게 빠져 집으로 들어온 옷들이 여전히 한가득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옷이 이렇게 많은데.. 오늘도 입을 옷은 없다.


특히, 코디의 기본인 화이트 티셔츠는 해마다 사도사도 왜 오늘 입을 하얀색 티셔츠는 없는 것인가. 티셔츠는 그날의 바지 그리고 아우터의 재질, 디자인 등에 따라 어울리는 스타일이 다 다르다. 화이트 티셔츠라고 아무 옷에나 다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건 기장이 조금 길고, 어떤 건 목이 많이 파져서, 어떤 건 소매가 너무 짧아서, 어떤 건 재질이 안 맞아서 오늘의 코디와 맞지 않는다. 저렴이는 또 쉽게 해지고 목이 늘어나 있다.

그래서 또 스마트폰을 켠다.


맘먹고 옷장 정리를 하던 날, 청바지가 이렇게 많을 줄은 나도 몰랐다. 직접 숫자를 세보고 남편에게 솔직히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당황했을 정도다. 스키니, 블랙청, 세미 부츠컷, 일자, 7부 바지 까지.. 종류와 디자인도 다양했다. 진즉 버렸어야 할 옷들이 몇 년째 빛도 못 보고 처박혀 있었다. 청바지는 해지지도 않는다. 너무 멀쩡하다. 아니 근데 이게 웬일? 아주 오래전 입었던 청바지들이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과 비슷했다. 약 10년 전 통바지, 나팔바지가 지금의 와이드 핏, 부츠컷 바지와 유사했다. 지금 입어도 되겠는데? 오~ 나쁘지 않네? 하며 다시 옷장에 집어넣는다.


청바지를 살 때마다 남편이 하는 얘기가 있다. 왜 같은 옷을 또 사냐고, 집에 있는 청바지랑 비슷하지 않냐고. 아니 그게 무슨, 천부당 만부당 모르시는 말씀이다. 같은 바지는 단 한벌도 없다. 디자인도, 물 빠짐도, 길이도, 통도 미세하게 다 달라 그 바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상의도 다 다르다. 이렇게나 청바지가 많은데 내일은 이 중에서 골라 입고 출근할까 싶지만 역시, 내일 입을 청바지는 없다.

그래서 또 스마트폰을 연다.





주방도구도 마찬가지다. 결혼 때 장만한 하얀색 코렐 그릇들이 어쩐지 유행에 뒤쳐지는 나와 비슷한 것 같아 쳐다보기도 싫어지고 있었다. 살림에 그다지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어 주방용품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엄마라는 역할이 점점 몸에 배 가며 주방용품들과 부대끼는 시간이 많을수록, 그것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거기다 인스타 속 멋들어지게 차려진 한상들, 세련되고 고풍스러운 그릇들에 예쁘고 정갈하게 담긴 음식 사진들이 더 큰 자극제였다. 요즘은 눈으로도 먹는 시대가 아니던가, 확실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엄마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못할 바에야 나도 이런 걸로 즐겨 볼까 싶어 광주요 특가 세일 시기에 맞춰 이천까지 달려갔고, 오덴세 홈쇼핑 방송에 알람을 맞춰뒀다 그릇들을 사들였다.


남편이 말렸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그 남자는 음식도 잘 안 해 먹는데 그릇은 왜 사냐며, 이것도 부지런히 잘 챙겨 먹는 사람들이나 사야지 우리 같은 부부는....흠.. 거기까지. 헛기침과 함께 손바닥으로 그 남자의 얼굴을 가린 채 단호한 소비의지를 표했다.


나도 우리 가족들이랑 예쁘게 좀 차려서 먹어보고 싶다는데, 잘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 대접받는 느낌이고 식사시간이 더 즐거워지지 않겠냐는, 약간 속 보이는 이유들과 엄마의 주방 노동을 내가 이렇게 기꺼이 즐기며 하겠다는데 왜 반대하냐고 짐짓 서운한 듯 대응했다. 여자보다 엄마의 이유가 더 통했다. 이럴 때만 엄마 임을 강조해서 좀 찔리긴 했지만 사고 싶은 건 사야 하니 일단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설득시키고, 나는 샀다.


결론은.. (뻔하지만) 지금도 우리 집 주 사용 식기는 코렐이다. 용도에 맞게 손이 가는 것도 부담 없이 손이 가는 것도 코렐인데 이 놈의 그릇은 던져도 안 깨지니, 코렐은 진짜 인정이다. 이것만큼 튼튼하고 실용적인 그릇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들은 튼튼하고 실용적인 것에 더해 하나 더, 예뻐야 한다. 예쁘지 않으면 아무리 실용적인 것도 눈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니 볼 때마다 2프로 부족한 느낌이다. 여전히 예쁜 그릇만 보면 눈이 간다.


옷과 그릇들뿐이랴


오후에 주문한 물건이 로켓을 타고 다음날 7시에 도착한다. 언빌리버블!! 쿠팡, 마켓 컬리, 이마트 사이트에 들어가 식재료와 생필품을 담는다. 밤 11시까지는 주문을 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면 자주 사는 물건 카테고리에 들어가 예전에 샀던 목록 중에서 필요한 것만 빠르게 주워 담고 주문하면 된다. 해산물이나 고기 같은 식재료는 직접 눈으로 보고 사야 맘이 놓이지만 시간도 없고 바이러스도 무섭다. 몇 번 사보니 냉장식품 포장상태가 아주 우수하다.


신나게 주워 담다 장바구니 목록 중 집 앞 마트에서 더 싸게 팔고 있는 품목이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이 제품만이 아니다. 새벽 배송 물건들은 조금씩 더 비싸다. 최저가 검색을 하니 여기보다 더 싸게 파는 사이트도 있다. 잠깐 망설이지만 그 품목을 빼면 무료배송이 안된다. 배송비 3000원을 내느니 거기서 거기 같다. 새벽 배송하려면 배송해 주는 아저씨의 인건비도 더 들어갈 것이다. 쓸데없는 오지랖이 내 소비를 합리화시킨다. 최저가를 포기하고 같이 주문한다. 사이트에 들어가 물건들을 주문하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 학교 준비물을 깜빡하거나, 당장 내일 필요한 물건들을 사지 못했어도 새벽배송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좀 비싸면 어떤가. 시간 없는 워킹맘에게 새벽 배송, 로켓 배송은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최고의 서비스다.


새벽에 도착한 식재료들을 정리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란 적이 몇 번 있다. 똑같은 오이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똑같은 비비고 제품이 냉동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브랜드도, 개수도 똑같다. 진짜 제대로 돈지랄이다. 남편이 알아차리기 전에 얼른 냉장고 문을 닫는다. 뭐 어때. 오이부터 먹으면 되지, 썩혀서 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냉동식품은 썩지도 않는다. 괜찮다. 워킹맘은 시간을 벌고 돈을 쓰는데 익숙하다. 좀 더 뻔뻔해진다.


취업준비 시절, 하루 종일 우울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날, 목적 없이 쇼핑몰에 갔다 1500원짜리 양말을 사고 기분이 상쾌하게 정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기껏 1500원에 하루 종일 바닥을 기어 다닌 나의 감정선이 수직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이 가볍고 얄팍한 감정 심리는 뭐지. 1500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샀다는 것. 소비가 나를 달래주고 위로해줬다.


남편과 다투거나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는 경우 일단 카드 한 장을 들고 나간다. 쇼핑몰에 가서 9900원짜리 티 한 장을 사거나 모던하우스에 가서 예쁜 생활용품 하나만 사도 기분이 풀린다. 온종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고 밥을 짓고 노동을 해왔다. 오로지 나를 위한 소비는 나를 위로한다. 기분을 전환시킨다.


시간 빈곤자, 감정 나약자인 워킹맘은 오늘도 돈을 쓰며 위로를 받는다. 나중에 불필요해질 망정 사는 순간만큼은 소비 이유가 분명하다.


꼭 필요한 것만 사야 하나?

꼭 실용적이어야 하나?

꼭 최저가로 구매를 해야 만 잘 한 소비인가?


시간이 없어서, 갖고 싶어서, 예뻐 보여서, 그냥 사고 싶어서, 기분이 안 좋아서, 갑자기 세일을 해서, 1+1 이니까, 핫딜이니까, 배송비를 아껴야니까.


실용적이라는 이유 말고도 돈을 써야만 하는 이유는 많다.

엄마는 오늘도 좀 더 뻔뻔하게 당당하게 돈지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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