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꿈을 통해 과거를 보거나 미래를 예견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들이 특별한 점성술 능력이 있다거나 점쟁이라서가 아니라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조차 전날 꾼 꿈을 해석해 종종 앞날을 내다보고 불운과 행운을 가린다.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 등을 앞둔 친구 또는 가족에게 한 번쯤은 해봤을 얘기가 있다.
" 좋은 꿈 꿔~!! " " 어젯밤 꿈은 잘 꿨어?"
꿈이 좋아야 일이 잘 풀리고, 꿈이 좋지 않으면 될 일도 안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길몽을 기다리기도 한다. 로또나 복권에 당첨됐다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전날 돼지나 똥꿈을 꿨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걸 보니 꿈이라는 것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내 주변에도 꿈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오셨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일까? 언제부턴가 엄마는 종종 꿈을 통해 미래를 보기 시작했다. 합격과 불합격, 불운, 행운, 생명의 탄생, 그리고 죽음까지도...
엄마는 사람들의 삶의 중요한 갈림길 앞에서 그보다 먼저 그 사람의 미래를 내다봤다.
<합격 VS 불합격>
2009년 겨울,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5년간의 수험생활을 끝내겠다 마음먹고 죽자살자 매달려 시험을 봤다. 기진맥진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시험을 치고 돌아온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딸 잘될 거야. 걱정 마' 시험지에 정답을 확신하지 못해 표시해 둔 문제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잘 본 것 같지도 못 본 것 같지도 않았다. 엄마의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도 않았고 희망스럽게 들리지도 않았었다.
1차 필기시험 합격 후 한 달 남짓 이어진 2차 적성과 체력, 3차 면접을 거쳐 그해 최종 합격을 한 후 나는 엄마의 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차 필기시험 아침, 딸을 시험장으로 보내고 잠깐 잠이 든 사이 엄마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엄청 긴 다리 아래에 누가 매달려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게 '나'라고 했다고 한다. 꿈속에서 나는 다리 난간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엄마 생각에 절대로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상태로 꿈에서 깼고 엄마는 내가 시험을 잘 보겠구나 생각을 하셨다고. 2차 적성검사 보는 날에는 하얀색 옷을 입은 천사들이 내려와 찬송가를 불렀다고 했다. 엄마는 2번의 꿈을 통해 최종 합격을 예감했고, 그해 나는 정말 공무원이 됐다.
<만남>
30대 초반 한참 소개팅에 열중해있을 때였다. 여기저기 들어오는 소개팅을 거절하지 않았고 나 또한 적극적으로 이상형을 홍보하며 짝을 찾고 있었다.
대학 선배에게 소개받은 남자와 첫 만남을 갖고 온 날이었다. 양쪽 나이도 제대로 확인을 안 한 채 주선한 선배 탓에 소개팅남이 4살이나 어린 연하라는 사실에 무척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생각보다 괜찮았던 상대에 대한 설렘으로 혼란스러워 친구들과 열심히 카톡질을 하던 중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젯밤 꿈을 꿨는데 내가 귀걸이를 한쪽만 하고 와서 나머지 한쪽 귀걸이를 찾아 마저 하더라는 것이었다. 소개팅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엄마는 좋은 꿈같은데 혹시 승진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허걱'!! 소개팅남이 떠올랐다. 엄마는 어떻게 이 시점에 이런 꿈을 꿀 수 있을까. 첫 만남 후 아직 아무런 진전도 없는 상태였지만 엄마의 꿈 얘기를 듣고는 불현듯 '이 사람과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결혼까지?'라고 생각이 떠올랐고, 지금 그 소개팅남은 아직도 내 옆에 있다.
<딱!! 걸림>
20대 초반쯤, 시골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는 지난밤 꿈 얘기를 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태몽인데 주위에 아기를 가질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태몽이 아닐 수도 있지 않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태몽이라고 하셨다. 6남매 중 큰딸이었던 엄마는 이모들도 삼촌도 이미 자녀들이 다 커서 임신할 상태가 아니었고 막내 이모는 남자 친구는 있었지만 결혼 얘기도 없었고 이제 막 20대 중반이라 결혼과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이상하다... 이상하다... 고심 고심하더니 작심한 듯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막내 이모에게 전화를 걸더니 다짜고짜 묻는다
'너 나한테 할 말 없니?'
엥? 선무당이 사람 잡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막내 이모는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하는 듯했다.
'솔직하게 말해봐, 무슨 일 있지?'
엄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아?
엄마는 아무 일 없다는 막내 이모의 대답에 흔들림 없이 확신에 찬 어투로 다시 묻고 있었다.
막내 이모는 엄마와 20살 차이, 큰 조카인 나와는 3살 차이로 엄마에게는 딸 같은, 나에게는 언니 같은 이모였다. 중학교 때 엄마를 잃고 큰언니인 엄마를 엄마처럼 의지했고 엄마도 딸처럼 챙기고 있던 터라 엄마는 매우 진지했고 심각했다.
잠깐의 침묵 후 이어진 엄마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몇 주니?'
이모는 남자 친구와 사이에 아기가 생겼고, 가족들에게 미처 말하지 못하던 차 엄마는 꿈을 통해 막내 이모의 임신 사실을 알아냈다. 무서운 우리 엄마, 엄마 앞에서는 거짓말도 못한다.
<죽음>
시골집 이웃들은 오랫동안 한 교회를 다니고 몇십 년째 한동네에서 지내던 터라 허물없이 친구처럼,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돼지농장을 운영했던 장로님 댁은 바로 우리 앞집이었는데 요즘 말로 절친 중에 절친이었다.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는 깊고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시는 부부였고, 딸 하나에 아들 둘, 그중 큰 아들은 행정고시에 합격할 만큼 번듯하게 자식농사도 잘 지으셨던 분들이셨다. 맛있는 음식은 나눠 먹고, 어려운 일은 도와가며 그렇게 온정을 쌓아가던 무렵 앞집 장로님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막내아들이 쓰러진 아버지를 목격하고 맨발로 우리 집에 달려와 도움을 요청했고, 119 구급대를 불러 병원에 실려가 숨을 거두실 때까지 엄마는 옆에서 모든 상황을 함께했었다.
장로님의 장례를 치르고 한참 뒤 엄마는 며칠 전 꾸었던 꿈 얘기를 해주셨다. 검은 옷을 입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앞집 장로님 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기분 좋은 꿈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앞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러나.. 정도로 생각하셨다고 했다.
또 다른 분은 교회 앞에서 몇 분이 모여 계셨는데 돌아가신 장로님이 열기구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시면서 먼저 간다고 하시며 손을 흔드셨다고 했다.
이외에도 엄마는 가족들 또는 주변분들에 대한 꿈을 자주 꾸신다. 엄마뿐만이 아니다. 시어머니는 쌍둥이 아들들이 비슷한 시기에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꿈을 꾸셨고 합격을 미리 확신하셨다고 했다.
꿈자리가 좋지 않다며 오늘 하루 어디 가지 말고 집에만 있어라, 몸조심 하라며 아침 일찍 전화받는 일도 많았다. 로또 복권 1등 당첨자의 44%가 당첨을 예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토록 신통방통한 능력을 지닌 엄마의 말이라 흘려들을 수가 없다. 엄마에게 그런 전화를 받는 날은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꿈은 보통 6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전생몽(前生夢)이다. 전생의 자기 모습을 보는 꿈으로 자기의 전생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꿈으로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천상몽(天上夢)이다. 하늘나라의 모습을 꿈으로 보는 것으로 흑백이 아니라 총천연색으로 나타나며 영혼이 맑아져야 컬러가 나온다고 한다. 세 번째는 주사야몽(晝思夜夢)이다. 낮에 생각했던 것이 밤에 꿈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잠재의식의 발로라는 하는 것은 대개 이 꿈에 해당한다. 네 번째는 상사몽(相思夢)이다. 어떤 일을 골똘히 생각하면 그 일이 꿈에도 나타난다. 짝사랑하는 연인이 꿈에 나타나는 경우다. 다섯 번째는 사대 불화몽(四大不和夢)이다. 사대란 우주의 4가지 구성요소를 가리키는데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 그것이며, 꿈에서 사대가 화합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심신이 편안하지 못하고 평상시 생각이 산란하다는 것으로 보통 개꿈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6번째로 선견몽(先見夢)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미리 상징으로 나타나는 꿈.
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비롯 여러 정신분석 학자들이 꿈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해 왔지만 아직까지 만족할만한 결과는 얻지 못했다고.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면서 4-5개의 꿈을 꾸게 되고 이 꿈들이 전부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중 1-2개가 기억에 남는 것이고 그때 우리는 꿈을 꾸었다고 인지한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는 꿈이라는 것이 누구나 다 꾸는 것이고 뇌 활동의 부산물일 뿐, 과학적으로 크게 의미가 없다고 할지라도 로또 당첨자의 40% 이상이 길몽을 꾸었고, 주변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가 없다. 당장 오늘 저녁의 일도 내일의 일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함을 안고 살아간다. 어떻게 해서든 불안함을 최소화하고 싶어 하고 불행이 예고돼 있다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점성술사를 찾아가거나 사주팔자, 타로점을 보기도 한다.
나는 지금껏 꿈을 잘 꾸지도 않았고 꿈을 꿔도 주사야몽, 상사몽, 그리고 개꿈 정도인걸 보면 엄마의 선견 몽은 매우 재밌고 흥미로운 능력임에 틀림없다.
예전에는 중요한 일을 앞둔 시점에 내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해 물어보기도 했었다.
"엄마, 어제 꿈 안 꿨어?"
"어? 안 꿨는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꿈과 현실을 연결시키는 것은 우리의 해석이다. 그 꿈을 어떻게 해석하냐는 오로지 개인의 영역인 셈이다. 꿈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항상 꿈을 꾸고, 꿈에 의미를 부여한다. 곧 그 의미는 주관적 해석에 따라서 형태가 정해지며 불확실한 내 미래를 꿈을 통해 조금은 투명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엄마는 이제 꿈을 꾸면 그 꿈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젯밤 꿈이 선명했는지, 그 꿈을 꿀 때 기분이 어땠는지, 꿈에 나온 사람들의 표정은 어땠는지..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앞날을 예측한다. 엄마의 꿈은 길몽으로 해석되기도 흉몽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후에 일어난 일에 따라 길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흉몽이 되기도 하고 흉몽이라고 생각했던 길몽이 되기도 했다.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는 걸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다른 선택을 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바뀔 수 있는 걸까?
여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미래를 바꾸고 싶으신 가요?'라고 묻는다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혹시 미리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는 내 미래를 바꾸고 싶다'라고 말할 용기가 없다. 내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돼있을지, 교통사고나 나서 불구가 될지, 세계여행을 하고 있을지, 공무원을 그만뒀을지, 언제 죽을 것인지, 유명한 작가가 되어 있을지 등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불확실한 다른 미래를 선택하고 싶지도 않다.
엄마의 선견몽이 대부분 맞았다는 사실이 조금 꺼림칙하지만 이 또한 우리가 갖고 싶은 미래, 기대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인간은 보통 불확실성을 참지 못하는 존재이고 가능하면 불행을 예측해 피하고 싶어 하지만, 신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에게 내 생각과 행동을 결정할 자율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매 순간 주어지는 결정의 순간에서 정해지는 나의 선택을 믿고, 오늘 내가 만든 하루를 믿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확실한 이것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 엄마의 선견 몽은 몽(夢) 일뿐이고, 어차피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의지로 조절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속에서 내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