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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ul 26. 2021

조용하고 한적한 책 공간 _ 북카페 '아르카 북스'

꿈꾸는 작은 서재




한 달에 한번, 꿀 같은 오후 시간이 생긴다. 

당직근무를 하면 다음날 오전 11시 퇴근이다. 당직근무는 직장에서 24시간 근무를 하기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지만 다음 날 오후 나만의 자유시간이 생긴다는 점에서는 기다려지기도 한다. 


아이들도 없고 남편도 없다. 워킹맘들이 평일 자유시간을 갖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휴가를 내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워킹맘의 휴가란 곧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일이 생겼거나 가족의 대소사를 챙기기 위함이 대부분이라 혼자만의 평일 자유시간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 


꿀 같은 이 시간 나는 주로 서점이나 카페에 간다. 

근처에 있는 기흥 예스 24 중고서점에 가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서재, 카페로 간다. 카페들 중 책을 읽거나 글쓰기에 좋은 카페들은 많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동탄 2 신도시에도 카페는 많지만 내가 즐겨 찾는 카페들은 몇 군데 정해져 있다.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기 좋은 장소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최적화된 카페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북카페'라는 곳이 많이 생겼다. 카페는 원래 커피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를 제공하고 돈을 버는 곳이었기 때문에 카공족들은 카페 운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커피 한잔만 주문한 채 혼자서 몇 시간 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카페 입장에서는 오히려 꺼리는 손님이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영업 원칙을 바꿔 아예 카공족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두기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카페가 원래부터가 카공족들에게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에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를 더 찾게 되는데 아쉽게도 북카페는 많지 않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 꼭 가보고 싶은 북카페를 몇 군데 찾아뒀었다. 그중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워서 조만간 꼭 가봐야겠다고 벼르고 벼르던 평택 북카페 '아르카 북스'에 다녀왔다.



 




동탄에서 자동차로 약 4-50분 정도 걸리는 꽤 먼 거리였다. 남편에게 평택에 있는 '북카페'에 다녀온다고 하니 꼭 평택까지 가야만 하냐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맞다. 나는 굳이, 평택까지 간다. 내가 원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굳이 간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나? 나에게는 나만의 작은 서재, 책 공간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그렇다. 그 시간을 상상하면 점심을 굶고 시간들 들여 멀리까지는 가더라도 괜찮다.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아르카 북스는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첫 타임인 12시부터 4시까지 두타임을 예약해뒀다. 어떻게 온 북카페인데 한 타임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을 읽기에도 두 시간은 부족하다. 북카페도 천천히 둘러보고 책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커피도 마시려면 2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 여유 있게 2타임을 예약했었다. 예약시간이 12시라 점심도 못 먹고 갔다. 점심을 먹고 간다면 30분 이상 지체될 것이고 그 30분이 어찌나 아까운지 점심까지 포기하고 갔다. 






아르카 북스는 인적이 드문 논밭 한가운데에 있었다. 가는 도중 식당이 보이면 간단하게라도 점심을 때우려 생각 중이었는데 식당은커녕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은 도로가 끊기는 지점까지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사람도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아주 좁은 비포장 길을 가리켰다. 비포장 길은 내 차 한 대로 꽉 찼고, 조금만 틀어지면 논바닥으로 구를 것 같았다. 5분 정도 들어가니 '아르카 북스'라는 작은 팻말이 보였다. 거의 90도 가까운 경사로를 타고 올라가니 그동안 인스타에서 봐왔던 '아르카 북스'의 뾰족한 집 모양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 긴장감이 풀리며 너무 반가웠다. 


정각 12시. 화요일이라 손님은 나 포함 2명뿐이었다. 눈여겨봤던 입구 쪽 명당자리가 비어 있었다. 기분 좋게 가방을 내려놓고 천천히 카페를 둘러봤다.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한 부부가 운영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드신 분들인 줄 알았는데 쥔장 부부는 거의 내 또래로 보였다. 요즘 조기 퇴직이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여기, 안정적인 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장을 버리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두 분이 또 계셨다. 남편분은 공구를 들고 카페 주변 여기저기를 다니며 카페를 정비하고 있었고 아내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은 북카페 안에서 친절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계셨다. 


아르카 북스는 2시간 이용요금 8900원에 음료 한잔이 무료다. 점심을 먹지 않아 커피 대신 망고주스를 주문하고 책들을 구경했다. 앞쪽은 탁 트인 전망에 전면 통유리로 시원한 개방감을 줬고 아주 아주 높은 천장 고는 이색적인 느낌을 더해 이곳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줬다. 흔하지 않은 디자인의 원목 책장 들위에 책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들도 보이고 내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들도 있었다. 쥔장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모아놓은 코너도 있었다. 1.5층 정도에 조그만 다락방이 있었는데 가족단위로 오신 분들에게 좋아 보였다. 





망고주스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폭신한 쿠션이 내 엉덩이를 부드럽게 받쳐주고 등받이도 적당했다. 보통 딱딱한 나무의자는 척추뼈가 닿아 아프기도 한데 등받이 부분이 푹신한 패브릭 소재라서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탁 트인 전망을 아무런 방해물 없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이 자리는 두 자리뿐인데 나보다 먼저 온 여자 손님과 한 자리씩 차지하고 나란히 앉았다. 


4시간 동안 어떤 책이든 여유 있게 조금씩 보려고 했다. 내 자리 바로 옆 트레이에 '윌든'이라는 책이 보였다. 그 유명한 '윌든' 인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간 듯 보이는 윌든이 눈에 들어왔다. 보고 싶은 책들을 올려두고 보는 용도인지, 책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보고 싶은 책 몇 권을 골라 트레이에 올려놓았다. 


2개의 쿠션이 있었다. 등받이든 책받침용이든 내가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내 자리 전용이었다. 쿠션을 무릎 위에 얹고 쿠션 위에 책을 놓았다. 책과 내 눈과의 거리가 딱 적당했다. 쿠션이 없다면 책을 손에 들고 읽거나 북스탠드가 필요한데 손에 들고 읽으면 손이 아파서 한 자 세를 오랫동안 유지하기가 어렵다. 또 테이블에 내려놓고 읽으면 목이 아프다. 그래서 북스탠드가 필요한데 북스탠드를 항상 갖고 다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책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의자와 쿠션이 맘에 쏙 들었다.





2시가 되니 쥔장님이 문을 열고 환기를 시작하셨다. 나도 환기 타임, 핸드폰만 들고 카페 주변을 둘러봤다. 초록 초록한 공간들을 핸드폰에 담았다. 탁 트인 평택의 전원풍경도 담았다. 35도가 넘는 푹염에 마스크까지, 잠깐 밖에 나와 있었지만 숨이 막힐 것 같아 얼른 카페 내부로 들어가려는데 언제 나오셨는지 쥔장 여자분이 웃으며 말을 건네셨다. " 2타임 예약하신 분이시죠?"  밝고 여유 있었다. 한 타임마다 음료가 무료로 제공되는데 나는 음료를 마셨으니 다음 타임에는 다른 걸 준비해주겠다고 하시며 조각 케이크를 추천해주셨다. 점심을 굶었던 터라 아주 흔쾌히 감사하다며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냉동된 치즈케이크는 실온에서 20분 정도 자연해동시켜 먹으면 제일 맛있다고 하셨다. 오~ 진짜 자연해동된 치즈케이크는 꽤 맛있었다. 허기진 배도 적당히 채워지고 여유 있게 책을 읽었다. 푹신한 의자와 쿠션 위에 책을 얹고 여유 있게 책을 읽는 시간, 이곳은 나를 위한 최적의 공간이었다. 






공간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공간에 자주 휘둘린다. 특별한 공간에서 더 즐거워진다. 나를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좀 더 풍요로워지는 시간을 갖는다. 

책 읽는 나를 위해 최고의 장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오롯이 책과 마주하고 책에 푹 빠져든다. 멍도 때리고 즐거운 상상도 한다. 책, 커피, 그리고 내가 어울리는 환상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공간, 그곳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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