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지금은 방학인데 돌봄 교실에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는 저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아빠는 저를 혼자 가라고 합니다. 저는 학교에 혼자 가는 게 아직 조금 무섭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자꾸 혼자 가라고 합니다. 학교에 가려면 신호등을 2번 건너야 합니다. 방학 아닐 때는 친구들도 있고 초록색 조끼를 입은 아줌마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 신호등을 건널 때 제일 무섭습니다. 엄마가 저는 키가 작아 안보이니 꼭 손을 들고 건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손을 꼭 들고 건너지만 그래도 혹시 운전하는 아저씨들이 저를 못 볼까 봐 온 힘을 다해 뛰어갑니다. 뛰고 나면 갑자기 힘을 줘서 그런지 다리가 아파오기도 하고 힘이 풀리기도 합니다. 날씨가 더워서 머리도 뜨겁고 잠깐 뛰었는데도 숨쉬기도 힘듭니다.
돌봄 교실에 제일 먼저 도착했습니다. 돌봄 선생님은 다음부터는 시간 맞춰 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가 출근하면서 데려다주고 가신 거라고 했습니다. 뭔가 잘못한 것 같았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돌봄 교실에는 10명 정도 친구들이 있습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있으니 재밌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지 못하게 합니다. 투명한 유리막 같은 게 책상에 있어서 조금 불편합니다. 돌봄 교실에는 책이 엄청 많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이 무척 두꺼운데 재밌어서 엄마에게 사달라고 했더니 그림은 없고 글씨만 많은 이상한 책을 사줬습니다. 돌봄에 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알림장도 잘 보지 않습니다. 매일 본다고 하는데 안 보는 게 분명합니다. 준비물을 벌써 2번이나 챙기지 않았으니까요. 다른 아이들은 다 챙겨 왔는데 저만 없어서 조금 창피했습니다.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무섭기도 했는데 다행히 혼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3명입니다.
정읍 할머니, 익산 할머니 그리고 저 돌봐주시는 할머니.
돌봐주시는 할머니가 돌봄 교실에 저를 데리러 옵니다. 할머니는 비도 안 오는데 항상 우산을 쓰고 오십니다. 선글라스도 쓰고 오시는데 집에 갈 때는 그 썬 글라서는 제가 쓰고 갑니다. 저는 원래도 멋지지만 선글라스를 끼면 더 멋져집니다. 제가 선글라스를 쓰고 춤을 추면 할머니가 좋아합니다. 할머니 기분이 좋은 것 같으면 마트에 갑니다. 할머니랑 저는 비밀이 많습니다. 엄마에게 얘기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마트에 가서 제가 좋아하는 초콜릿바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삽니다. 저번에는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와 튀김도 사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라면도 자주 끓여주십니다.
가끔은 아빠가 절 데리러 오십니다. 엄마는 몇 번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오시는 것보다 엄마 아빠가 오는 게 훨씬 좋습니다. 아빠가 데리러 오는 날에는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고 한 번씩 다이소에도 갑니다. 장난감 가게 가자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다이소는 괜찮다고 합니다.
집에 왔다가 다시 학원에 갑니다. 태권도, 공부방, 피아노 학원에 매일 갑니다. 친구들은 학원에 안 가는 애들도 있고 태권도만 가는 애들도 있습니다. 저는 매일 3곳이나 가니 너무 힘이 듭니다. 방학이면 원래 학교에 안 가는 줄 알았는데 저는 학교도 가고 학원도 많이 가는 게 싫어서 엄마에게 얘기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십니다. 저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요. 어린이집 다닐 때가 좋았습니다. 동생은 제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너무 부럽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공부도 안 해도 되고 선생들도 많아서 먹을 것도 잘 챙겨주십니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됩니다. 근데 학교는 가기 싫다고 안 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무섭습니다. 엄마는 그럼 어린이집으로 다시 갈 거냐고 했는데 그건 안될 것 같아서 대답을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너무 힘듭니다. 배도 고프지 않은데 엄마는 나를 깨우자마자 늦었다고 빨리 밥부터 먹으라고 합니다. 매일 빨리하라고 합니다. 빨리해 늦었어. 나는 잠도 더 자고 싶고 밥도 천천히 먹고 싶고 티브이도 보고 싶은데 엄마와 아빠는 매일 늦었다고 빨리빨리 하라고 합니다. 입에 밥이 있는데 또 먹으라고 할 때면 기분이 안 좋아집니다. 밥을 다 먹지 않았는데 씻으라고 하면 입속에 있던 밥을 변기에 버리고 양치를 합니다.
저에게는 4살짜리 여동생이 있습니다. 너무 귀여운데 울 때는 시끄럽습니다. 자꾸 내 물건을 자기 꺼라고 가져가고 나를 방해해서 자주 귀찮습니다. 아침에 엄마도 출근해야 하고 나도 학교에 가야 하는데 동생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해서 오늘도 우리는 늦을 뻔했습니다. 아침마다 동생 때문에 엄마는 많이 힘들어합니다.
어느 날은 학교 갈 시간이 다 됐는데도 동생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동생을 집에 두고 저를 데려다준다고 하셨습니다. 잠을 자고 있으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아..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학교에 혼자 가는 것도 무섭지만 동생을 혼자 두고 가는 것도 무서웠습니다. 동생이 깨서 울까 봐 너무 걱정됐습니다. 엄마는 잠깐이니 얼른 데려다주고 오겠다고 합니다. 신호등만 건너 주고 오면 되니 금방이라고 했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불안했졌습니다. 고민 끝에 엄마한테 혼자 간다고 했습니다. 동생을 혼자 두느니 내가 혼자 가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오빠니까요.
엄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꼭 안아줬습니다. 그러면서 소율이는 이런 오빠를 둬서 너무 좋겠다고 했습니다. 멋진 오빠라고 칭찬해줬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데려다주고 빨리 달려서 집에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횡단보도까지 걸어가는데 소율이가 깨서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5일을 학교에 가면 주말이 돌아옵니다. 학교에 안가는 날은 너무 좋습니다. 주말이면 늦잠도 잘 수 있고 티비도 볼 수 있습니다. 힘들게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엄마 아빠랑 오랫동안 놀수도 있습니다. 저는 주말이 너무 좋습니다. 빨리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큰애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4살 터울 둘째는 제 직장에 있는 직장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큰애가 8살이 되니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많아졌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어린이집 다닐 때보다 엄마는 더 바빠졌습니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차로 15분 거리입니다. 출근시간은 9시인데 큰애 학교에서 너무 일찍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합니다. 큰애를 최대한 늦게 8시 40분쯤 학교에 보내고 둘째를 챙겨 직장에 도착하면 9시가 넘습니다. 시간이 너무 빠듯합니다. 안 되겠다 싶어 큰애를 학교에 혼자 보내봤습니다. 큰애가 학교에 가려면 연속해서 횡단보도 2개를 건너야 합니다. 우리 집은 대로변 바로 옆 끝동이라 창문을 통해 큰애가 아파트 정문까지 걸어가 신호등을 건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큰애를 혼자 보내고 창문을 통해 지켜봤습니다. 8살인데 저렇게 작았나 싶을 정도로 밖에 있는 큰애는 너무 작았습니다. 책가방은 또 왜 이렇게 큰지요 안 그래도 마른 아이라서 책가방 때문에 뒤로 넘어질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지켜본다고 했더니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손을 흔들어주니 자기도 흔드네요 신호등 앞에 섰습니다. 아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신호등을 봐야 하는데 자꾸 엄마를 보고 손을 흔듭니다. 엄마가 보고 있겠다고 한건 잘한 게 아니었습니다. 엄마를 보지 말고 신호등을 보라고 손짓 몸짓 다 했지만 아이가 알아들을 리가 없습니다. 신호가 바뀌었습니다. 역시 못 보고 계속 엄마만 봅니다. 불안해서 가슴이 더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시간에 건너지 못하면 더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아이는 바뀐 신호를 봤습니다. 손을 들고 전속력으로 횡단보도를 뛰어갑니다. 그리고 곧바로 횡단보도 하나를 더 건너갑니다. 역시 뛰어서 건넙니다. 점점 더 아이가 작아지다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아 이게 뭐라고, 엄마는 몸에 힘이 풀립니다. 잠시 후 아이 알리미 앱에서 학교 후문을 통과했다는 알림이 왔습니다. 그제야 맘이 좀 놓입니다.
둘째까지 챙겨 제시간에 출근을 하려면 8시에는 아이들을 깨워야 합니다. 깨우자마자 몸과 마음이 바쁩니다. 큰애는 깨우자마자 식탁에 앉힙니다. 어린이집에서는 간식이라도 주지만 학교는 그런 게 없으니 꼭 아침을 먹여서 보내야 합니다. 시간은 없는데 큰애는 밥을 입에 넣고 씹지 않습니다. 평소 잘 먹지 않고 먹는 거에 크게 관심도 없습니다. 식성도 엄마를 꼭 닮았습니다. 살 안 찌는 음식들만 좋아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딱 봐도 억지로 먹는 아침이라 30분은 앉아 있습니다. 오늘은 재촉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시계를 보고 큰애를 보고 있으면 재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 둘째는 어린이집을 가지 않겠다고 해서 아주 전쟁입니다. 일어나지 않겠다, 옷을 입지 않겠다 자기 몸에 손도 못 대게 합니다. 어르고 달래고, 이제는 마이쭈도 요구르트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 어쩔 수 없이 잠옷 그대로 입혀 데리고 나온 적도 있습니다.
'찬아~ 늦었다 빨리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양가감정이 밀려옵니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큰애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엄마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 내가 큰애라도 정말 듣기 싫을 것 같았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아침은 매일이 전쟁이고, 엄마에게 가장 힘든 시간 중 하나입니다.
하루는 둘째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큰애를 먼저 학교에 보내야 했습니다. 조금 걱정이 됐지만 아파트 정문 앞 횡단보도만 건너 주고 오면 5분이면 될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데려다주겠다고 하니 혼자 가는 게 그렇게 무섭다고 했던 아이가 그냥 혼자 가겠다고 합니다. 싸울 때는 소리소리 지르며 귀찮아 죽겠다고 하면서도 여동생을 끔찍이도 생각하는 큰애입니다. 자는 모습,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너무 귀엽다고 하는 자상한 오빠입니다.
그런 큰애의 모습이 예뻐서 꼭 안아줬습니다. 가끔은 엄마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엄마를 감동시키는 아이가, 고맙고 사랑스러웠습니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자꾸만 나를 밀어냅니다. 이제 그만 빨리 가라고, 소율이가 깨서 울 것 같다고... 큰애가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뛰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둘째는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큰애 방학식이 있는 날이라 학교 급식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 점심을 먹여서 1시에 다시 돌봄 교실로 보내야 했습니다. 직장에 외출을 내고 아이 학교에 왔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3월에 큰애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온 게 여름 방학식,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참...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11시 40분쯤 도착해 학교 후문 쪽으로 갔습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망설여졌습니다. 돌봄 교실에 있을 때는 인터폰을 누른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건지 인터폰을 눌러야 하는지 헤매고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물으니 설마 엄마가 처음 데리러 간 거냐며 웃더니 그냥 기다리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한두 명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2시가 다 됐는데도 우리 아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선생님께 ' 아이가 1학년인데 그냥 기다리면 되나요?'라고 물으니 살짝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네'라고만 대답하고 가십니다.
잠시 후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줄지어 나옵니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엄마에게 달려옵니다. 아이가 너무 좋아합니다. 팔짝팔짝 뛰고 엄마에게 뽀뽀를 계속합니다. 엄마가 오니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니 '음..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막 뛰어다니고 싶은 그런 기분이야'라고 대답합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엄마는 또 아이에게 미안해집니다.
큰애 학교 소식은 E알리미와 학급 네이버 밴드(band)를 통해 전달받고 있습니다. 학교 소식은 E알리미로 오지만 수업내용, 활동사진, 준비물 등 학급 소식은 담임선생님이 밴드를 통해 전달해주고 있었습니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어린이집 준비물도 잘 챙기지 못했던 터라 엄마와 아빠 중 한 명만 가입해 달라는 안내문을 보고 따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서 학급 밴드에 둘 다 가입을 했었습니다.
수요일쯤 안내문이 올라왔었습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빈 요구르트 병을 챙겨 보내달라는 안내문이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후 첫 준비물이었습니다. 안내문을 보고 꼭 챙겨야지 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주말이 지나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아이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올려주는 활동사진을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아.. 그대로 머리를 감싸쥔채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자책했습니다. 다행히 우리 아이도 요구르트 병으로 만들기를 해서 작품을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선생님은 또 우리 부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차라리 밴드에 한 명만 가입할 걸 그랬나.. 부끄러웠고, 미안했습니다.
그날 큰애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큰일을 보다가 문득 생각났는지 엄마에게 한소리 던집니다.
" 엄마 알림장 안 보지?!!"
마침 방문한 학습지 선생님은 그 말 한마디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 듯 웃기 시작하셨습니다.
"어? 찬아~~ 엄마가 보는데 깜빡했어.. 미안해, 우리 아들 당황했겠다, 근데 너 말고 준비물 또 안 챙겨 온 아이들 있었니?"
" 어 나 말고 한 명 또 있었어"
겨우 2명 안 챙겨 왔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 아이였습니다. 에효...
엄마가 일을 하니 아이에게 미안하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워킹맘은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죄인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았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큰애를 혼자 보내고 둘째를 데리고 출근을 하는데도 9시 정시 출근은 힘들었습니다. 시간이라는 압박 속에서 모두가 힘든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직장에 사정 얘기를 하고 아침에 30분씩 육아시간을 쓰면서 지금은 큰애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있습니다. 아빠는 혼자 가도 무리 없다고 하지만 엄마는 1학년 때까지만 엄마가 데려다 주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이제 곧 주말입니다.
주말이면 아이들은 항상 뭔가 특별한 일을 기대합니다. 외출도, 사람 만나는 것도 어려운 지금 이 시점에 특별한 일을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더구나 아빠는 또 근무입니다. 엄마는 아빠 없이 주말에 아이들을 보는 게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엄마의 휴일은 휴일이 아닙니다. 재밌는 게 최고인 두 아이들을 데리고 또 어떻게 주말을 보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