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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ul 27. 2021

엄마가 양보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편한 세상




어린이집이 일시 폐쇄됐다. 6세 반 원아와 엄마가 3일 전, 1시간 동안 접촉한 지인이 어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어린이집은 원아와 엄마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시 폐쇄명령을 받은 것이다. 어린이집은 직장 어린이집이다. 부모 중 한 명은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맞벌이가 대부분이다.


어린이집 일시 폐쇄로 아이들을 지금 바로 하원 시켜 달라는 안내문이 키즈노트에 뜨자마자 일하는 엄마들은 손도 마음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긴장감과 동시에 불안감도 몰려온다. 지금 당장 아이를 하원 시켜야 하는데 누가 데리러 갈 것이며 하원 후 아이를 누구한테 맡겨야 할 것인가, 대안이 없다면 사무실에 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코 시국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긴급상황은 예전보다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엄마의 육아현실에 대해 직장 내에서 이해도는 넓어진 편이나 그 엄마의 부재로 남겨진 업무에 대한 부담은 누구도 떠안기 싫어한다. 이해는 하나 나는 아니길 바라는 직장 동료들에게 또다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엄마는 맘이 편하지 않다. 아이 하원도 문제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에 감염됐을지도 모르는 아이와 내 아이가 같은 어린이 집에 있었다는 사실이 조급함을 더 부채질한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오늘 오전 중에 나온다고 했고 어린이집 운영 여부는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 남편이 휴가를 내 출근에 문제가 없었다. 오전 08시 50분경,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회사로 들어가는데 한 여직원이 딸아이 손을 잡고 회사 후정을 걷고 있었고 딸아이는 어린이집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걷고 있었지만 엄마의 손과 눈은 핸드폰에 집중돼 있었고 아이와 엄마의 발걸음이 움직였다 멈췄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린이집 폐쇄 소식을 듣지 못한 걸까? 아이를 왜 데리고 나왔지?’


그 여직원은 사정상 휴가를 내지 못했고,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오전 중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 어린이집이 운영을 재개하면 바로 등원시킬 계획으로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고, 검사 결과 공지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목적 없는 서성거림이었다


아.. 이 웃지도 울지도 못할 엄마의 처절하고 애타는 상황이라니... 만약 어린이집 운영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그땐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런 불확실한 경우의 수 앞에서 아이와 함께 불안함과 조급함에 사로잡힌 채 서성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직원은 사무실 상사와 동료들에게 본인의 육아현실을 애써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워킹맘의 지리멸렬한 현실이 또 닥치지 않길 바라는 눈으로 수시로 핸드폰만 확인하고 있었다.






여직원과 딸아이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향하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여직원의 남편도 우리 회사에 다닌다. 같은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자, 아이들의 공동 양육자인 남편은 왜 저 육아전쟁 한복판에 보이지 않는 걸까? 부부의 개인 사니 그 속사정은 알 수 없겠지만 육아부담이 우선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이 사회에서 개인사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문제가 곧 개인사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육아전쟁 한복판에
왜 아빠는 보이지 않는 걸까?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당연하게 엄마에게 우선 연락을 하게 된다. 아빠와 똑같이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먼저 전화를 받고 대응해야 하는 건 엄마다.


보통 아이가 아프거나, 밥을 잘 먹지 않거나,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거나, 유독 투정이 심한 경우에도 어르신들은 엄마의 양육방식이나 태도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먹을 것을 잘 챙겨주지 않아서, 일 하느라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정서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등등.


얼마 전 시부모님과 식사 자리에서 시어머님은 또래들에 비해 체구가 작은 큰아이를 두고 ‘잘 얻어먹지 못해 못 컸다’라고 말씀하셨다. 시부모님은 특별히 며느리를 나무라거나 안 좋은 감정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들은 며느리의 마음은 아주 많이 불편했다. 큰애의 마른 몸이 엄마인 내가 음식을 잘 해먹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죄책감이 밀려왔다.


엄마의 육아 부담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아이를 잘 먹이고 잘 키우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그러나 엄마 혼자 만의 몫이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공동으로 잘 해내야 하는 것이다.


일하는 엄마들이 육아와 살림까지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만들어졌고, 그래서 아빠들이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한다. 어딘가 굉장히 이상하다. 기꺼이 선심 쓰듯 아빠가 도와줘야 하고, 요즘 아빠들은 '나만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라고 자랑한다. '도와준다'는 것은 내 일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애써준다는 뜻이다. 내 가정의 육아와 살림은 엄마의 일이라는 생각이 전제로 깔린 말이다.


아빠는 보조 양육자가 아니다. 공동 양육자로, 주양육자로 주체성을 가지고 육아와 살림을 맡아야 한다.


육아문제 만이 아니다. 한 가정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이끌어 나가는 주체에 대해서도 엄마, 아내의 역할을 많이 강조하는 게 사실이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도 여자가 집에서 잘 못해서 그런 것이다’ '아이를 못 낳는 것도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런 것이다'라는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스토리를 우리 어머니 세대는 겪고 자랐고, 그 아들들이 지금의 아빠들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아직까지 남편의 신상이나 직장에서 생긴 문제까지도 아내 탓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웃픈 현실이다.


관계는 쌍방향이다. 일방의 노력과 수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부분의 문제도 가족의 문제도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애씀으로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남성 중심 가부장 문화 속에서 여성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함께 급변 기를 맞이하고 있다. 요즘 여성들, 고분고분하게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가지 않는다. 사유하고 선택할 기회도 없이 엄마와 아내, 며느리의 전통적 역할을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요즘 엄마들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엄마이기에 맞닥뜨려야 하는 이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아직까지는 엄마들 뿐이다. 왜 엄마냐고 덤비고 들면 ‘이기적이다’ ‘페미니즘이다’ ‘모성애가 부족하다’라는 얘기가 우선적으로 따라오고, '그래도 엄마가 해야지..'라고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기득권 = 특정 개인이나 국가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차지한 권리


기득권의 개념이다. 누구든 내가 가지고 있는, 그래서 지금껏 누려왔던 권리를 내려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려놓기는커녕 누군가 내 영역을 침범하려 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내려고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노동 대부분의 사회문제가 이 기득권과 관련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힘이 되고 권력이 되었던 가부장 문화 속에서 남성들은 충분히 누리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로 학습돼 버려 쉽사리 내려놓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가 우선적으로 양보하고 포기하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딱 정해진, 이상적인 엄마의 역할, 엄마의 모습이란 것은 없다. 엄마들이 스스로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엄마라는 역할을 모성애라는 틀에 가두어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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