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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Nov 28. 2021

또, 다시, 시작이어도 좋다.   

OFF가 아닌 리셋으로,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또, 다시 제자리다.

항상 그렇듯 몸도 마음도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뭔가 변화가 필요할 때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아는 대로 살지 못하는 건 누구에게나 똑같은 부끄럽고도 뻔한 진실이다.


얼마 전 8살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들과 함께 등산을 다녀왔다. 정상까지는 1시간이면 등반이 가능한 산책 코스 정도의 무봉산이었다. 10월의 그날은 가을 단풍도 절정, 하늘도 맑고 바람도 시원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웃고 떠들기에 정신없었고 엄마들도 가볍게 산행 후 점심이나 먹자며 여유 있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경사가 심한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후 10분 정도 지났을까. 앞서가던 아이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나는 제일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며 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다.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온몸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일행들을 먼저 올려 보내고 나는 천천히 따라가겠다고 했다.


10분 정도 계단에 앉아 숨을 고르고 몸을 진정시켰다. 4-5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주말이라 가족단위 등산객이 많았다. 산 중턱도 아니고 초입 계단에서 기진맥진 물을 마시고 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식은땀까지 났다. 상태가 좋지 않다. 이대로 내려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만 산행이 처음인 큰애가 혼자 올라가고 있는 걸 생각하니 그대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따라갔다.


정상에서는 이미 도착한 아이들과 엄마들이 사진도 찍고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내가 보이자 아들 친구 녀석 중 한 명이 '어? 왔다~! 박수~~!!! ' 8살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나를 맞아주었다. 참.. 설악산 대청봉도 아니고.. 어린아이들도 가볍게 오르내리는 무봉산 정상에서 박수를 받다니..




좀처럼 삶이 생각만큼 즐겁지 않고 버거울 때마다 뭐라도 내 삶에 들어와 일상의 활력소가 돼주길 바랬다. 그게 무엇일까. 사람도 만나보고 취미생활도 찾아봤다. 새벽 기상으로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해 삶의 지침서 같은 좋은 책들을 읽으며 뭔가 달라지길 바랬다.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알게 된 것을 삶에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영미 작가님의 마녀 체력을 읽었다. 160도 안 되는 작은 키, 몸무게 40킬로대의 아담한 체격을 가진 이영미 작가님. 결혼 후 아이를 낳고 13년 차 에디터로 살아오면서 운동에는 전혀 관심 없고 소질도 없었던 작가님이 나이 40에 운동에 눈을 뜨고 지금은 트라이애슬론 경기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 미시령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강철체력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날 흥분시켰다. 체격도 비슷, 나잇대도 비슷했다.


마음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이겨낸 힘, 도전과 모험을 주저하지 않고 추진한 힘의 근원은 체력이다.
체력은 단순히 건강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강한 정신력으로 보답한다. 강한 육체에 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부터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서,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 마녀 체력 중 -





바로 이거였구나.. 문제는 체력이었다.

항상 피곤하고 지친 몸상태에서 육아가 즐겁고 집안일이 수월 할리 만무했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들끓기 시작했고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마녀 체력 갖기"를 호기롭게 추가했다. 운동이 좋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천하기까지는 뭔가 강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이미 내 삶 자체가 동기부여가 됐고 체력만 키운다면 삶에 큰 변화가 올 것 같았다.


아웃렛에 가서 운동복을 사고 공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편과 시간을 맞춰 운동시간을 확보했지만 주간, 야간 교대근무 중인 남편과 시간을 맞추다 보니 운동할 수 있는 날이 많이 않았다. 급기야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을 달렸다. 오~~ 이 열정! 스스로가 매우 만족했다. 항상 그렇듯 시작만큼은 열정이 남다르다. 기분 좋은 변화가 시작됐다. 남편과 주변 사람들 모두 너무 잘했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운동 시작 한 달쯤 됐을까?

겨울이 다가오며 추워지기 시작했고, 유모차를 끌고 달리니 좀처럼 속도를 내기도 어려웠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유모차를 끌고 달린다는 것은 무리였던 것인가, 매일 빠지지 않고 하겠다던 나의 다짐은 2-3일에 한번, 일주일에 한 번... 결국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직장에 복귀한 뒤에도 운동에 대한 열망은 계속되었다.


이번엔 수영이었다.


약 10년 전, 6개월 정도 강습을 받아 자유형, 배형, 평형까지는 익혔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장비부터 구입했다. 인터넷에서 비교적 저렴한 수영복과 수영모자, 물안경을 구입하고 제법 폼나는 형광색 가방까지 샀다. '마녀 체력'에서 돈을 들여야 돈이 아까워서라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충실히 따랐다.


퇴근 후 지친 몸이 물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10년 만에 하는 수영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자유형과 배형을 할 수 있었다. 25미터 레인을 쉬지 않고 한 번 두 번 왔다 갔다, 헐떡이는 숨소리를 통해 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수영은 특히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한 후 나와서 맞는 시원한 바람 맛이 최고다. 아~~ 살짝 축축한 머리칼을 스치며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이 너무 상쾌하다. 이것이 바로 운동하는 맛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왔다. COVID19... 망할.


코로나 만 2년 차인 지금은 위드 코로나를 준비할 정도로 사람들이 적응해 버렸지만, 2020년 초만 해도 코로나에 확진된다는 것은 은밀한 사생활이 온 세상에 까발릴 정도로 내가 노출된다는 것이었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사람이 헬스장, 수영장, 쇼핑몰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순식간에 정신 나간 사람이 돼버리던 때였다. 더구나 나는 국가에 메인 몸이 아니던가. 보통 똥배짱이 아니라면 수영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그냥 보냈다.

또다시 풀린 몸으로 따뜻한 이불속에서 안락함을 즐겼다.


그러나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어서 집구석에서 옷걸이로 사용 중이던 숀리 바이크를 거실로 꺼냈다. 예전에 남편이 당근 마켓에서 사둔 스쾃도 꺼냈다. 새벽시간 중 30분은 실내 바이크와 스쾃으로 시간을 채웠다. 확실이 몸을 움직여 열을 내니 몸이 유연해지고 생기가 돌았다.


남편이 없어도, 코로나가 활개를 쳐도 홈트는 언제든 가능한 운동이었다. 유튜브 요가 채널을 구독하며 방구석 요가도 따라 했다.


나의 홈트는 언제 그만뒀는지 기억도 없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못하고 거실 한구 속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숀리 바이크와 스쾃를 보고 남편이 치우자고 했을 때, 다시 운동할 거니 치우지 말아 달라고 했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바이크와 스쾃는 베란다 창고에 들어가 있었다.






운동을 해야 한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

불변의 진리인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몇 번의 시작이 뻔한 이유로 끝까지 유지되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 실패는 아니지 않은가. 실패라는 것은 더 이상 도전할 기회조차 없을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그것, 내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그것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지금 당장 다시 그것을 시작하면 된다. 리셋이다. 전원을 아예 내려버리지 않았다면 몇 번의 시작이라도 괜찮다.


나는 얼마 전 네 번째 리셋 버튼을 눌렀다.


또, 다시, 시작이었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달리기 만큼 좋은 게 없다고 했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첫날은 뛰자마자 발목이 아파왔다. 몇 미터 뛰기도 전에 숨이 가쁘고 가슴에도 통증이 느껴졌다. 몸이 놀란 탓이겠지. 잠시 후 발목 통증도 가슴 통증도 서서히 사라졌다. 바람이 점점 더 차가워지는 시기지만 여기저기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들숨 날숨을 그대로 받아내는 마스크에는 금세 물방울이 생겼다. 호수공원의 그림 같은 야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러닝의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굳어 있던 몸이 서서히 풀리고 열을 발산하며 근육과 장기들이 생기를 찾은 것 같았다. 고질병인 찌뿌둥은 말끔히 사라지고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아졌다. 신승훈, 코요테, DJ.DOC, 쿨, 솔리드 등 내 젊음과 함께했던 90년대 댄스곡들은 러닝타임 내내 페이스를 조절해주며 컨디션을 한껏 업 시켜줬다.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내 몸, 이것은 삶의 기본이다. 몸이 무너지면 내 삶도 무너진다. 더구나 엄마의 몸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는 나뿐 아니라 아이들과 남편의 행복도 엄마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건강하고 활기 넘친다면 집안의 공기도 달라질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몸이 피곤하고 기분이 안 좋을 때 아이들에게 더 쉽게 화를 내게 된다. 남편의 행동도 유난히 거슬리게 된다.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다.


 다시 11월이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자 다이어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한 달 먼저 시작하는 2022년, 미라클 모닝, 다양한 챌린지들이 SNS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또다시 한 해를 돌아보고 뭔가 변화를 꿈꾸며 가장 꿈틀대기 좋은 때가 오고 있다.


예전엔 이랬는데, 한참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체력이라면 나도 뒤지지 않았었는데... 자꾸만 과거로 나를 얘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지난 나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지금 내가 그렇지 못한것은 시간과 주변환경 탓이니 어쩔수 없다는 듯 비겁한 모습으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다. 현재 진행형인 사람, 하루하루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나의 버킷리스트 마녀 체력 갖기는 계속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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