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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Dec 13. 2021

오늘도 커피 한잔, 혹시 행동중독?!

나는 오늘 커피를 왜 마셨을까




운전을 하다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가 보이면 그 짧은 순간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오늘 커피를 먹었나? 커피는 스타벅스가 제일 맛있는데, 여기를 지나치면 다른 커피를 마시게 되겠지? 어차피 커피를 마실 거라면 스타벅스고, 드라이브 스루라면 차에서 내려 매장으로 들어가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는 번거로움도 없으니 좋은 기회다, 들어갈까?


꼭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벅스고 드라이브 스루라는 점이 날 더 고민에 빠뜨린다.


회사에서는 점심식사 후 동료들과 프랜차이즈 커피 한잔 마시는 것은 거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한 끼 식사값과 비슷한 가격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큰 고민 없이 커피 한잔 정도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지갑을 연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어딘지 허전하다.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과를 빠트린 기분이 든다. 김종국이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이런 기분일까?


커피가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단지 커피라는 음료 때문이 아니다. 커피 고유의 음료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장소, 커피를 마시는 시간, 커피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커피와 함께 하는 일상이 하나의 사회문화로 자리 잡게 했다.  


커피뿐만이 아니다.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시간과 장소, 또는 어떤 상황에서 반복되는 행동들이 있다.


한주를 마감하는 금요일이 되면 꼭 술 한잔과 야식을 찾게 된다. 다음 날 출근도 안 하고,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한 나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 불금이지 않나?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또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금요일은 꼭 불태워야만 할 것 같아서 술과 야식을 찾게 된다.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 같으면 별 의식 없이도 손이 먼저 스마트폰으로 움직인다. 뇌신경회로에서 스마트폰을 봐야지라는 생각을 손에 전달하기도 전에 손이 먼저 움직여버리는 느낌이다. 습관처럼 네이버 검색창을 들여다보고 인스타그램 속 화려한 사진들을 감상한다.


나의 일상 속 반복되는 행동들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루틴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나의 이런 행동들이 행동중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일과 또는 일상생활 중 하나처럼 루틴이 돼버려 꼭 해야 하는 것처럼 돼버린 행동들 말이다.


우리는 오늘도 커피를 마셨다.

오늘 우리는 왜 커피를 마셨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내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커피가 맛이 없었다.  

처음으로 검은색 아메리카노를 먹었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인지, 쓰기만  왜 사람들이 이 쓰디쓴 음료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마시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커피가 맛이 없으니 당연히 스타벅스에서 커피값으로 몇천 원씩 쓰는 사람들은 된장녀가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하루에 꼭 한잔씩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고, 그중에서도 스타벅스 커피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커피의 맛은 그대로인데 어떻게 맛있다고 느끼게 된 걸까?


커피를 마시는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커피의 쓴 맛은 맛있는 것이고, 밥을 먹고 나서 먹으면 더 맛있는 음료이며, 다른 음료를 마시는 것보다 어딘지 더 품위 있어 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가르쳐줬다. 욕망도 학습이 되는 거였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커피전문점도 점점 더 늘어났다. 경쟁업체가 늘어나니 다른 카페보다 좀 더 예쁜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들이 생겨나고 책, 감성, 식물, 키즈 등 커피 외의 자신만의 특성을 가진 커피전문점도 늘어났다. 커피전문점 들은 커피뿐 아니라 장소과 분위기, 심지어 브랜드라는 이미지까지 프리미엄으로 얹혀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꼭 그 커피 말고 다양한 다른 이유들로 그때그때 목적에 맞는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원두의 생산지를 구별하고 신맛과 고소한 맛을 내는 원두를 알아보며 핸드드립 커피를 고수하는, 오로지 '커피'의 맛에 목적을 두고 즐기는 것과는 다르게, 지금 이 순간 커피가 반드시,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커피를 포함해 다양한 다른 이유로 우리는 오늘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습관적 또는 강박적으로 몰입하거나 거기에 항복하는 것을 말하며 행동중독은 흔히 쇼핑중독, 도박중독, 게임중독, 성 중독 등을 말한다.


중독은 왜 생기는 것일까.


중독은 인간의 욕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고 이 욕망이 자기 의지로 조절이 어려울 때 중독이라고 볼 수 있다.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분석 해 인간 욕망의 분류체계를 만들었다.


첫 번째는 "자연스럽고 반드시 필요한" 욕망이다.

예를 들면 사막을 걸어서 통과한 후에 마시는 물 한잔 같은 것이다.

두 번째는 "자연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욕망이다.

이것은 사막을 통과한 후에 물 한잔을 마시고 나서 마시는 소박한 테이블 와인 한잔과 같다.

세 번째는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텅 빈" 욕망이다.

사막을 걸어서 통과한 후에 물 한 잔을 마시고 테이블 와인을 마신 다음 마시는 값비싼 샴페인 한 병이 여기에 해당한다.


에피쿠로스는 이 텅 빈 욕망이 가장 큰 고통을 낳는다고 했다.  


나는 행동중독으로 보이는 루틴은 텅 빈 욕망의 결과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텅 빈 욕망 말이다. 나도 모르게 반복되는 하루의 규칙, 습관이 돼버린 행동들이 인간이 생존을 위해 마셨던 물 한잔처럼 자연스럽고 반드시 필요한 욕망이었을까?


행동중독을 일으키는 행동과 그 원인이 되는 욕망의 종류는 다양하겠지만 그 욕망의 정도는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인다. 하루에 속한 규칙과 습관처럼 자리 잡은 그 행동에 대한 욕망이 크다고 착각할 뿐이다. 행동을 자극하는 내면의 욕구 정도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루틴으로 스며들어 강한 자극이 없어도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 약물중독 같은 중독들은 욕망의 크기가 큰 만큼 행동 의지도 강하게 발현된다. 그러나 루틴이 되어버린 행동중독에서 보이는 욕망과 그에 따른 행동 의지는 조금 달리 보인다. 욕망의 정도가 그렇게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잘 발현되지 않는다. 작은 욕망임에도 루틴이라는 촉매제에 얹혀 너무 쉽게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출근길마다 들러 테익 아웃했던 스타벅스 커피 한잔, 점심식사 후 마셨던 카페라테 한잔은 항상 우리에게 진짜 즐거움을 가져다줬을까? 금요일 밤마다 찾았던 술과 야식은 일주일 동안 몰아쳤던 직장 스트레스와 일상의 피곤함을 확실히 날려줬을까?


나에게도 점심식사 후 달콤한 라테 한잔은 요즘 누구나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소. 확. 행이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직장인 월급으로 적당히 감당 가능한 5천 원 정도의 돈으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아니면 요즘 핫하다는 카페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린다. 그런데 자꾸 확. 실. 한 이란 단어에서 멈칫한다. 정말 확실한 행복이었나? 진짜 나를 즐겁게 해 준 시간이었나?  


평범한 월급쟁이가 500만 원짜리 샤넬백을 24개월 할부로 샀을 때, 럭셔리 풀빌라에서 룸서비스 와인을 마시며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숙박료 100만 원을 지불하고 났을 때 우리는 정말 즐거울까? 순간의 만족과 즐거움 뒤에 따라오는 그 찝찝함과 불쾌함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커피 한잔과 샤넬백은 가격으로는 비교대상이 안되지만 인간 욕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인간은 즐겁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고 샤넬백을 샀을 것이다. 그러나 행동중독으로 마셨던 커피는 샤넬백을 사고 느꼈던 알 수 없는 불쾌감과 비슷한 종류의 즐거움이었을 수 있다.  


돈이 넘쳐나고, 음식이 넘쳐난다.

그 어느 때 보다도 풍요로운 세상이다.

실체가 있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들 뿐 아니라 가상의 디지털 세상까지 등장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욕망의 종류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로 연결된 가상세계는 인간의 텅 빈 욕망을 더욱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텅 빈 욕망의 끝은 무엇일까?

텅 빈 욕망의 끝은 진짜 즐거움이 아니다.

즐거움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쾌락에 취약하다. 얼만큼이어야 충분할까? 그 답은 항상 '지금 보다 더' 혹은 '이거 말고 다른 거' 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이라는 것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더 증가할 수 없고 그저 다양해질 뿐이라고 했다. 놀거리 즐길거리가 너무 많다. 수단과 방법도 다양해지고, 코로나는 그 범위를 더욱 확장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욕망의 정도는 약하지만 그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이 자꾸만 새로운 종류의 자극을 찾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진짜 즐거움은 다양한 욕망을 습관처럼 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하나의 욕망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다.


행동중독처럼 보이는 그것, 확실히 즐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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